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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월 1일은 민족 최대의 명절 설이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비록 몸은 고향에 갈 수 없어도 마음만은 항상 고향을 향하게 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명절 때 고향에 가장 편하게 갈 수 있었던 교통수단은 단연 열차였다. 주로 서울역이나 용산역 등 현장에서 열차표 예매를 했었는데 역 앞은 전날부터 예매하려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곤 했다.

열차표는 한정돼 있는데 표를 사려는 사람들이 많아 벌어진 진풍경이다. 표를 구입하기 위해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 노숙도 마다하지 않았다. 웬만한 열정과 노력이 아니면 열차표 예매를 포기하고 고속버스로 귀성길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을 경우, 서울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주변이나 기타 터미널 주변 여기저기에서 출발했던 관광버스를 이용하기도 했다.

당시 설이나 추석 등 명절이 다가오면 서울시내 전봇대나 담벼락 등에는 '몇 시, 어디서, 어디로, 출발한다'는 안내문이 나붙기도 했다. 그래서 그 시간에 맞춰 그곳으로 가면  관광버스를 이용해 귀성길에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출발 예정시각이 다가오도록 승객을 다 채우지 못할 경우, 관광버스 기사분이 주위를 돌아다니며 "대전이나 광주, 목포, 순천 등으로 가실 분, 빨리 오세요", "좌석이 몇 자리 안 남았어요" 하며 승객들을 찾아 직접 나서기도 했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직장생활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1990년대 초 어느 해 저 역시 그렇게 어느 관광버스 기사분의 손에 이끌려 설 귀성길에 올랐다. 하지만 공들이지 않고 쉽게 이용한 관광버스 귀성길은, 왜 사람들이 저토록 밤을 지새워가며 그토록 힘을 들여 열차표를 예매하려고 했는지를 새삼 깨닫게 했다.
 
1992년 9월 9일 추석을 이틀 앞두고 경부고속도로 서울-수원구간 하행선이 귀성차량들로 정체되어 거대한 주차장이 되어 있다.
 1992년 9월 9일 추석을 이틀 앞두고 경부고속도로 서울-수원구간 하행선이 귀성차량들로 정체되어 거대한 주차장이 되어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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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 열차가 아닌 버스나 자가용을 이용했던 분들의 설 귀성길 곤혹은 역시 주차장을 방불케 했던 고속도로 교통체증이었다. 고향을 찾기 위해 한꺼번에 몰려든 차량들로 서울 시내를 빠져나가는 것만도 2시간은 족히 걸릴 정도였으니, 설 귀성길은 곧 고행길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건 아니었다.

그래도 시내만 벗어나면 그나마 조금은 낫겠지, 하는 희망으로 참아 보기도 하지만 여기저기에서 타고 들어 온 차량들로 인해 가면 갈수록 교통체증은 더욱 더 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운 고향산천과 보고 싶었던 부모형제를 만난다는 기대 부푼 마음으로 참고 견딜 수 있었다.

'한숨 푹 자자. 자고 일어나면 그래도 많이 도착해 있겠지.'

뒷목이 뻐근하고 하품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지루하고 또 지루해 오지 않는 잠을 애써 청했다. 그러나 자고 일어나도 여전히 목적지까지 수 시간 이상이나 남아 있었다. 설 귀성전쟁은 잔혹하리만치 치열했다.

그런데 관광버스를 탄 그날은 설상가상으로 내가 탄 차량이 얼마 가지 못해 히터가 고장 나 버려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두툼한 외투를 바짝 조이고, 몸을 최대한 웅크려 보아도 입김이 새하얗게 피어오르는 버스 안 냉기 앞에서는 속수무책.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혹한의 강추위, 난방장치 말썽에 짜증스러운 교통체증까지, 그야말로 스님이 도를 닦는 심정으로 인내하며 견딘 끝에 드디어 버스는 목적지인 광주에 도착했다. 그렇게 걸린 시간이 무려 16시간이었다.

그때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끔찍한 설 귀성 전쟁이었다. 오늘날과 같이 촘촘한 고속도로망과 '내비게이션'이라는 최첨단 좌표 시스템이 없었던 시절에나 가능했던 썩 유쾌하지 못한 추억일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두 번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그때 그 시절만의 소중한 추억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 귀중히 보관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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