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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말하는 '백팔번뇌'의 108이란 숫자는 불교에서 온 숫자는 맞지만, 단순히 종교적 의미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한 감독의 영화 <증인>(2019)에서도 주인공(지우)의 증언 기록은 108자였는데, 감독이 어떤 의미로 그런 숫자를 구성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사실과 진실의 상징적 숫자로 진한 감동을 전해 준다.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에도 108 숫자 코드가 담겨 있어 그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한다.

세종이 한글, 즉 '언문(훈민정음)' 창제를 마무리한 것은 1443년 음력 12월이었지만, 이를 체계화하여 온 세상에 알린 것은 1446년 음력 9월 상순, 지금의 한글날 즈음에 <훈민정음> 해례본(이하 '해례본')이라는 한문으로 된 책을 통해서였다. 이 책에서 세종 서문을 처음으로 발표했다.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 故愚民有所欲言, 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 予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人易習便於日用耳
 
훈민정음 해례본의 세종 서문(첫 장 앞 쪽) @김슬옹, ≪훈민정음해례본 입체 강독본≫ 부록 41쪽.
▲ 훈민정음 해례본의 세종 서문(첫 장 앞 쪽) 훈민정음 해례본의 세종 서문(첫 장 앞 쪽) @김슬옹, ≪훈민정음해례본 입체 강독본≫ 부록 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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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례본의 1차 대상은 양반들이었으므로 54자의 한문으로 훈민정음을 누가 왜 만들었는지, 그 가치는 무엇인지가 간결하지만 요긴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러한 한문을 그 당시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 이른바 언해본의 세종 서문이다. 고등학교의 모든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는 글이다. 언해본은 1459년 세조 5년에 <월인석보>라는 책에 실려 전하지만, 실제 번역은 1446년 음력 9월 해례본 반포 후 적어도 12월 말까지는 번역되었다는 것이 전문 학자들의 중론이다.

이러한 108자 코드는 고 김광해 교수가 1987년에 "<훈민정음 어지>는 왜 백여덟 글자였을까. <우리시대> 2월호"라는 글에서 처음으로 밝혀냈다. 108이라는 숫자는 불교 코드로서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글자 하나하나에 온 정신을 기울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실질적, 상징적 숫자라는 것이다.
 
[표 1] 훈민정음 언해본의  <세종 서문> 108자 12*9 배열표    @김슬옹
▲ 훈민정음 언해본의 <세종 서문> 108자 12*9 배열표 [표 1] 훈민정음 언해본의 <세종 서문> 108자 12*9 배열표 @김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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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일부러 108자를 맞추기 위해 번역에 얼마나 많은 정성을 기울였는가를 읽어내야 한다. 그런 의미가 들어 있다면 그것의 현대어 번역도 108자로 번역하는 것이 15세기 세종과 세종을 따랐던 언해본 번역가들의 정성과 간절한 마음을 잇는 것이고, 후손의 마땅한 도리이다. 그동안 그 의미를 살려야 한다는 의견은 있었으나, 아직 공식화된 적은 없어 처음으로 시도해보는 것이다.

<현대말 108자 번역>

우리나라말이 중국말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잘 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글 모르는 백성이 말하려는 것이 있어도, 끝내 제 뜻을 능히 펼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것을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다.

 
[표 2] 세종 서문의 현대말 108자 번역문 @김슬옹
▲ 세종 서문의 현대말 108자 번역문 [표 2] 세종 서문의 현대말 108자 번역문 @김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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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자 코드를 언해본에서 처음 적용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 앞서 해례본(1446.9.)에 처음으로 적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세종이 직접 저술한 정음편의 한자 갈래 수가 108자라는 점이 신기하기까지 하다. 이는 인천교대 박병천 명예교수님이 2016년에 "세종의 <훈민정음>에 숨겨진 불교적 숫자와 그 의미(<월간서예> 422호)"라는 글에서 처음으로 밝혀냈다.
 
[표 3] 훈민정음 해례본 정음편에 쓰인 한자 108자(괄호는 빈도 수) @ 김슬옹(2019). ≪한글교양≫(아카넷). 47쪽.
▲ 훈민정음 해례본 정음편에 쓰인 한자 108자(괄호는 빈도 수) [표 3] 훈민정음 해례본 정음편에 쓰인 한자 108자(괄호는 빈도 수) @ 김슬옹(2019). ≪한글교양≫(아카넷).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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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15세기에 108자의 의도나 의미를 밝혀 놓은 책이나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세종이 해례본을 발표한 뒤 언문 보급을 위해 <석보상절>(1447), <월인천강지곡>(1449)이라는 불경 책을 펴낸 맥락으로 보아 불심에 기대어 언문을 보급하고자 했던 세종의 마음을 담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백팔번뇌'라는 말은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일반 용어로 실려 있다.

백팔번뇌(百八煩惱) 사람이 지닌 108가지의 번뇌. 6근(根)에 각기 고(苦), 낙(樂), 불고불락(不苦不樂)이 있어 18가지가 되고, 이에 탐(貪)과 무탐(無貪)이 있어 36가지가 되며, 이것을 다시 과거, 현재, 미래로 각각 풀면 108가지가 된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엄청난 번뇌를 이른다. - 출처, 온라인 '표준국어대사전'

6근은 '눈, 귀, 코, 혀, 피부, 뜻' 등의 감각기관을 뜻하는 것으로 6*3*2*3=108이라는 것이다. 이 밖에도 108 유래에 대해서는 "6근(六根, 감각기관: 눈, 귀, 코, 혀, 피부, 뜻) *6경(六境, 감각 대상: 색깔, 소리, 향기, 맛, 감촉, 의식)=36*3(과거, 현재, 미래) =108" 등과 같이 다른 유래설도 있다(위키백과와 최시선 님의 <훈민정음 비밀 코드>(경진) 참조).

'108'이 어떤 유래에서 비롯되었든 마음속의 엄청난 번뇌를 뜻한다. 15세기에도 그런 뜻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다수 백성들이 한자를 모르는, 한자 사용으로 인한 문제(번뇌)까지를 염두에 두어 그런 108 코드를 부여한 것은 아닐까?

세종은 성리학 국가 이념 때문에 불교를 배척해야 하는 조선의 군주였지만, 백성들의 문화요 삶이었던 불교를 통해 훈민정음이 널리 퍼져나가길 바랐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 참조: 김슬옹(2021). 숫자로 보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의미와 가치 확산 방안. <주제로 보는 한국의 세계기록유산>. 경상북도ㆍ한국국학진흥원. 9-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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