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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장파리(장마루)는 '시간이 멈춘 마을'이다. 1970년대 모습이 남아 있다. 장파리는 민간인통제선을 접한 지역으로, 임진강 건너 DMZ를 바라보는 곳이다.

놀랍게도, 이곳은 한때 흥청망청 달러가 넘쳤다. 1960년대에는 서울 명동보다 화려한 유흥가였고, 1970년대 초까지 거리에 눈부시게 번쩍이는 미군 클럽이 즐비했다. 당시 명동보다 땅값이 비쌌다는 말까지 전해진다.

한국전쟁 이후 장파리에는 고향으로 갈 수 없는 실향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고 임진강 건너편에 미군부대가 주둔하면서 장파리에 시가지가 생겼다. 미군부대에서 넘쳐나는 사람, 물자, 일자리 등으로 인해 기지촌(외국군 기지 주변에 형성된 마을)이 형성되어 활황을 이루었던 것이다.

미군부대는 우리 역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그 시절의 모습은 영화 <장마루촌의 이발사>(1969년, 신성일 출연)에서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조용필이 음악 활동을 하기 위해 처음 찾아온 곳이 바로 '당시 가장 뜨는 곳'인 파주 장파리이기도 하다. 그가 활동한 미군 클럽이 장파리에 있었다(DMZ 홀).

기지촌에서 흘러나오는 미국 팝 음악은 한국 팝 음악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팝 음악만이 아니라 음식, 패션, 종교 등 미국 문화가 가장 먼저 퍼져나간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1970년대 미군부대가 철수하면서 기지촌은 그때 모습 그대로 멈춰버렸다. 이곳에는 아직까지 미군이 세운 재건중학교, 미군들이 예배를 보던 천주교 공소, 미군 클럽 '라스트 찬스'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문화 공간으로 운영되던 2017년 모습
▲ 미군 클럽 라스트 찬스 문화 공간으로 운영되던 2017년 모습
ⓒ 서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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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가장 잘나가는 미군 클럽이 라스트 찬스였다(1960년대 초 건립 추정). 운이 좋게 아직까지 남아 있어서, 미군 클럽이 한창 성하던 한 시대를 느낄 수 있다. 이집트와 그리스 신화를 담은 이색적인 벽화와 조각이 벽을 장식하고 있어 눈길을 끄는 곳이기도 하다. 한편 바로 뒤에 상당한 규모의 미군 위안부 숙소가 있었으나 지금은 철거되어 사라졌다. 
 
내부 벽면 장식
▲ 라스트 찬스 내부 벽면 장식
ⓒ 서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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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장파 재건중학교(1965년 건립 추정)는 안타깝게도 한쪽 벽이 무너진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역사의 쓰러짐에 입맛이 씁쓸하다. 재건중학교는 정식 중학교와는 다른 일종의 지방 야학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배우고 싶은 열망이 있으나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사정에 있는 아이들을 마을 주민과 미군이 가르쳤다.

당시에는 재건중학교에 다닌다는 것이 동년배 아이들에게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고, 재건중학교 출신들도 이를 굳이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이는 재건중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어려운 이유가 되었다. 
 
2017년 모습
▲ 장파 재건중학교 2017년 모습
ⓒ 서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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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이 쓰러진, 2022년 1월 현재 모습
▲ 장파 재건중학교 한쪽이 쓰러진, 2022년 1월 현재 모습
ⓒ 서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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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극장이 있던 터, 럭키클럽(미군 클럽) 건물, 정미소 등도 '마치 유령처럼' 자리에 남아 있다. 이곳에서 다행인 점은, 한 시대를 증언하는 건물인 라스트 찬스가 2021년에 경기도 등록문화재(근대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미군 클럽이 사라지거나 그렇게 될 처지에 놓인 반면 라스트 찬스는 잘 보존된 채 남아 있다. 잊혀진 라스트 찬스가 세상에 알려진 배경에는 사진작가이자 설치미술가인 윤상규씨의 노고가 있었다. 그가 라스트 찬스를 문화공간으로 운영하며(2013년 12월~2019년 1월) 그곳을 지키고 알리는 활동을 한 덕분에 근대문화유산 등록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잊혀진 현대사를 만날 수 있는 현장, 에코뮤지엄이 된다면?

장파리 마을을 통해, 한국전쟁 이후 미군부대 주둔이 지역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 현장을 볼 수 있다. 한 시대의 화석을 만날 수 있어 희귀한 장소다. 접경 지역인 파주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와 한국전쟁 이후 민초들의 고단한 삶의 이야기들이 숨어 있기도 하다.

오늘날 기지촌의 역사를 돌아볼 때, 때로 자랑스럽지 않고 부끄러운 모습이 있더라도 그것 또한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다. 외면하고 모른 채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품고 보듬어야 할 역사다.

최근 여기저기서 도시 재생 논의가 얄팍한 유행이 되었다. 그런 관점에서 이곳을 보는 것은 적당하지 않아 보인다.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예의'를 다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좋겠다. 즉 역사적 접근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우선,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라스트 찬스 앞에 안내판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나아가 마을 자체가 근대문화유산일 수 있는 이곳이 '에코뮤지엄'(Ecomuseum, 지역 고유의 문화유산을 그 자리에서 보존하고 활용하는 마을 박물관)으로 성장한다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또는 생활했던 주민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그 이야기를 활용해 특유의 장소성을 드러내며, 한 시대를 돌아볼 수 있는 에코뮤지엄이라면 어떨까. 어쩌면 그것이 '장파리의 라스트 찬스'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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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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