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28 06:08최종 업데이트 22.01.28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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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끝으로 '#해시태그 비-사이드' 연재를 종료합니다. 그동안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자말]
퀴어 유튜브 채널 큐플래닛은 1월부터 '페미니스트+퀴어 시사정치 토크쇼 권손징악' 두 번째 시즌 방송을 시작했다. 단체들이 바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1월에 시즌 2를 시작한 이유는 단연 대통령 선거 때문이다. 시사정치 방송이 대선이라는 큰 정치적 국면을 앞두고 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선거를 앞둔 때는 늘 그랬지만 요즘은 특히 언론들의 정치면 기사를 유심히 살핀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그 일을 한다. 하지만 전혀 즐겁지가 않다. 물론 정치권 소식을 들으며 기분 좋은 순간이 많지는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흥미조차 생기지 않는다. 일 때문에 기사를 봐서 그런가 싶었는데 주변을 둘러보면 상황이 비슷하다. 대선 관련 뉴스를 궁금해 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오히려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네거티브 전략이나 표를 받을 때만 등장하는 정치인들의 쇄신과 읍소까지. 하지만 이건 어느 선거에서나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선거가 과열 양상으로 치달으면 언급한 광경들은 극한으로 치닫기를 반복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른 걸까.

어쩌면 지금 사람들이 호소하는 짜증은 '이런 모습들이 보여서'가 아니라 '이런 것조차 없어서' 때문은 아닐까. 특히 당선 가능성이 높은 여야 거대정당 후보들을 보고 있으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어느 쪽을 골라도 그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다. 비전과 의제가 보이지 않는다.

책임감 없는 선동의 정치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27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정치 분야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여성가족부 폐지'

이준석 대표와의 갈등이 극적으로 봉합된 이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SNS에 올라온 게시물 내용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대통령 후보가 SNS로 주요 공약을 발표하는 게 못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문장도 아닌 겨우 일곱 글자의 메시지를 발표하는 건 이상한 일이지 않나.

일각에서는 윤석열의 이런 행보가 소위 '이대남'의 표심을 노렸고 그것이 적중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아마 맞는 말일 것이다. 20대 남성의 페미니즘을 향한 반감이 높고 그 감정이 여성가족부 폐지론과 같은 모양새로 표출되어왔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주장을 대선 후보가 그대로 이야기 해주었는데 남성들이 윤 후보에게 호응을 보내는 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건데 윤석열은 다른 어떤 공직도 아닌 대통령 후보다. 백번 양보해서 대선 후보가 특정 정부부처 폐지를 공약으로 삼고 여성가족부가 그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다. 부처를 어떤 과정을 통해 없앨 것이며 주관하던 일들은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계획을 제시해야 하는 것도 포함이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단문의 SNS 게시글을 통해 알 수 없을 뿐더러 이후 이어진 후보나 선거 캠프 구성원들의 인터뷰에서도 구체적인 그림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아무런 계획이나 대비도 없이 정부부처 하나를 그냥 날려버리겠다는 뜻인가. 대통령 후보자로서 보여야 할 진중함과 책임감은 어디로 갔나.

윤석열 후보의 최근 정치적 행보에 의구심이 드는 건 거기에 특정 지지층의 호응을 유도하는 것 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단순한 문구를 전달하는 것을 통해서. 대통령 후보로서 의례적으로 보일 법한 최소한의 정치적 수사도 없다. 그리고 의제를 제안하고 끌고 가는 게 아니라 특정 집단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방식으로 지지율을 끌어오려 하고 있다. 이게 위험해 보이는 게 나 뿐인가.

공적 사안인지 의아한 네거티브의 연속

한편으로 대선 국면에서 도마에 오른 것은 김건희씨의 7시간 통화 녹취록이었다. 공개를 하느냐 마느냐부터 시작해 그 여부를 결국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난리가 벌어졌다. 하지만 선거 판도를 뒤흔들 수 있다는 예측과 달리 파급력은 그리 크지 않았다. 겨우 이런 이야기를 방송하려고 했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개인적인 감상을 더하자면 김건희씨의 발언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보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정말 별로였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김건희씨가 이런 발언들을 방송국에서 마이크를 잡고 한 것도 아니었다. 사적인 대화중에 나온 내용이다. 그가 정말 무속인의 말만 듣고 청와대 영빈관을 옮기거나 특정 언론을 탄압한다면 그건 문제다. 하지만 녹취록만 듣고 정말로 그 일이 벌어지리라 확신할 수 있는가.

그 말이 허풍인지 위악인지 정말 진지한 선언인지 알 수는 없다. 하다못해 대화 내용에 구체적인 모의나 계획이 등장한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김건희씨의 발언들이 불쾌한 해프닝일 수는 있지만 여론을 집중시키고 정치의 장에 등장시킬 만큼 공적인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 이건 김건희 개인에 대한 호오를 결정할 수준의 일이지 책임을 물을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여당 정치인들은 이 녹취록을 가지고 네거티브 공세를 펼쳤다. 녹취록 내용을 담은 MBC <스트레이트> 방송을 전후로 발언에 논평에 인터뷰가 이어졌다. 심지어 이재명 후보가 '네거티브 중단'을 선언한 날에 같은 당 김용민 의원이 상임위에서 녹취록을 트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드는 의구심은 이야기 할 게 넘쳐나는 이 대선 판국에, 언론도 아닌 정치권이 이 이야기를 의제로 밀고 나가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그나마 김건희씨의 대화 내용에서 공적 책임을 물을만한 것은 미투 운동 폄훼와 성폭력 가해자 두둔이었다. 시민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윤리적 감각과 책임감이 결부된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발언은 민주당 정치인들 사이에서 쟁점이 되지 못했다.

대선판에서 정치를 보고 싶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26일 경기 부천시 근로자종합복지관에서 노동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대선 국면이 점점 과열되는 사이, 한쪽에서는 대선후보로서의 책임감은 내동댕이치고 공약조차도 아닌 위험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유권자들이 정말 알아야 하는지 의심스러운 사안을 정치적 쟁점으로 몰고 있다. 반복하건대 이런 일은 선거가 치열해질수록 왕왕 벌어지곤 한다. 하지만 의제 제시도 국정 운영에 대한 청사진도 고위공직자 후보로서의 품격도 보이지 않거나 상실된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소란과 스캔들 말고는 남는 게 없기 때문이다.

이제 선거일까지 40일 가량의 시간이 남았다. 나는 이번 대통령 선거가 추문과 소동뿐인 사건으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 매우 암울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거대 여야 정치인들이 책임과 품격을 놓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 다음 왜 집권을 하고 싶고 그래서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제대로 보여주길 바란다. 치열하게 정책을 논하고 능력을 입증하길 바란다. 정치의 수준이 이 정도로 후퇴한 채 선거가 끝나면 다음에 다시 되돌아오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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