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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카페에서 바라본 동망봉
 낙타카페에서 바라본 동망봉
ⓒ 오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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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역에서 내려서 767미터라는 지도만 믿고 갔는데, 올라가는 길 경사가 엄청나다. 오늘 가려는 곳은 창신 숭인 채석장 전망대. 카페 낙타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큰길에서 사잇길로 접어들면 저 멀리 전망대가 보이기는 하는데 한참을 걷는다.

조선 시대에 한양에 수도를 정하는데 주산인 북악산을 중심으로 좌청룡에 해당하는 곳이 이 산이었다. 우백호인 인왕산과 마주본다. 산의 모습이 낙타 등처럼 볼록하게 솟았다고 하여 낙타산 또는 낙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낙타가 이국적인 동물임에도 불고하고 낙타산, 낙타고개라는 지명이 종종 있는 걸 보면 그 옛날에도 중앙 아시아나 아랍 쪽과의 교류는 활발했던 것 같다.

이곳은 풍광이 아름다워 조선 시대 문인들의 별장터로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행인지 불행인지 낙산은 질좋은 화강석으로 만들어진 돌산이다. 일제강점기 조선 총독부는 이곳에 채석장을 만들어 총독부 건물과 조선은행, 서울역등 석조 건물을 지었다. 그 후 6.25 전쟁통에 피난민들이 산동네에 모여들어 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동네에 와 보면 불과 얼마 전까지도 돌을 캐던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든다. 이 산이 여느 산 같았으면 오랜 시간 방치 되면서 모난 곳도 둥글어지고 풀도 나고 나무도 자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산은 돌산이라 그런 것이 없다. 나에게는 약간 이국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풍경으로 비쳐진다.

창신동은 불편한 교통과 무질서한 집들로 도시재개발이 추진되었다가 주민들의 합의에 의해서 기존 도시를 유지하면서 개발하는 도시재생사업으로 전환된다.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지어진 건물이 창신 숭인 채석장 전망대다.
 
간결한 형태의 창신 숭인 채석장 전망대. 2층이 낙타카페다.
 간결한 형태의 창신 숭인 채석장 전망대. 2층이 낙타카페다.
ⓒ 오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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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헉헉대며 올라오니 드디어 아주아주 미니멀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산꼭대기에서 다시 허공을 지르며 올라선 전망대. 마치 건물 옥상에서 까치발을 하고 있는 격이다. 조진만건축사사무소에서 설계하고 2020년 서울시 건축상을 수상했다.

전망대에 올라가니 서울 시내에서 더 한 전망대가 있을까 할 정도로 뷰가 좋다. 서울 시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숨이 탁 트인다. 2층 낙타 카페에 가서 커피를 시켰다.

그릴 것이 너무 많아 어디서 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 이 많은 것들 중에서 무얼 그려야 하나. 아파트 숲속에 저 멀리 자그마한 동산이 보인다. 마치 도심의 섬 같다. 오늘은 저 섬을 그리자.

섬처럼 무정형인 대상은 밑그림이 필요없다. 펜으로 살살 그려 나간다. 가까운 곳까지 다 그리면 화면이 너무 복잡하니까 전경은 윤곽만 그린다. 뒤의 아파트는 섬과 같이 검은 잉크를 쓰면 앞뒤가 너무 붙어 보이니까 약간 차별을 두어 세피아 잉크를 썼다. 그리고 오렌지색 펜을 사용했다. 섬은 수채로 채색했다. 다 그리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뉴욕의 어반스케쳐 베로니카 라울러(Veronica Lawlor)랑 비슷해 졌다. 그녀의 그림을 좋아해서 따라 그리기도 많이 했었다.
      
낙타카페에서 바라본 동망봉. 자세히 보면 동망봉 왼편에 청룡사가 보인다.
 낙타카페에서 바라본 동망봉. 자세히 보면 동망봉 왼편에 청룡사가 보인다.
ⓒ 오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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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린 섬은 숭인 근린공원으로 단종과 관련된 슬픈 이야기가 있었다. 숭인 근린공원 왼편에 고려 태조 때 도선국사의 유언에 의해 창건된 청룡사가 있다. 낙산이 한양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산이어서 이 절의 이름이 청룡사가 되었다고 한다.

이 절은 창건 이래로 줄곧 비구니들의 공간이었다. 공민왕비인 혜비가 망국의 슬픔을 안고 스님이 되어 이 절에 있었다거나, 2차 왕자의 난 뒤에는 세자 이방석의 누나인 경순공주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세조 때에는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를 떠난 후, 정순왕후 송씨가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녀는 날마다 근처 산봉우리에 올라 영월 쪽을 바라보며 울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 그녀가 올랐던 봉우리를, 동쪽을 바라본다고 뜻으로 동망봉(東望峰)이라 이름지었는데, 내가 그린 도시의 섬이 바로 동망봉이다.

단종은 단종대로 유배지인 청룡포에서 구부러진 소나무에 올라앉아 이쪽을 보고 매일 울었다고 한다. 그가 세조에게 죽임을 당할 때가 17살이었으니 지금으로 보면 겨우 중학생 나이. 그에 반해 18세에 단종과 헤어진 정순왕후는 82세까지 살다 돌아가셨으니 과연 누구의 한이 더 깊었을까. 아무튼 단종에 관한 이야기는 어디를 들쳐봐도 눈물바다다.

흥미로운 스케치를 마치고 동대문역으로 내려가는데, 내려가는 길도 장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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