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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앞 겨울 논 풍경. 이장 투표 결과 뒤 내 마음에 남은 잔상.
 마을 앞 겨울 논 풍경. 이장 투표 결과 뒤 내 마음에 남은 잔상.
ⓒ 노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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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이사가 이장 선거에 나서겠다고 선포한 뒤 곧바로 변화가 생겼다. 반장은 곗돈을 떼먹은 총무처럼 종적을 지워버렸고, 부산댁 언니는 정말로 집이라도 내놔야겠다고 말했으며, 소평댁은 네발을 타고 산으로 들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선거대책본부는 철저하게 파괴됐다. 도덕적·정치적·전략적·배우자적 책임을 지고 선거판을 떠나겠다고 남편은 개수대 앞에서 설거지를 하며 풀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남편이 후보자 사퇴를 공식적으로 밝히자고 한 건 내가 박 이장의 전화를 받은 직후였다. 우 이사의 출마 선언이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박 이장은 내게 도와달라고 운을 뗐다.

그리고 박 이장은 30분이 넘게 일방적으로 정견 발표를 했다. 박 이장의 주장을 언론이 표제로 뽑았다면 이러했을 것이다.

'원칙주의자 우 이사, 이장에 취임하고 온 동네가 피로해져!'
'우 이사, 세상에서 사라진 원칙을 강조한 대가로 백전면의 모든 사업에서 음천마을 제외!!'
'백전면의 음천마을 패스, 우 이사 리스크 드디어 현실화되나?'

박 이장의 얘기를 전해 들은 남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우와, 진짜 선거판 무섭네!"

분위기 쇄신 위한 긴급 처방

정치란 이런 거구나 싶었다. 정치가 우리 삶의 모든 면면에 꼼꼼하게 스며들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나는 이런 종류의 정치에는 엮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박 이장과 통화한 뒤, 나는 우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 이사님, 저는 이제 후보자를 사퇴하려구요. 우 이사님 같은 분이 이장이 되시면, 우리 마을, 협동조합, 마을기업은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아서···."
"아이고, 후보자님! 그래 이제 사무장이나 반장이 정신 좀 차렸는지 모르겠네."


우 이사의 출마 선언은 선대본 내부의 분위기 쇄신을 위한 긴급 처방이었다.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분위기가 바뀌긴 했다. 다들 우 이사와 대면하기가 껄끄러워서 그런지, 하루에 대여섯 번씩 열리던 대책 회의가 어쩌다 한 번 정도로 대폭 줄어들었다. 그리고 반장과 소평댁은 대책 회의에 코빼기도 내밀지 않았다.

반장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이유는 짐작할 만했다. 스스로 인간의 도리와 세상의 이치에 능통하다고 여긴 반장이었다. 그런데 우 이사의 얼굴을 볼 때면, 상대방에 대한 유언비어를 만들자고 주장한 자신의 언행이 떠오를 것이고, 그때마다 결국 자신의 존재 근거가 계속해서 흔들리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었다.

소평댁의 경우는 반장보다는 좀 더 단순한 이유일 것이다. 아주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했는데도, 고작 대의명분 때문에 자신을 무시한 우 이사가 꼴 보기 싫지 않았을까 싶다. 소평댁이 살아왔고 살아가는 세계에서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90%의 사실과 10%의 거짓을 뒤섞어 만든 이야기조차 명확한 '팩트'로 인정되니 말이다.

소평댁의 선거 철학

투표를 이틀 앞두고 우 이사는 회의를 소집했다. 우 이사가 여러 차례 전화로 신신당부한 까닭에 반장과 소평댁도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태도는 사뭇 달랐다.

반장은 자신의 도덕성을 입증할 기회가 왔다는 듯 백의종군의 자세였지만, 소평댁은 마뜩잖은 표정을 한 채 소문을 유포하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며 우 이사를 설득하려 했다. 부산댁 언니는 재수가 없어서 ×이라도 밟은 기색이었다. 우 이사의 침착한 목소리가 조용하게 사방에 깔렸다.

"저 때문에 다들 의욕도 꺾이고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면 죄송합니다. 선거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당한 방법으로 이기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지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 안 카나. 그란데 눈에는 이 이에는 눈이믄, 우리가 우스븐 꼬라지가 되는 기라꼬."


소평댁의 반박에 우 이사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우리 사무장이 의욕이 너무 앞서서 처음부터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방향을 설정한 게 좀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구요. 남은 이틀 동안은 이웃들에게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하는 정도로 아름답게 이번 선거 활동을 마무리 지었으면 합니다."

반장과 부산댁 언니는 고개를 약간 끄덕였고, 남편은 멍한 표정으로 애꿎은 뒤통수만 벅벅 긁어 댔다. 이장 선거에 너무 많은 감정적 에너지를 소모했던 터라 나는 홀가분한 마음이었다. 우 이사의 발언에 오직 소평댁만이 불만이었다.

"아이고야, 너거는 어리가꼬 선거를 몰라도 한참 모린다. 내가 이제꺼정 이장 선거를 얼매나 마이 했겠노. 열씨미 하겠따, 신작로도 넓히뿌고, 가가호호 공구리도 쫙쫙 깔아삐겠다 캐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꼬. 저노무 쌔끼가 기냥 개새끼다, 요거만 영감 할마시들 가심패기에 씨를 던지가꼬, 고서(거기에서) 뿌리만 내리뿌믄 고걸로 선거는 끝나뿐다 안 카나. 차말로 답답해 죽겄네."

다들 소평댁의 기분이 안 상할 만큼만 슬쩍슬쩍 웃었다.

"다 치아뿌라(그만둬라). 내는 금촌댁이하고 박 이장이 이깃다꼬 처웃고 댕기는 꼬라지는 못 본다. 너거는 너거대로 해뿌라! 내는 내대로 해뿔 끼이까네."

갑자기 직선제에서 간선제로

김 영감 아저씨가 전화를 한 건 투표 하루 전날 정오께였다. 통화 내용은 극도로 미니멀했다. 처음엔 열 명의 이름만 쭉 불렀다. 그리고 이 사람들만 투표에 참여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이유는 코로나19 탓에 주민들 전체가 모이는 건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한마디로 전화 한 통으로 선거가 직선제에서 간선제로 바뀐 것이다. 대의원이라 할 수 있는 열 명의 인원이 어떤 기준과 절차를 거쳐서 선발된 것인지도 설명하지 않았다. 선거는 갑자기 이상한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우 이사의 믿을 만한 정보통에 따르면, 당황하기는 박 이장 쪽도 매한가지였다.
  
 선거인 명부 대조. 1967년
  선거인 명부 대조. 1967년
ⓒ 선거관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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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영감의 전화를 둘러싸고 선대본에서는 뒷공론이 분분했다. 하지만 대의원 10명의 성향을 분석하니, 나름 공정한 선발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우리 쪽에서는 나, 남편, 반장, 우 이사가 투표권이 있었다. 이쪽 4명과 저쪽 4명, 그리고 김 영감을 포함한 마을의 어르신 2명. 따라서 코로나19 전파를 염려한 마을 원로들의 결정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음모론자인 남편은 선대본의 판단에 동의하지 않았다. 투표를 하면 어차피 4대 4의 상황이 벌어질 것이고, 어르신들의 두 표로 당락이 최종 결정되는 것이니, 이것은 어르신들이 마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시도라고 해석했다. 그리고 둘 중 누가 이장이 되든 동네 원로들의 수렴청정이 뒤따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참으로 과도한 정치적 상상이었다.

어쨌든 부산댁 언니는 선거판에서 벗어나 속이 시원한 듯했고, 소평댁은 투표권이 사라져 섭섭하기보다는 마음이 급해 보였다. 투표가 끝날 때까지는 선거를 핑계 삼아 금촌댁에 대한 험담을 이곳저곳에서 마구 늘어놓을 수 있는데, 대책 회의 따위에 몸이 묶여 있는 것도 시간이 아까운 것 같았다. 어차피 투표가 종료되고 나면 서로에 대한 험담은 없었던 일이 되는 게 선거판의 관행이다 보니···.

오전 10시 마을회관, 마침내 어김없이 투표의 시간이 도래했다. 진행은 김 영감 아저씨의 몫이었다. 먼저 코로나19로 인해 선거 방식을 급하게 바꾼 것에 대한 사과부터 있었다. 그러고는 후보 출마의 변 및 공약 발표를 지시했다. 김 영감이 상당히 노련한 진행자라서 내심 놀랐다.

박 이장이 잠시 시간을 달라고 요청해서 나부터 몇 마디를 했다. 준비한 내용 중에 머리에 떠오르는 것들을 대강 정리해서 말했고, 남편이 가장 정성 들인 박 이장에 대한 공격적인 발언은 모조리 빼 버렸다. 불만이 가득한 남편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고, 나도 남편을 노려봤다. 후보자는 나 자신이고, 남편의 의견도 수많은 견해 중의 하나일 뿐이며, 최후의 '워딩'은 내가 결정하고 내 책임이었다.

이윽고 박 이장의 차례였다. 6년 동안 스스로는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하지만, 주민들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말과 그래도 자신을 지지하는 주민들이 있으니 후보자로 나섰다는 말만 짧게 남겼다.

박 이장의 기권

준비된 종이에 무기명으로 당선을 원하는 후보자의 이름을 적는 순서만 남아 있었다. 그때 갑자기 박 이장이 자신은 투표에서 기권하겠다고 선언했다. 후보자에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투표를 하지 않겠다는 얘기였다.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기권은 하지 않았다. 나를 믿고 지지해준 사람들을 위해 투표용지에 내 이름을 적는 것이 그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6 대 3으로 내가 이장에 선출됐고, 박 이장은 업무와 관련해서 언제든 도와주겠다며 내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고맙습니다, 이장님! 근데 왜 기권을···."
"아이고, 노 이장! 이장은 무슨, 인자는 자네가 이장 아이가. 기권? 어차피 내가 기권을 안 했뿟어도 자네가 이장 했을 낀데 뭐. 왜 기권했냐꼬? 몰라, 진짜로 나도 잘 모리겠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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