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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이 되니 붕어빵 생각이 났다. 그런데 붕어빵 파는 곳을 쉽사리 볼 수 없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어느 날 퇴근하는 길 회사 근처에서 붕어빵 장수를 만났다.

'붕어빵 한 개 칠백원, 세 개 이천원'

내 손에는 잔돈이 짤랑거리고 세 개를 다 먹을 수 있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사 먹은 건 재작년쯤인 듯하고 그때는 두 개에 천 원이었는데 하는 생각도. 일부러 나처럼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으니 가격을 높이 부르는 건가도 싶었다.

"이천 원 어치 주세요."
"네. 바쁘세요? 앞에 학생이 주문해서 좀 기다리셔야 하는데..."


아저씨의 사람 좋은 웃음을 보니 이런 내 생각이 미안해진다. 그의 재빠른 손놀림에 따라 움직이는 붕어빵 기계를 쳐다보고 있자니 초등학교 시절의 오래된 기억이 떠오른다.

아빠는 내가 기관지가 약하다고 늘 걱정하셨다. 그날도 직장 일 도중에 시내 한복판에 있는 이비인후과에 나와 함께 가셨다. 단골 손님처럼 찾아갔지만 그곳은 역시나 좋아할 만한 곳이 아니었다.

콧속에 쇠꼬챙이가 들어와 독한 약을 집어넣는데 꼭 감고 있어도 눈물이 찔끔 났다. 병원을 나와 '버스를 타야겠지' 하고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아빠가 나를 불러 세웠다. 내 눈에 띈 건 '붕어빵 세 개에 천원'이라는 글자. 아빠는 붕어빵 봉투는 내 잠바 오른 주머니에 넣어 주셨다.

"주머니에 넣어 놔. 손 따뜻해지게."

한 입도 먹지 않았는데 배가 부른 듯했다. 나를 집으로 데려다 주신 아빠는 다시 직장으로 향하셨다. 나는 붕어빵이 내내 식지 않았으면 하면서 언니와 동생에게 나눠주지 않았다.

아마도 아빠는 내가 병원에서 눈을 질끈 감는 모습을 보셨나 보다. 그 생각을 하니, 세 개에 이천 원 하는 붕어빵이 하나도 비싸 보이지 않는다. 삼십 년 전, 내 주머니를 따뜻하게 해 준 붕어빵이 오늘도 내 입 안을 달달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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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보통의 일상이 아니라, 매 순간이 그 무언가 섬some띵thing이 되도록 노력하는 인생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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