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의 수혜자이지만, 그 요구에 충분히 부응하지 못했다. 약자나 소수자 보호, 부동산 개혁, 재벌개혁, 한반도 문제 등에서 결과적으론 불철저했다. 이런 결과가 축적돼 대선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권유지보다 정권교체를 희망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권교체 뒤의 대안이 무엇이냐고 하면, 마땅치 않다. 수권을 감당할 정당이 실질적으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둘뿐인 상황에서 정권교체가 일어난다면, 국민의힘이 새누리당 시절을 회복하는 결과밖에 되지 않을 가능성 역시 크다.

혁명을 피해 간판을 바꾼 정당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2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중앙선대본부 글로벌비전위원회 주최로 열린 '자유·평화·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 정책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2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중앙선대본부 글로벌비전위원회 주최로 열린 "자유·평화·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 정책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정권교체는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대중을 위해 민주당보다 더 나은 정치를 펼 수 있는 정당이 집권해야 건설적 정권교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힘은 최근 몇 년 사이에서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오른 정당이 아니다. 새누리당이 촛불혁명을 피해가고자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국민의힘으로 간판만 바꿨을 뿐이다. 그때문에 새누리당 시절의 정치, 한나라당 시절의 정치, 신한국당 시절의 정치, 민주자유당(민자당) 시절의 정치, 민주정의당(민정당) 시절의 정치로의 회귀를 걱정하는 유권자도 있다. 그것을 과연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정권교체라 할 수 있을까.

새누리당에서 국민의힘으로 간판을 바꾸는 동안에 다소의 변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앙당은 물론이고 지방 차원에서도 국민의힘은 이전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무엇보다, 주력을 형성하는 사람들의 면면이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것을 '좋은 정권교체'로 받아들일 세력은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정권교체를 현식적 이익으로 받아들이는 세력이다. 재계·언론계·종교계·교육계·검찰·법원 등에 포진한 소위 '특권층'이 그들이다.

누가 웃는가

윤석열을 후보로 만든 것은 국민의힘의 구성원들이다. 그러나 이 상황을 만든 힘은 보수 특권층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윤석열을 내세워 박근혜 탄핵 이후의 진보적 흐름에 제동을 걸고자 하는 이들의 열망이 윤석열 현상의 배후에 있다는 분석이다.

보수 특권층이 자신들의 이익 구현을 위해 얼마나 철저한가는, 박근혜 탄핵 때 일반대중의 편이었고 그뒤 민주당 정권의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을 자신들의 대리인으로 세운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국민의힘이나 전통적 보수 진영에서는 대안을 찾지 못하게 되자 상대 진영에서라도 그것을 찾아내고자 했으니, 얼마나 현실적이고 '실용적'인가. 그만큼 절박했다고도 볼 수 있다.

전체적 구도에서 본다면, 대선이라는 장기판에서 윤석열은 '보수 특권층의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박근혜 탄핵 이후에 보수 특권층이 입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선거에서, 하필이면 과거 박근혜에 맞섰던 윤석열이 그들의 대리인으로 선정된 것이다.

또다른 의미에서 '실용주의'라 할 수 있다.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쿠데타가 터져 새로운 정권이 수립되는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보수 특권층이 선거를 통해 정권 창출에 영향을 줄 수 있을 때는 이런 전략이 자주 구사됐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전두환 정권은 자발적으로 특권층과 제휴했기 때문에, 이들의 집권 당시에는 그런 전략이 구사될 필요가 없었다. 두 경우를 제외하고, 지금처럼 특권층의 이익이 위협을 받을 때는 특권층의 집단적 이성이 그런 전략을 만들어낸 사례가 많다.

보수 특권층이 일본제국주의를 지지하고 이권을 보장받던 상황이 8.15 해방으로 갑자기 종결됐을 때였다. 대중들의 친일청산 요구로 특권 유지가 힘들어진 보수 특권층은 반대편인 독립운동 진영에서 자신들의 지도자를 찾아냈다.

대통령 만드는 보수 특권층 

그 당시 특권층은 '친일청산=빨갱이'라는 논리를 만들어 진보진영을 탄압하면서도, 위기를 돌파하고자 독립운동가 출신을 대통령으로 내세웠다. 대중을 기만하고 자신들의 본질을 은폐하는 방식을 구사했던 것. 독립운동가 출신들이 이승만 정권의 대통령직과 장관직을 점한 데는 그런 배경이 작용했다. 독립운동가 출신들을 방패 삼아 위기를 탈출하려는 <동아일보> 김성수를 위시한 보수 특권층의 생존 전략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6월항쟁의 여진이 계속되고 노동운동·통일운동이 봇물처럼 터지던 시절에도 그런 전략이 구사됐다. 민정당 정권은 정보기관과 경찰력만으로는 억누르기 힘들다는 판단이 들자 민주화투사 출신의 야당 지도자인 김영삼을 끌어들여 3당 합당을 성사시켰다. 그 뒤의 공안정국으로도 대중의 기운을 억누를 길이 없자, 결국에는 김영삼을 자신들의 대선 후보로 내세웠다.

김영삼은 보수 특권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박정희·전두환 정권에 맞서 싸웠다. 그런 김영삼이 1990년대 초반에 보수정당 지도자로 옹립된 것은 특권층의 여론이 그에게 호의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김영삼이 대통령이 돼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침해하지 않으리라는 특권층의 믿음이 그런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1997년에 보수진영 대선 후보로 선택된 이회창은 집안 배경이나 판사·대법관 같은 경력만 놓고 보면 보수 특권층의 전형적 인물이다. 하지만, 1990년대 당시의 이미지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1인 중심의 인치주의를 배격하는 1987년 6월항쟁 이후의 법치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당시의 이회창은 적어도 이미지 상으로는 보수 특권층과는 딱 들어맞지 않았다.

1987년 직후에는 '법대로 하자'는 것도 시대를 선도하는 구호였다. 그 이전 정권들이 법을 제정해놓고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1987년 이후의 새로운 흐름을 대변한 인물이기 때문에 1990년대 의 이회창은 보수정당뿐 아니라 민주당 같은 데로 가도 어울릴 만했다. 그런 이회창이 신한국당 대선후보로 옹립된 것은, 김대중에 맞설 대항마가 마땅치 않았던 시기에 정권을 방어하고자 보수 특권층이 내린 선택의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

김대중·노무현 집권으로 보수의 위기감이 고조됐던 시기에 한나라당 후보로 선택된 이명박은 현대그룹 CEO 경력만 놓고 보면 보수 특권층이었지만, 한일회담 반대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수감되고 징역형까지 선고받았다. 그랬기 때문에 보수 특권층의 전형적 인물이라 할 수는 없었다. 그런 이명박을 보수 특권층은 김대중·노무현 10년을 끝장낼 목적으로 자신들의 대리인으로 삼았다.
 
2010년 8월 21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이 청와대 본관 백악실에서 배석자 없는 비공개 오찬 회동을 갖기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2010년 8월 21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이 청와대 본관 백악실에서 배석자 없는 비공개 오찬 회동을 갖기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 청와대 제공

관련사진보기

 
이처럼 기득권을 지키거나 만회하기 위해서라면 자신들과 꼭 닮지 않았더라도, 이전에 적대 진영에 있었더라도 자신들의 지도자로 정중히 모셔놓고 '말'로 활용하는 것이 보수 특권층의 현실주의·실용주의 전략이다.

그런 보수 특권층이 지금은 윤석열을 지도자로 추켜세우려 하고 있다. 장차 그를 '말'로 활용하려 하는 것이다. 그를 활용해 2016년 촛불혁명 이후의 흐름에 제동을 거는 것이 그들의 희망사항인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선이 누군가를 위한 정권교체의 계기가 된다면, 그 누군가는 일반 대중이 아니라 보수 특권층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태그:#대선, #윤석열, #정권교체, #기득권층, #보수세력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