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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이다. 초등학생인 조카가 제 남동생과 공깃돌을 가지고 홀짝 놀이를 하고 있었다.

"홀? 짝?"
"홀!"


여러 번 패해서 공깃돌을 거의 빼앗기다시피 한 남자 조카는 결국 갖고 있던 공기 전부를 '홀'에 걸었다. 결과가 궁금해 힐끔힐끔 곁눈질로 지켜보는데, 여자 조카는 손을 펴서 승패를 가르는 대신 제 동생에게 멘트 하나를 날린다.

"결과는 60초 후에 알려 드리겠습니다!"

누가 봐도 '홀'을 인정한 약아빠진 액션이다. 그 깍쟁이가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는 이유 중 하나는 '수제 카레' 때문이다. 언젠가 함께 식탁에서 밥을 먹던 제부가 의외라는 듯 조카한테 물었다.

"이게 맛있어? 건더기는 하나도 안 보이고, 수프뿐인데...."
"그래도 맛있어요. 이모네는 카레 맛집이에요!"


조카의 대답이 아쉬워 나도 한마디 보탰다.

"수프 뿐이라니? 야채 볶을 때 식초에 세척한 사과 넣어 볶고, 간장 알맞게 섞어 약한 불에 뭉근하게 끓인 건데. 어디 그 뿐여. 싫다는 건더기는 일절 안 들어가게 일일이 체에 걸러 대령한 걸세."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서러운 항변이기도 했다.
 
 공주산성시장에서 2대에 걸쳐 떡방앗간을 운영하는 사장님은 칠순을 훌쩍 넘기신 분이다.
  공주산성시장에서 2대에 걸쳐 떡방앗간을 운영하는 사장님은 칠순을 훌쩍 넘기신 분이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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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초, 공주산성시장에서 2대에 걸쳐 떡방앗간을 운영하는 사장님을 뵈었다. 사장님은 귀동냥하고 일부러 찾아온 나와 지인에게 아침 일찍 방송국에서 촬영 나온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우리 집을 어떻게 알았나 몰러. 특별한 게 없다고 해도 촬영을 오겠다고 해서 아침 일찍 와서 찍을라면 찍으라고 했지. 그랬더니 진짜로 왔데. 나 지금 이 모양으로 찍었는데, 괜찮을까?"
"아유, 너무 멋지세요!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걸. 그 좋은 구경거리를 놓쳤네요."
"별거 안 찍었어. 그냥 우리 집 떡 만드는 거 찍었지. 인절미 만들었는데, TV에 나오는 그 양반도 먹어 보고 맛있다고 하대."


오다가다 인사만 드렸지 거래를 자주 하는 곳은 아니어서 이 집 떡이 그렇게 맛있는 줄도 몰랐고, 사장님 말씀 끝에 칠순을 훌쩍 넘기셨다는 것도 처음으로 알게 됐다. 
 
떡방앗간 사장님은 아버지 代부터 마늘과 생강 말린 것을 빻아서 고물로 썼다는 옛날식 인절미를 몇 점 내주셨다.
 떡방앗간 사장님은 아버지 代부터 마늘과 생강 말린 것을 빻아서 고물로 썼다는 옛날식 인절미를 몇 점 내주셨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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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할 때 만든 건데, 인절미 맛 좀 볼텨?"

거절할 이유가 없어 손뼉을 치며 좋아라 했더니, 접시가 없어서 미안하다며 사장님은 비닐봉지 위에 한 주먹 거리의 인절미를 내놓으셨다. 인절미를 평상 위에 놓기만 했는데도 구수한 내음이 진동했다. 

"너무 맛있어요!"

떡은 한입에 먹어야 제맛이라 했던가. 있는 힘껏 입을 벌려 입안에 인절미를 밀어 넣었더니, 쫀득하고 고소한 것이 어찌나 맛있던지.

"다른 집 떡하고 조금 다른 것 같은데요. 콩고물을 많이 쓰셔서 그런가요?"

한 점 먹었을  뿐인데, 대번에 다른 떡집 인절미와 다르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옛날식 인절미라 다른 집 인절미하고는 다르지? 콩가루에 말린 마늘하고 생강을 빻아 넣어서 그럴 겨. 아버지 때부터 우리 집은 그렇게 만들어 왔어."
"마늘하고 생강을요?"


요즘 인절미는 새로운 걸 찾는 소비자 구미에 맞춰 달디단 팥소를 넣기도 하고, 생크림을 바르기도 하고, 카스텔라 빵 고물을 입히기도 하지만, 원조의 맛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사장님께 숨은 맛의 비결을 듣고는 별스럽지 않은 재료에 또 한 번 놀랐다.

'공주인절미'는 2016년 특허청에 지리적표시단체표장으로 등록될 만큼 역사가 오래됐다. 1624년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에 피난을 왔다가 임씨가 진상한 절미떡을 먹은 데서 유래했다는 공주인절미(임절미)는 다른 지역 인절미보다 반죽을 오래 치대고 떡의 크기가 큼지막하다고 한다.

그닥 특별할 것까진 없어 보여 그간 궁궐에서 온갖 산해진미를 드셨을 인조가 "절미로다!" 감탄했다는 공주인절미에 고개를 갸우뚱해온 게 사실이다. 그런데 문득 마늘과 생강 고물을 묻힌 인절미를 드셨다면, 단순한 시장기 때문이 아니라 처음 맛보는 인절미에 칭찬을 아끼지 않을 수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가져다 뭐 하게?"

비닐봉지를 뒤집어 '남은 떡고물이라고 놓칠 쏘냐!' 살뜰히 챙기는 내게 사장님이 물으셨다.

"우유 끓여서 타 먹으려고요. 너무 아깝잖아요. 괜찮죠?"

생각 없이 한 행동이지만, 어쩌면 건더기 없는 카레가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깍쟁이 조카의 칭찬처럼 새해 복떡을 맛본 보답으로 사장님 어깨에 힘을 실어드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떡방앗간 촬영분은 설 명절 즈음하여 방송을 탄다고 한다. 유명 연예인이 들러간 점포가 아닌, 수십 년 정직과 성실로 떡 맛을 지켜온 방앗간으로 오래도록 만인에게 기억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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