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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 [편집자말]
"안전지마, 안전지마."

함께 외출하기 위해 집을 나서던 친정어머니가 중얼거리셨다.

"'안전지마'가 뭐예요?"
"안경, 전화기, 지갑, 마스크."


시를 좋아하는 어머니는 얼마 전 이문재의 시 <안전지>를 재밌게 읽었다 한다. 시인은 현관을 나설 때마다 '안전지 안전지' 하고 중얼거리는데, '안경, 전화기, 지갑'의 첫 자를 딴 말이다.

찻집이나 술집에서 일어설 때도, 버스 지하철 승용차에서 내릴 때도 '안전지 안전지' 하며 세 가지 물건을 챙긴다는 내용이었다. 코로나 시국을 반영해 '안전지'에 '마스크'를 추가한 '안전지마'를 챙기기로 했다는 어머니의 말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기억 못할 때마다 늘어나는 노화 고민
 
 자주 깜박 거릴 때마다 '이제 나이가 들어 머리도 나빠지는구나' 하고 자조 섞인 한탄을 하게 된다.
  자주 깜박 거릴 때마다 "이제 나이가 들어 머리도 나빠지는구나" 하고 자조 섞인 한탄을 하게 된다.
ⓒ envato el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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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에 들어선 나도 외출하려고 집을 나섰다가 '아차차!' 마스크를 가지러 다시 대문을 열곤 한다. 핸드폰을 집안 어디에 뒀는지 몰라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달라고 부탁하는 일도 부쩍 늘었다.

아침에 세탁기를 돌리고 나서 저녁 때야 생각나 빨래를 널거나, 어제저녁에 뭘 먹었더라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대화 중에 영화 제목이나 배우 이름이 혀끝에만 맴돌아 괴로울 때도 있다. 이럴 때마다 '이제 나이가 들어 머리도 나빠지는구나' 하고 자조 섞인 한탄을 하게 된다.

하지만 뇌과학자 이케가야 유지 도쿄대 교수는 저서 <벌써 오십, 마지막 수업 준비>에서 건망증이나 기억력 저하의 원인이 단순히 나이 들어 뇌가 노화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을 머릿속에 담고 있기 때문에, 특정 기억을 끄집어내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뇌 또한 노화를 피할 수는 없지만, 다른 신체 기능에 비해 늦게 노화된다. 그래서 신체 기능의 노화를 뇌의 노화로 착각해 '뇌 기능이 떨어졌다'고 말하는 경우도 많다. "예전처럼 책을 오래 읽지 못한다"는 것은 나이 들수록 한 자세를 오래 유지하기 힘들고 눈도 쉽게 피로해지는 등 체력이 떨어졌기 때문인데, 대개 자신의 뇌가 노화했다고 실망한다.

저자는 무언가 새까맣게 잊어버리는 현상 역시 나이 먹으면서 심해진다는 것 또한 착각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실시한 대규모 실험에서 까맣게 잊어버리는 횟수는 어린이와 어른은 별 차이가 없었다. 다만 어른들이 나이 들어 까맣게 잊는 일이 많다고 느끼는 이유는 시간의 인식이 아이와 다르기 때문이란다. 아이는 '요즘'을 3일에서 길어야 일주일 사이를 잡지만, 어른들은 과거 반년 이상의 경험을 헤아린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보다 중요한) 차이는 아이는 그런 일이 있어도 "또 까먹었네." 할 뿐 의기소침해지지 않다. 반면 어른들은 곧잘 나이 탓을 하며 슬퍼하거나 뭔가 큰 병의 조짐일지 모른다고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다. 걱정을 사서 하는 것이다. (16쪽)"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 생각났다. 당시 나는 아침마다 토마토를 먹으며 학교에 갔다. 그날도 토마토즙이 흐르지 않도록 야무지게 먹으며 학교 정문에 도착했다. 정문앞에서 이름표를 검사하던 고학년 언니가 말했다. "얘, 너 책가방은 어딨니?" 

나는 고개를 돌려 텅 비어 있는 내 등을 보고 깜짝 놀랐다. 책가방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학교에 간 일은 재밌는 추억으로 남아, 지금도 토마토를 보면 슬그머니 웃곤 한다. 아마 지금의 내가 비슷한 실수를 한다면, 치매 초기라며 걱정에 빠지지 않았을까?

의기소침은 그만, 직감력을 잘 활용하자
 
태국 음식인 푸팟퐁 커리 소스가 많이 남았길래 고추장을 더해 닭볶음탕을 만들었더니 이국적인 맛이 되었다.
 태국 음식인 푸팟퐁 커리 소스가 많이 남았길래 고추장을 더해 닭볶음탕을 만들었더니 이국적인 맛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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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게도 나이 먹을수록 향상되는 뇌 기능이 있다. 바로 '직감력'이다. 직감력은 후천적 경험을 통해 무언가 통찰하거나 행간을 읽는 능력이다. 축구선수는 근력이 최고조인 20, 30대에 정점을 찍지만, 시합 전체를 파악하는 '상황판단력' 같은 직감력을 가져야 하는 축구 감독은 40, 50대가 많은 이유다. 또 하나의 대표적인 예가 요리 감각이다. '소금 약간'이라고 할 때 어느 정도인지 수치화 하지 않아도 딱 좋은 맛을 내는 그 감각이다.

나 역시 요리를 막 시작한 신혼 때는 요리책에 나온 레시피와 똑같이 하려고 애썼다. 요리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레시피대로 계량하다 중간에 잊어버리면 쏟아버리고 다시 계량할 정도였다. '끓여가며 적당히 간을 맞춘다'라든지 '알맞게 절여지면' 같은 요리 방법은 와닿지 않았다. 요리 23년 차가 되고 보니 이제 레시피는 비율만 참조하거나 맛을 봐가면서 가감할 때가 더 많다.

응용하는 직감력도 늘어난다. 전에는 레시피에 나온 외국 소스를 사고 한번 사용한 뒤, 유효기간이 지나서 버리기 일쑤였다. 이제는 할라페뇨를 넣으라고 하면 청양고추 장아찌로 대체하는 대신 소금 양을 줄인다. 얼마 전에도 밀키트로 만들어 먹은 태국 음식인 푸팟퐁 커리 소스가 많이 남았길래 고추장을 더해 닭볶음탕을 만들었더니 이국적인 맛이 되었다.

단순히 '느낌'이나 '감'이라고 생각했던 '직감력'이 지금까지 내가 쌓은 경험과 지식에서 나오는 능력이라고 생각하니 나이를 그냥 먹는 것이 아니구나 싶어 기분이 좋다. 이제 사소한 건망증 정도로 '나이 들어 머리도 녹슬었다'며 의기소침해지지 말자.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발달하는 직감력을 어떻게 하면 더 잘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겠다. 앞으로 남은 생에서 만날 수많은 선택에서 내 직감력에 따라 주저하지 않고 적절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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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세상의 나뭇가지를 물어와 글쓰기로 중년의 빈 둥지를 채워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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