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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군산의 거리광고에서 눈에 띄는 문구 하나가 있었다.

'예비문화도시선정축하.'

우연히도 시에서 '문화예술인입주공모'라는 사업을 알게 되어 지원한 결과 당첨되는 행운을 얻었다. 문화와 예술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줄 알았는데 '지원자격란에 작가가 있고 책을 두 권이나 냈으니 선생님도 작가다' 라는 지인의 추천에 용기를 냈다.

새해가 오기 전 소망일지 첫 번째 칸에 '2022 동네책방지기'를 썼다. 글 쓰는 사람으로 부캐 하나를 얻으면서 어느새 나는 동네책방 오픈이라는 꿈을 현실로 만들고 싶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만의 글쓰기 공간을 만들기로 맘을 먹고 동네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최소 10평 이내에 보증금과 월세는 얼마까지 가능한지 고민했다. 이런 나를 보고 남편은 함께 운영하는 학원을 소홀히 할까 걱정하면서도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은 무조건 응원한다고 격려해주었다.

그런데 나의 바람을 하늘도 알았는지 신기하게 때맞춰 군산시 말랭이마을입주가 허락된 것이다. 군산을 문화도시로 설계하면서 문화예술인들과 기존 거주민들과의 상생을 통해 마을과 도시가 새롭게 재생되도록 이 마을을 운영한다고 했다. '과연 내가 이런 프로젝트에 적합한 자격이 있을까' 지금도 여전히 자신있게 대답하지 못하지만 최소한 문화도시라는 개념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문화도시란 법정 개념으로는 지역별 고유한 문화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문화 창조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역문화진흥법에 따라 지정된 도시다(문체부 보도자료 2019.12.30.). 문화도시사업의 비전은 문화를 통한 지속가능한 지역발전 및 지역주민의 문화적 삶 확산이다.

목표는 지역사회 주도의 지역공동체 활성화, 지역 고유의 문화가치 증진을 통한 지역 균형발전, 문화의 창의성을 활용한 지속가능한 성장기반 구축, 문화적 도시재생과 접목한 사회혁신이다. 문체부는 2022년까지 문화도시 30개 내외를 지정하고 권역별 문화도시를 발굴한다고 한다.
 
저 멀리 보이는 푸른바다 벽화가 있는 세모난 집이 동네책방 '봄날의 산책'
▲ 군산시 예비문화도시사업으로 문화예술인이 입주하는 말랭이마을 저 멀리 보이는 푸른바다 벽화가 있는 세모난 집이 동네책방 "봄날의 산책"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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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시는 '제4차 문화도시 예비사업 대상지'로 선정됐다. 이번 선정으로 군산시는 올해 12월까지 1년간 각종 예비사업을 추진하고 이후 심의를 거쳐 전국의 예비문화도시 11곳 중 6곳이 문화도시로 지정될 때 선정되기를 희망한다. 문화도시로 확정되면 5년간 최대 국비 100억 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군산시는 (예비)문화도시에 도전하면서 시민회의진행자양성과정, 시민설문조사, 시민조사단, 시민원탁, 문화밥상, 문화도시포럼 등을 통해 시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 조성계획서 완성, 문화도시 조성 및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또한 문화공유대학, 27개 읍·면·동에 군산살기와 예술창작이 가능한 문화스테이 조성, 동네문화지기 양성, 지역특성을 지닌 문화 발굴과 조사, 동네문화카페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2021.12.2 전북일보기사 참조).

군산 말랭이마을의 입주공모는 바로 문화스테이 조성이라는 사업이었다. 문화도시사업을 하는 다른 지역의 사례를 찾아 읽어보면서 나만의 공간을 소유해서 좋다는 단순한 생각을 한 게 부끄러워졌다. 내가 사는 지역 군산이 꿈꾸는 문화도시를 향해 함께 노력해야겠다는 뜻밖의 의무감과 책임감이 생겨났고 말랭이마을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말랭이 마을은 군산의 근현대역사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신흥동의 산봉우리에 있다. 말랭이라는 말도 산봉우리의 지역 사투리이다.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가진 도시들의 주거형태를 보면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은 중심에서 밀리고 밀려 산으로 올라가서 빈촌의 모습이 되었다.

이곳 말랭이마을 역시 바로 앞에 부의 상징이었던 일본식가옥(구, 히로쓰가옥)들이 즐비하다. 군산을 찾는 관광객들은 근대의 잔재이자 영화촬영소로 유명한 일본식 가옥만을 둘러보고 돌아간다. 산 말랭이로 옮겨져 살아온 지역민들의 삶을 볼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벽화에 그려진 건널목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여고생의 모습, 40여년 전의 나를 추억하게 했다.
▲ 담벼락의 주인인 복실이의 환영이 요란했어도 정겨웠다. 벽화에 그려진 건널목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여고생의 모습, 40여년 전의 나를 추억하게 했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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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랭이 마을은 기존의 지역민들이 떠난 자리를 군산시가 문화도시를 꿈꾸면서 보수를 했다. 각 집과 골목 중간중간에 옛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벽화를 그렸다. 소위 군산의 벽화마을이라고 SNS에 올려지면서 관광객들의 발걸음은 평지로 이어진 근대역사거리를 거쳐 산 말랭이 집과 골목길을 따라 구경하는 군산의 관광마을로 변화하고 있다.

군산의 대표적인 산인 월명산 점방산 설림산 장계산 등으로 이어진 월명공원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형상이다. 군산의 이정표인 수시탑으로의 등산길이 있고 양 날개를 펴면 왼쪽에는 금강하구와 오성산, 나포벌판, 오른쪽에는 월명산의 분신인 여러 산등성이와 산책로가 있어서 시민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일등 휴양처이다. 또한 드라마 전원일기의 주인공 배우 김수미씨의 어린시절이 묻어있는 김수미 생가가 있는 김수미 길도 있다.
 
아름다운 정거장, 말랭이 마을에 내려 찬란한 봄날을 맞고 싶다.
▲ 철도길이 벽화와 함께 말랭이 마을의 상징처럼 이어진다. 아름다운 정거장, 말랭이 마을에 내려 찬란한 봄날을 맞고 싶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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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당첨 후 바로 책방을 위한 사업자등록증을 받고 매일 한 번씩 나의 레지던스에 가보았다. 새해 첫날부터 생각보다 많은 관광객들의 방문에 내 맘은 설렜다. 빨리 책방 문을 열어서 말랭이 마을의 아이콘으로 홍보해야지, 오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차 한 잔씩 대접해야지, 이곳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해야지 등, 머릿속에는 수많은 욕심과 생각으로 가득찼다. 하지만 이 욕심을 덜어내주는 신비의 약은 바로 방의 크기였다. 약 세평의 공간에 꾸며질 책방 '봄날의산책'.

말랭이 마을 레지던스에 함께 입주한 작가들 대부분은 젊은 분들이다. 마술, 영상, 섬유공예, 도예, 유화, 서양화 등의 전문가들이 군산시의 입주공모를 듣고 지원해서 새로운 마을 주민이 되었다. 기존의 마을 지역민(노인층 33세대)과 신입 거주민(13명)이 어떤 하모니를 이루어낼까. 비록 시작은 미비하지만 기대치는 높다. 젊음과 연륜의 조화, 고전과 창의의 조화, 지킴과 열림의 조화가 있을 것이다.

전통 한복을 연구, 제작하는 복식(한복과 섬유) 공예팀의 이현미 작가는 동료들과 함께 입주했다. 첫 행사로 따뜻한 오월에 마을 주민들이 직접 자신들의 옷에 쪽 염색을 해서 입는 나눔 활동을 할 예정이다. 또한 기본을 지키는 한복(복식) 제작을 위해 전통 한복을 꾸준히 연구하고 주제에 맞는 복식을 작은 인형에 입혀 전시하는 등 아름답고 창의적 복식 문화를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마술을 하는 문태현 작가와 박승룡 작가는 '1m마술'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마을 공동체 모두가 신비로운 마술의 세상에 놀러와서 직접 마술 도구를 이용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특별히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마술 활동으로 지역공동체에 바라는 점이 있는지를 물었다.

"문화라는 것은 사람들이 공유하며 순화시키는 터전인데요, 이곳 말랭이 마을처럼 아무리 작은 곳이라도, 아무리 힘든 삶이 있는 곳이라도 문화의 꽃은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예술인이 되고 문화를 향유하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올해 내가 만난 새로운 가족 덕분에 나도 역시 더 젊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 젊은 작가들과 함께 얘기하고 그들의 예술성을 듣는다는 것만으로도 더없는 행복이다. 젊은 작가들의 예술성과 창의성, 현대적 감각을 배우고 싶다. 꼭 갚아야 할 빚을 지는 느낌도 있지만 이 속에서 그들을 위해, 말랭이 마을 지역공동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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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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