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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다본 동궁과 월지.
 하늘에서 내려다본 동궁과 월지.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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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라면 누구도 이 말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경주는 아름답고 비밀스러우며 놀라운 고대 천년왕국 신라의 숨결을 간직한 도시다." 단순히 시내를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역사책에서 얻는 이상의 지식과 감흥을 얻어낼 수 있는 공간이 바로 경주다.

우리 땅 어디에 이만한 역사 학습의 공간이 또 있을까? 10번을 다시 찾아도 서라벌이 안팎으로 간직한 천년왕국의 내밀함을 모두 헤아리기는 힘들다.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젊은이들의 활력으로 넘치는 황리단길을 지나 거대하게 솟은 대릉원의 고분을 바라보며 걷다보면 어느덧 첨성대가 보이고, 이내 '동궁(東宮)과 월지(月池)'에 이르게 된다.

낮에는 조용한 연못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길 수 있고, 화려한 조명이 불을 밝히는 밤이면 갓 연애를 시작한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각광받는 경주의 손꼽히는 명소. 신라 역사에 관심을 가진 아이들에게는 현장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고, 가족들끼리의 피크닉도 즐길 수 있는 곳. 동궁과 월지는 매력적인 경주의 보물 중 하나다.

이곳엔 많은 이야기와 사연들이 숨겨져 있다. 아무리 큰 상상력의 날개를 펴도 가닿기 힘든 아득한 옛날인 1300여 년 전 만들어져 21세기에 이른 지금까지 제 안에 간직한 비밀을 다 드러내지 않고 있는 동궁과 월지.

월지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경주시 인왕동에 위치한 월지는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8호로 지정됐다. 보기에 따라서는 곳곳에 산재한 다른 연못과 별 다를 바 없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월지는 그 안에 신라 천년의 역사를 담고 있는 아주 특별한 연못이다.

신라 천년의 역사와 문화 편찬위원회가 간행한 책 <신라의 유적과 유물>은 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월지는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군신이 모여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임해전의 위치에 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경주조에 '안압지는 천주사 북에 있다. 문무왕이 궁내에 연못을 파고 돌을 쌓아 무산 12봉을 상징하고 화초를 심고 진귀한 새를 길렀다'고 기록돼 있다."

안압지는 2011년 월지로 불리기 이전의 연못 명칭이다. 연못 서쪽에는 임해전터가 있다. 앞서 언급된 고문헌 <삼국사기>의 기록을 다시 한 번 읽어보자. 여기서 월지와 동궁의 건립 당시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을 터.
 
"문무왕 14년(674년)에 궁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宮內穿池造山 種花草 養珍禽奇獸) 또한, 같은 왕 19년에는 궁궐을 화려하게 중수하고 동궁을 지었다(重修宮闕 頗極壯麗 創造東宮)."

취재로 서너 번, 경주 여행을 하며 다시 두어 번 동궁과 월지를 방문했다. 20세기에 태어나 살고 있는 사람들은 7세기 지금의 경주 땅 신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어떤 사람들이 웃고 울며 살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미루어 짐작은 가능하다. 역사 공부는 그래서 필요한 게 아닐까. 신라의 국력이 나날이 커져가던 문무왕 통치 시기. 권력자들은 대내외에 힘을 드러낼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을 만들고자 했을 것이다.

아시아의 태국과 캄보디아가 거대한 석조 건축물을 축조해 왕의 권위를 높였고, 더 멀리는 로마와 그리스가 미려하고 웅장한 건물을 만들어 자신들의 능력을 드러냈듯이. 신라의 태자가 머문 것으로 추정되는 월지와 동궁은 축조 후에도 여러 차례 개축과 중수를 거쳤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삼국사기>를 인용해 아래와 같이 동궁과 월지의 변모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679년에 궁궐을 매우 화려하게 고쳤다고 하였고, 804년(애장왕 5년), 847년(문성왕 9년), 867년(경문왕 7년)에는 임해전을 중수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697년(효소왕 6년) 9월과 769년(혜공왕 5년) 3월, 860년(헌안왕 4년) 9월, 881년(헌강왕 7년) 3월에는 군신들이 연회를 가졌다고 하였으며, 931년에는 신라의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王建)을 초청하여 주연(酒宴)을 베풀고 위급한 정세를 호소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여러 왕에 의해 보수가 명해진 월지와 동궁은 통일신라 시기의 중요한 역사와 함께 한 빼놓을 수 없는 유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임해전(臨海殿)에 대한 궁금증

월지의 서쪽에는 임해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해전 터로 보이는 곳에는 아직도 밭이랑 사이에 초석과 섬돌이 남아 있다고 한다. "동궁과 월지는 임해전이 속한 통일신라의 동궁지로 알려진 곳"이란 게 앞서 언급한 책에 실린 내용.

임해전에 관해서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 <삼국사기> 효소왕 6년(697년)조다. 여기 실린 바에 따르면 임해전은 왕이 군신(群臣)에게 연회를 베풀던 장소였다. <동경잡기(東京雜記)>에는 "안압지(월지) 서쪽에 임해전이 있는데 언제 창건되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짤막하게 기록돼 있다고 한다.

이러한 옛날 기록을 볼 때 임해전은 안압지와 유사한 시기(674년 전후)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말한 대로 7세기 후반은 신라가 여러 차례의 전쟁을 통해 힘을 과시하며 삼국통일을 이룬 시기다.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이어지던 전투에서는 주목받는 전략가와 장수, 용기를 보인 병졸이 있기 마련. 이런 사람들을 치하하기 위한 연회가 자주 열릴 수밖에 없었을 터다.

동궁과 월지를 돌아보다가 임해전터에 서있으면 당시 신라 왕과 공을 세운 신하들이 술잔을 앞에 놓고 터뜨리는 호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이런 상상을 뒷받침하듯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포함한 여러 고문헌에는 임해전에 관련한 서술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이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안압지를 끼고 있는 임해전은 나라에 경사스런 일이 있을 때나 귀한 손님들이 왔을 때 군신들의 연회와 귀빈 접대 장소로 이용되었다. 769년(혜공왕 5년) 3월 이곳에서 왕이 베푼 연회가 있었고, 860년(헌안왕 4년) 3월에는 경문왕이 화랑으로 활동할 때 헌안왕이 이곳에서 베푼 잔치에 참석했다가 사위로 택해지기도 했다. 또, 881년(헌강왕 7년) 3월에는 왕이 여러 신하들을 모아 향연을 베풀고서 흥에 겨워 직접 거문고를 탔고, 신하들은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놀았다고 한다."

임해전은 백제 의자왕 때 세워진 망해정(望海亭)에서 착상을 얻어 건립되었다고 전해진다. 그 맥락과 성격은 임해전 앞에 있던 안압지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는 게 학계의 견해.

안압지에는 무산(巫山) 12봉을 본떠서 돌을 쌓아 산을 만들었다. 현대에 와서 진행된 발굴 결과 안압지에서는 세 섬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곧 삼신산(三神山)을 상징한다는 게 통설이다.

이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삼신산은 신선이 살고 있다고 전하는 중국 바다의 봉래산(蓬萊山)·방장산(方丈山)·영주산(瀛州山)의 3산으로, 안압지가 단순한 못이 아니라 바다로 상징되었다는 증거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 속 연못은 통일신라의 예술적 성취를 보여주는 수많은 유물들이 출토된 월지다.
 사진 속 연못은 통일신라의 예술적 성취를 보여주는 수많은 유물들이 출토된 월지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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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궁을 둘러싼 논란은 아직도 현재진행형

동궁은 말 그대로 신라의 왕자가 머물며 공부하던 궁이다. 최고 권력자로부터 후계자로 지목된 인물이 기거했으니, 그 규모와 화려함이 대단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궁은 태자의 권위를 드러내는 생활공간인 동시에 빼어난 학자들로부터 왕이 되기 위한 수업을 받는 학습공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동궁의 역할에 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분분하다. 사학자 김병곤은 논문 '신라 동궁의 역할과 영역-임해전 및 안압지와의 상관성을 중심으로'를 통해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동궁과 월지에서 동궁은 문무왕 19년(679년)에 만든 곳으로 태자의 권위를 드러내며 독자적인 주거 공간의 제공과 군왕에 어울리는 자질 향상을 위해 각종 교육을 실시하는 장소였을 것으로 보며, 이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큰 이견이 없다. 하지만 연회를 베풀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월지 및 그 인근의 전각과 태자의 교육기관인 동궁이 하나로 묶여있는 점은 동궁 및 그에 속하는 관청의 위치 문제, 월지궁 혹은 임해전과의 구분, 사적 명칭 문제 등 현재까지도 많은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월지와 동궁, 임해전은 각각 그 안에 천년의 시간 속에 축적된 내밀한 스토리를 품고 있다. 또한 관련된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의 갖가지 사연을 지켜봤을 게 분명하다.

앞으로의 연재를 통해 흥미로운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심정으로 동궁과 월지에 얽힌 모든 것을 여러분들과 함께 차근차근 알아가고자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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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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