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손질된 복어와 복어 정소로 맑은탕이 준비되고 있다.
 손질된 복어와 복어 정소로 맑은탕이 준비되고 있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관련사진보기

 
이른바 '맛집'을 다루는 신문 기사와 TV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시대다. 하지만, 거기서도 보기 쉽지 않다.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숨기고 싶은 자기 식당 '맛의 비결'을 말해주는 장면은.

한 숟가락 먹어보니 복어 맑은탕 국물이 일품이다. 담백하면서도 시원하다. 마주 앉은 가게 주인장에게 물었다. "이거 어떻게 만든 거죠?" 망설임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 그거요…."

그런데 국물 맛을 내는 방법을 설명하는 이야기가 과하게 길어진다. 노파심에 되물었다. "이렇게 자세히 설명하면 누군가 흉내내잖아요. 앞으로 가게 운영하기가 힘들 것 같은데…."

걱정하지 말라는 대답과 웃음이 돌아왔다. "말해줘도 아무나 못해요. 그러니 있는 그대로 써도 됩니다." 그래? 그렇다면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죽도시장 공영주차장 초입에 자리한 삼호복집·해물탕의 국물 만들기 비법은 이렇다.

먼저 잘 손질한 다시마와 멸치를 물에 넣는다. 그리고 팔팔 끓기 전에 불을 끈다. 왜냐? 지나치게 오래 끓이면 다시마에서 떫은 맛이 우러나고 끈끈한 액체가 나오기 때문.

멸치와 다시마를 건져낸 후엔 복어의 머리를 넣고 다시 3시간을 끓인다. 이후 복어 뼈와 찌꺼기를 건져내는 건 필수. 거기에 마늘과 생강을 넣고 끓이는 과정이 추가된다. 이제 끝이냐고? 아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국물에 무와 하얀 후추를 넣고 제맛이 나올 때까지 또 끓인다. 이렇게 하다보면 7~8시간이 훌쩍 지난다.

지금은 겨울이니 괜찮지만, 무더운 여름철을 상상해보라. 좁은 주방에서 새파란 가스 불을 그 긴 시간 동안 사용한다면…. 찜질방이나 사우나가 따로 없을 것이다. 거칠게 표현하면 거기가 바로 팔열지옥(八熱地獄)일 터.

비단 복어탕 뿐일까. 어떤 음식이건 제대로 만들어내기 위해선 이처럼 지난한 시간과 눈에 보이지 않는 지극한 정성이 필요하다.

웃으며 나가는 손님이 가장 고맙다는 '오너 셰프'

경북 포항 삼호복집·해물탕의 주인이자 주방장은 "내 이름을 신문에 쓰는 건 싫다"고 완곡하게 말했다. 들어주지 못할 부탁은 아니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식당을 운영하고픈 이들은 어디에도 있을 법하니. 요즘 젊은 세대는 '오너 셰프'라고 부른다. 가게의 주인이면서 요리도 직접 만드는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다. H씨(61)는 오너 셰프다.

앞에 언급한 복어탕 국물 만들기 비법을 알려주며 그가 말했다. "월급 받고 고용된 사람과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이 음식을 대하는 태도는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맞다. 그게 삼복더위에 개도 혀를 내밀고 헉헉대는 여름, 8시간 내내 뜨거운 불 앞에 기꺼이 서있을 수 있는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복어탕의 재료가 될 복어를 손질하는 H씨.
 복어탕의 재료가 될 복어를 손질하는 H씨.
ⓒ 경북매일 자료사진

관련사진보기

 
H씨의 이력은 독특하다. 대학에선 말레이-인도네시아어를 공부(경제학 부전공)했고, 학교를 마친 후엔 대기업 해외영업팀에 입사했다. 중국 현지법인에서 3년, 국내에서 12년 근무하던 동안엔 보통의 또래 남자들처럼 음식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마흔이 넘어 왜 복어탕 가게를 연 것일까?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 회사를 그만두고 음식 장사를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는지.
"바로 위의 형이 음식과 요리에 관심이 있어 개업 준비를 마친 상태였는데,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못하게 됐다. 그런 이유로 엉겁결에 내가 식당을 맡게 됐다."

- 복어는 요리하려면 자격증이 있어야 하지 않나? 취득하기가 쉽지 않다던데.
"식당을 늦게 시작해 복어와 복어 요리에 대해 잘 모르니 마음이 위축되고 편치 않았다. 가게를 연 이듬해인 2003년 학원에 등록을 했다. 함께 공부한 사람들은 오랜 기간 요리를 해온 호텔 주방장과 큰 식당 실장 등이었다. 등록 후 17일 만에 필기와 실기시험을 거쳐 복어 요리 자격증을 땄다. 원장이 '최단 기간에 합격한 아주 드문 경우'라며 놀랐다. 합격 비결? 그런 것 없다. 그저 배운 그대로 했을 뿐이다."

이야기가 이쯤에 이르자 두 단어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정직과 성실함. 가기 편한 지름길을 선택하지 않고, 다소 힘겹더라도 정도(正道)를 걸으려는 우직한 자세. H씨는 대학에 다니는 아들과 딸에게도 성실함과 정직이 사람살이의 최고 가치라고 가르친다.

서울과 부산에도 마음 알아주는 단골 있어 보람

복어는 병을 앓은 사람이 몸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식재료다. 소화 기능이 약한 이들에게도 좋다. 생선 가운데 양질의 단백질이 가장 많이 함유된 것 중 하나가 복어다. 복어탕에 들어가는 미나리와 콩나물, 무는 지친 간을 회복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애주가들이 복어탕을 즐겨 찾는 이유다.

삼호복집·해물탕의 종업원 두 분은 항상 웃는 얼굴이다. 한 사람은 10년, 다른 분은 8년을 그 가게에서 일했다. 짧지 않은 기간이다. H씨는 그분들을 이모님이라 부르며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식구 같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종업원만이 아니다. H씨는 단골손님도 가족처럼 생각한다.

- 20년을 같은 장소에서 영업했다. 단골이 많을 것 같은데.
"부산에 사는 초로의 부부 손님은 매주 우리 식당에 온다. 부산에도 복어탕 가게가 적지 않을 텐데…. 10년째 빠지지 않고 오시니 이젠 두 분이 올 때가 됐는데 오지 않으면 걱정이 앞선다. 혹시 어디 아픈 게 아닌가 싶어서."

- 손님을 거의 가족처럼 느끼는 건가.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식당 주인이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다른 한 손님은 4년 넘게 우리 가게에서 장만한 복어를 지인들에게 명절 선물로 보내고 있다. 그분은 서울에 산다. 이번 설에도 10개 정도의 복어 택배를 주문했다. 많이 팔아줘서가 아니다. 잊지 않는 게 더 고맙다."
 
복어는 병에서 회복 중인 환자들에게도 좋은 식재료다.
 복어는 병에서 회복 중인 환자들에게도 좋은 식재료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관련사진보기

 
언제나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

인터뷰를 위해 가게를 찾았을 때 H씨는 도마 위에 놓인 수십 마리의 대구횟대를 손질하고 있었다. 이름이 익숙지 않은 이 생선은 식해를 만들었을 때 그 맛이 일품이다. 삼호복집·해물탕을 찾는 손님 중에는 바로 이 대구횟대 식해에 매혹된 이들이 적지 않다.

또 다른 밑반찬으로 깔리는 개복치 장조림과 멸치 식해도 인기다. 큰 건 무게가 1000kg에 이르는 희귀 생선 개복치의 장조림은 포항이 아니면 맛보기 어려운 음식이고, 다시마에 싸서 먹는 멸치 식해는 짜지 않고 감칠맛이 있다.

생복 맑은탕과 매운탕을 주문한 손님 식탁에 놓이는 복 껍질 무침도 쫄깃함이 그저 그만. 싱싱한 미나리와 양파에 매콤한 소스가 잘 어우러졌다.

철학이란 거창한 게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지향하는 세계가 있고 궁극적으로 가 닿고 싶은 곳이 있다. H씨는 어떤 철학을 가지고 가게를 운영하는 걸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래와 같은 답이 돌아왔다. 구구한 부연이 필요할까? 그렇지 않을 듯하다.

"내가 만드는 음식을 모든 사람이 좋아할 수는 없다. 손님 100퍼센트가 만족하는 식당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항상 식구들과 함께 하는 밥상을 차린다는 마음으로 복어탕과 해물탕을 준비한다. 식사를 마친 손님이 웃으며 나갈 수 있는 분위기와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장사하는 이들에겐 손님의 미소만큼 보기 좋은 게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