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26 14:58최종 업데이트 22.01.26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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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전국요양서비스노조 서울지부는 지난해 2월 22일 오후 서울시청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필수노동자인 요양노동자에 대한 근본적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 권우성

 
돌봄 노동은 주로 사회적 약자가 제공해왔다. 가족 내 무급 노동은 주로 여성들이 담당했고, 사회화 된 돌봄 노동은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으로 지탱되어 왔다. 그로 인한 사회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돌봄 노동자의 급여 수준을 살펴보자. 2019년 사회 서비스 수요 공급 실태 조사에 따르면 사회 서비스 제공 인력의 주당 평균 노동 시간은 30.7 시간, 월평균 급여는 147.5만 원이다. 이는 최저임금의 110% 수준이다. 

사회 서비스 8개 영역 내에서 상담이나 교육, 재활 등의 영역을 제외하고 돌봄 영역만 보면 소득 수준이 더 낮다. 최저임금에 비해 노인 종합 돌봄은 95%, 장애인 활동지원은 96%, 가사 간병 방문 지원은 88%에 불과하다. 지역아동센터 등 소규모 사회서비스 제공 시설은 임금 체계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 형편이다. 
 

전자바우처 사업유형별 사회서비스 제공인력 노동시간과 월평균 보수 현황 ⓒ 박세경

 
생활시설의 돌봄 노동은 수면이나 휴게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장시간 노동이 대부분이며, 방문요양이나 장애인 활동지원 등 시간제 노동은 적정 노동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편이다. 게다가 이동·교대·대기 시간 등은 노동 시간에 포함되지 않는 불합리한 노동 조건이 도처에 산재해있다.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 불만족

돌봄 노동의 열악한 상황은 이들의 노동에 기대어 일상을 영유하는 돌봄 필요자인 아동에게, 노인에게, 장애인에게 그리고 그들에 대한 돌봄 책임을 지고 있는 가족 구성원들, 즉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확산된다. 


앞서 언급한 사회서비스 수요 공급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돌봄과 아동 돌봄 서비스 이용 경험자들 가운데 서비스를 중단한 경험이 있는 비율은 3% 미만에 불과하다. 그만큼 돌봄 서비스 의존도가 높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들 서비스를 이용해서 돌봄 욕구가 90% 이상 해소되었다고 응답하는 사람의 비율은 서비스 영역별로 11%(장애인 돌봄)에서 42%(일상생활지원)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 돌봄 노동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 되어있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문제는 결국 돌봄 노동에 대해 제 값을 치르는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 비용의 절감과 이를 통한 효율성 강화가 여전히 지배 가치인 시대에 대놓고 시대 역행적인 주장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의 돌봄을 받고 평생에 걸쳐 어떤 방식으로든 돌봄의 테두리 안에서 생존한다. 이런 면에서 버지니아 헬드는 돌봄을 중심에 두는 돌봄 윤리가 사회의 도덕적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얘기했으며, 누스바움은 자유로운 인간의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 돌봄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렇듯 돌봄은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하는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도 존재의 조건에 해당하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사회적으로 돌봄 수요가 제대로 충족되지 않는 경우 사회체제의 재생산도, 개인 차원에서 존엄한 자아의 유지도 불가능하다.

가족과 같은 사적인 영역이든, 사회적 영역에서 타인의 노동을 통해서든, 돌봄은 필수적이다. 코로나 위기에 직면한 사회에서 새로운 계급 구분을 제시한 로버트 라이시가 의료, 간호, 보육 등 대부분의 돌봄노동자를 '필수 노동자'로 분류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적절하다.

코로나 시기 필수 노동으로 분류

사회가 돌봄을 분담하는 '돌봄의 사회화'는 우리 사회의 작동 원리에 이미 깊숙이 스며들어있는 개념이다. 돌봄의 사회화와 돌봄 노동의 역할 강화라는 경향은 인구 구조와 가족 구조의 변화로 인해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OECD 주요국가 노인인구 비율: 2010-2020 (출처: OECD 인구통계 이용 필자 재가공) ⓒ 김진석

 
먼저 인구구조의 변화다. 2020년 현재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15.7%다. 일본의 28.8%나 OECD 국가들 평균인 17.5%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노령화율의 증가 속도는 주요 국가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최근 10년간 노인 인구 비율의 증가율이 OECD 평균인 21.1%의 두 배를 훌쩍 넘어서는 44.9%에 이른다(위 그림 참조). 통계청의 전망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5년에 전체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 사회에 도달할 전망이다.
 

연령계층별 인구 구성비(1960~2070년) ⓒ 통계청

 
가족 구조의 변화도 사회적 돌봄의 수요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 우선 1인 가구의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20년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재 전체 가구의 30.4%가 1인 가구에 해당한다. 부부와 미혼 자녀로 이루어진 가구의 비중(31.7%)에 육박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전체 1인 가구의 34% 가량이 60세 이상이다. 

이와 더불어 부부 가구의 45% 정도가 맞벌이기 때문에 여성에 의해 전담되다시피 한 전통적 돌봄 체계는 현실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인구 구조와 가족 구조의 변화는 사적 돌봄에서 사회적 돌봄으로의 전환이 선택이 아닌 필수임을 가리키고 있다. 
 

가구 수 및 1인 가구의 비율 변화 (출처: 통계청 인구통계 자료 이용 필자 가공) ⓒ 김진석

 
중요하면서 값싼 일자리의 역설

인구 및 가족 구조의 변화에 따라 사회화 된 돌봄의 확대 방안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어 왔다. 1990년대 말 외환 위기를 기점으로 사회적 돌봄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일정하게 형성된 이후 역대 정부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에 대해 나름의 방안을 내놓았다. 

문재인 정부의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양질의 공공 일자리 81만 개, 그 가운데 사회서비스 관련 일자리 34만 개에 대한 약속을 국민 앞에 내놓았다. 그 결과는 비관적이다. 정부가 내놓은 수치 상으로는 2020년 말 현재 계획 대비 99%에 이르는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한다. 

그러나 고용 형태와 임금 수준 등 일자리의 질 측면에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약속이 무색한 수준이다. 단적으로 가장 많은 일자리가 창출된 사업으로 거론되는 사회서비스형 노인 일자리의 경우 주 15시간 노동에 월 60만 원 미만의 급여를 지급하는 공공부조적 성격이 짙은 직접 일자리 사업이다. 양질의 사회서비스 일자리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이밖에도 어린이집 운영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어린이집 연장보육 전담 교사의 경우도 월 급여 110만 원 남짓한 수준이다. 

이처럼 돌봄 노동이 필수적이고 중요하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실제 돌봄 노동을 전담하는 일자리는 과소 평가되고 있다. 최근 연구들은 교육 수준이나 근속 기간, 고용 형태 등의 요인을 고려하더라도 돌봄 일자리는 비슷한 조건의 다른 일자리에 비해 시간당 임금이 낮을 뿐만 아니라 고용 형태의 측면에서도 불안정 고용과 불완전 고용의 문제가 심각함을 보여준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노동자의 기술, 경험, 자격 등의 속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돌봄 일자리의 저임금화를 '돌봄 임금 페널티'(care pay penalty)라고 정의했다. 돌봄 노동에 대한 과소 평가가 우리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돌봄 노동은 왜 안 좋은 일자리가 되었나 

돌봄 노동은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 노동으로 인식됐다는 점, 대면 노동의 특성상 기계화와 자동화가 어려워 생산성 증대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 과소 평가의 이유로 제기된다. 

자본주의의 역사 속에서 돌봄은 전통적으로 여성이 전담한 비공식 무상 노동이었다. 후기산업사회 이후 상품화와 제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유급 노동이자 하나의 직종으로 발달해왔다는 점은 돌봄 노동에 대한 과소평가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또한 돌봄 임금 페널티가 남성에 비해 여성에게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돌봄 노동의 과소평가가 젠더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돌봄 노동의 평가 절하는 낮은 임금수준, 숙련과 자격 등을 반영하지 않는 불합리한 임금체계, 이에 더해 불안정 고용과 불완전 고용 등 열악한 고용상의 지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발현된다. 이런 문제는 양질의 돌봄 노동 인력이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데 걸림돌이 된다.

그리하여 돌봄 노동에 대한 평가 절하의 문제는 돌봄 노동자를 넘어 돌봄 서비스의 수요자 그리고 가족 등 돌봄 책임자에 이르기까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파급력을 미친다. 대인 서비스라는 돌봄 노동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돌봄 서비스의 질은 돌봄 노동자가 경험과 훈련을 통해 축적한 전문성과 돌봄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가치관, 철학 등의 자질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돌봄 노동자들에게 열악한 노동 환경의 문제는 결과적으로 돌봄 서비스 수요자들에게는 충족되지 않는 돌봄 서비스 수요, 돌봄의 낮은 질, 더 나아가 낮은 삶의 질의 문제로 연결된다. 이런 문제는 돌봄 책임자들의 삶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결국 우리 사회의 재생산과 존엄한 개인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충족되지 않은 돌봄은 다른 누군가가 채워야만 한다. 사회적인 돌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빈 공간은 사적 돌봄이 메울 수밖에 없다. 

지난 2년 동안 팬데믹의 경험으로 사회적 돌봄의 역할과 가치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방역 지침 준수를 위해 사회적 돌봄이 일시 정지 상태에 이르렀을 때 그 공백을 메운 것은 결국 가족 내 무급 돌봄 노동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전통적 성별 분업과 여성에 의한 돌봄 전담은 발빠르게 과거의 모습을 되찾아갔다. 

돌봄 노동에 제값을

우리나라가 국민의 존엄한 삶을 보장하는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면, 평가절하 되어 온 돌봄 노동에 제값을 치러야 한다. 돌봄 노동에 제값을 치르는 방법 가운데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해법 세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시민적 기본권으로서 모든 국민의 보편적 돌봄권이 선언되어야 한다.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다운 생활'의 권리에 돌봄권이 포함됨을 법과 제도를 통해 인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돌봄기본법이나 사회서비스기본법과 같은 법률을 제정함으로써 돌봄의 사회적 가치를 공식화할 수 있을 것이다. 보편적 돌봄권의 선언과 이를 제도화하는 노력은 결과적으로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둘째, 돌봄권 보장에 대한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을 명확하게 한다. 사회적으로 노동력의 재생산과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수적인 돌봄에 대한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주요한 기능이자 책임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특히 돌봄 욕구가 생성되고 충족되는 공간으로서 지자체의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우리 사회 돌봄노동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 되어있고, 이로 인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 셔터스톡

 
셋째, 공립·공영 방식의 돌봄 공급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즉, 공공이 직접 설립하고 공공 인력에 의해 직접 운영하는 돌봄 공급자의 비율을 늘리기 위한 정책적 투자가 필요하다. 영리화, 산업화 된 돌봄 시장에서 돌봄 서비스 제공자는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기계화나 자동화 등의 여지가 적은 돌봄 서비스의 특성상 비용의 최소화는 결과적으로 돌봄 노동에 대한 평가 절하로 이어진다. 양질의 돌봄서비스 제공을 통한 시민 삶의 질 제고라는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사회서비스원과 같은 공공 돌봄 서비스 제공 기관을 확충해야 한다. 

대부분의 나라가 돌봄 노동자의 임금에 대해 페널티를 부과하는 것에 반해 거꾸로 가는 나라가 있다. 바로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오히려 30% 정도에 이르는 돌봄 임금 프리미엄을 적용한다. 심지어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큰 프리미엄을 적용한다. 1980년 이후 20여 년에 걸친 민영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체 사회서비스의 80% 이상을 공공이 직접 제공한다. 스웨덴이 주요 비교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삶의 만족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돌봄 노동에 대한 저평가가 뿌리 깊은 것이긴 하나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 제값을 치르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

* 필자 소개: 이 글을 쓴 김진석은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로서 교육과 연구, 사회봉사를 업으로 하고 있다. 돌봄과 사회서비스 전반에 걸쳐 연구를 수행해왔으며, 특히 현재는 사회서비스 정책과 전달체계, 갈수록 심화되는 불평등 구조에서 복지국가와 사회보장 제도가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에 연구의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한국사회복지행정학회장(전)과 한국아동복지학회장(현)으로 활동했으며, 시민사회 영역에서는 민주평등사회를위한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 상임공동의장(전)과 참여연대 사회복지실행위원회 위원장(현)으로 활동했다.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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