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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방금 뽑은 흰 가래떡을 건져올려 가지런히 담고 있다.
 부부가 방금 뽑은 흰 가래떡을 건져올려 가지런히 담고 있다.
ⓒ <무한정보> 김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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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갓 빼낸 가래떡을 한아름 안고 집에 돌아오면 성큼 다가온 설이 실감난다. 식구들과 둘러앉아 떡국을 한 술씩 뜨며 음력 새해 첫날 아침을 맞는다. 코로나19로 이마저도 그리운 풍경이 됐지만, 오래 전부터 이어온 전통이다.

"밥을 했을 때 시간이 지나면 굳는 멥쌀을 이용해 떡을 만들어 끓인 거예요. 가래떡은 설 전인 이맘때 온도(3~5도)에서 잘 굳어요. 절기에 맞춰 먹는 음식인 거죠. 동그란 모양에는 돈을 많이 벌고 복을 가져다준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조리방법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달라요. 북방문화 영향을 받은 곳은 만두를 넣어먹는데 전라지역에서는 드물죠. 떡으로 국을 해먹는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쌀이 귀했던 과거에는 지금처럼 대중적이지 않았고요"

봄봄방앗간 장시춘(56, 충남 예산군) 대표가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가래떡은 어느 방앗간에서나 뽑지만, '기본이 가장 어렵다'는 말처럼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들어가는 재료는 쌀가루와 물, 소금뿐. 집집마다 갖고 있는 노하우와 정성을 담아 만든다. 청양과 대전에서 처음 기술을 배운 장 대표는 연구를 거쳐 쫄깃한 식감을 더했다. 국을 끓인 뒤 시간이 지나도 잘 붇지 않는단다.

설을 앞둔 20일, 작업에 분주하다. 대흥 탄방정미소에서 가져온 예산쌀을 곱게 갈아 천을 덮고 찐 뒤 기계를 돌리니, 매끈한 흰 떡이 길쭉하게 나와 흐르는 찬물로 곧장 떨어진다. 한 번 뽑은 것은 다시 기계에 넣는다. 반죽을 많이 치댈수록 쫄깃해지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세 번을 뽑으면 흐물흐물해져 두 번이 제일 적당하다고 한다.

갓 나온 떡 한 조각을 입에 넣으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조청과 기름장에 찍어먹던 추억까지 저절로 소환된다. 길이를 맞춰 자른 가래떡은 바구니에 나란히 넣어 3일 동안 굳힌다. 휘는 것을 막고 고르게 말리려면 둘째날 하나씩 떼내 가지런히 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떡 써는 기계에 밀어넣자 떡국떡이 눈으로 따라잡기 힘들 만큼 빠른 속도로 우수수 쏟아져 봉투가 금방 찬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봄봄방앗간은 지난 2018년 예산상설시장 골목에서 문을 열었다. 수십 년 동안 유통업에 종사하며 경기·울산 등지에서 대형마트 점장을 지낸 장 대표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고향은 충북 음성으로 예산과는 아무 연고가 없지만, 기술을 익힌 청양과 이웃한 예산을 찾았을 때 군단위 지자체인데도 도심이 발달돼 있어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전국적으로 방앗간이 굉장히 많은데 관련 기술을 배울 만한 곳은 마땅치 않아요. 무척 다양한 노하우들을 갖고 있지만 표준화가 돼 있지 않습니다. 제가 해왔던 일이 운영기법에 대한 것이어서 방앗간에도 적용시키고 싶었어요. 협동조합을 만들어 근거지를 예산에 두고 확장시키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다양한 제품·청결한 시설관리 젊은층 공략
 
가래떡을 뽑기 위해 곱게 간 쌀가루를 담고 있다. 3일 동안 굳힌 가래떡을 기계에 넣으니 어슷하게 썰린 떡국떡이 우수수 쏟아져 나온다.
 가래떡을 뽑기 위해 곱게 간 쌀가루를 담고 있다. 3일 동안 굳힌 가래떡을 기계에 넣으니 어슷하게 썰린 떡국떡이 우수수 쏟아져 나온다.
ⓒ <무한정보> 김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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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예산에 있는 방앗간만 60~70여개, 그 사이에서 살아남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차별화를 위해 시설을 청결하게 관리하고 다양한 시도를 거듭한 결과, 젊은 손님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예산읍내뿐만 아니라 대술, 대흥, 응봉에서도 찾고, 천안과 아산, 공주에서 오는 손님들도 있다. 통상 오후 4시 전에 문을 닫는 다른 방앗간들과 달리 운영시간을 오후 6시까지로 한 것도 도움이 됐다.

대표메뉴 가운데 하나는 현미들깨가래떡이다. 현미쌀로 만든 가래떡에 통들깨를 넣은 것이다. 쫀득쫀득하면서도 고소한 들깨가 씹혀 간식삼아 먹기 좋다. 최근 '캠핑 열풍'이 부는 것에 착안해 떡을 불에 구워먹는 것과 비슷한 맛을 내기 위해 개발했다고 한다.

전통 증숙방식에 따라 제조하는 '찐 들기름'도 주력상품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것처럼 볶는 것이 아닌, 깨를 쪄 기름을 짠다. 예로부터 찜은 재료손실이 적고 부패를 막아주며, 소화를 도와 많은 음식을 조리할 때 활용했다고 한다.

투명한 유리병에 담긴 기름을 보니 샛노란색에 가라앉은 찌꺼기가 없다. 2020년 5월에 짜 상온에 둔 기름도 처음 모습 그대로다. 볶거나 찌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 '날들기름(생들기름)'은 균이 잘 죽지 않아 상할 염려가 있어 증숙방식을 택했다. 미숫가루도 찐 곡물을 갈아 만든다.

이뿐일까, 호두기름과 호두팩, 쑥 미숫가루, 우리지역 농산물로 만든 고추씨가루 등 여러 제품이 가게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구경거리가 많으니 기름을 다 짤 때까지 기다리는 일도 심심치 않다. 장판을 켠 의자에 앉아 있으면 차를 가져다주고, 기름을 활용해 개발한 화장품을 써보게 하며 의견을 묻는다. 

직접 농사지은 들깨를 가져온 한 손님은 "깔끔하고 찌꺼기가 적게 나와 좋아요. 몇 군데 다녔는데 성의껏 해줘 여기로 와요"라며 기름이 가득 담긴 병에 흐뭇한 눈길을 던진다. 마침 방앗간 앞을 지나던 이웃이 '(기름) 잘 나왔냐'며 반갑게 묻는다. 대화를 주고받더니 즉석에서 들깨가루 나눔이 이뤄진다. 

쑥개떡과 미숫가루에 들어가는 쑥은 대술 이티리에서 직접 재배하고 있다. 2년 전 시작해 지난해 첫 수확을 했다. 기존에는 경기·제주지역에서 난 쑥을 사용했지만 이왕이면 우리 지역산을 쓰고 싶었다. 

"예산과 충남지역은 쑥 농가가 없어 도농업기술원에 재배법을 문의하니 인진쑥으로 유명한 강화군농업기술센터를 소개해줬어요. 그쪽에서는 약쑥을 위주로 해 제가 하려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죠. 씨앗을 뿌리는 게 가장 쉽지만 대부분 중국산이에요. 근처에서 참쑥 뿌리를 캐다 심었고 그걸 본 마을 주민들이 요령을 많이 알려주셨어요. 쑥은 웬만한 잡초를 이기기 때문에 1년만 잘 하면 수월하게 농사지을 수 있어요. 3~5월 캐 모두 방앗간에서 썼죠."

방앗간 일만으로도 만만치 않을 텐데 농사까지, 그의 말대로 '굉장한 모험'의 연속이다.
 
방앗간 앞에 나란히 선 장시춘(왼쪽)·홍성진 부부.
 방앗간 앞에 나란히 선 장시춘(왼쪽)·홍성진 부부.
ⓒ <무한정보> 김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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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은 모습으로 곁을 지키며 응원하는 아내 홍성진(52)씨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장날이면 함께 무시루떡이나 인절미 등을 만들어 내놓는다. 장날만 맛볼 수 있는 떡을 사기 위해 들르는 손님도 여럿이다. 말하지 않아도 척척 손발이 맞는 부부의 모습에서 나란히 걸어온 지난 세월이 그려지는 듯하다.

"남편이 방앗간을 한다고 했을 때 처음엔 반대했어요. 줄곧 도시에서 생활했고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라 자신이 없었죠. 어린 시절 집 옆에 있던 방앗간을 떠올리곤 '한 번 해보자' 싶어 학원을 다니고 지인에게 물어 많이 배웠어요. 지금은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노하우가 어느 정도 생겼어요. 몸은 힘들어도 직장처럼 정해진 것 없이 시간을 유동적으로 쓸 수 있어 좋아요."

봄봄방앗간 한쪽 벽에는 우리 지역 독립운동가인 윤봉길 의사 사진이 붙어 있다.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언제나 정직하게 일을 해나가자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더 건강하고 맛있는 먹거리를 위해 매일같이 연구에 매진하는 봄봄방앗간, 맡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고소한 내음처럼 오래도록 지역에 스며들길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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