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코로나19'가 잠시 약해져서, 폐쇄되었던 마을경로당(시골은 마을경로당 겸 마을회관으로 사용한다)이 풀렸을 때가 좋았었다.

겨울이 되면 마을 어르신들은 농한기라 마을경로당이 일상적으로 출퇴근하는 곳이다. 마을경로당은 마을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겨울나기 필수품'과 같은 곳이다. 그들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는 사랑방이다.

이런 곳이 또 다시 폐쇄되자, 시골마을 겨울나기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경로당에 사람들이 모이지 않자 가뜩이나 삭막한 시골겨울은 더 삭막해졌다. 마을이 생기를 잃고, 우울모드로 전환한 듯이 보였다.

이때, 우리의 시골어르신들이 누구인가. 6.25한국전쟁도 겪어왔고, 각종 어려운 시대를 이겨나 온 저력이 있지 아니한가. 여기서 주저앉을 분들이 아니다.

드디어 대안을 찾았다. 바로 '비닐하우스'다. 실은 마을전용 비닐하우스는 아니다. 왕고엄니(울 마을 최고령자라 붙여진 별명)의 비닐하우스다. 그 엄니가 마을을 위해서 기꺼이 투자를 하셨다. 마을 어르신들이 하나둘 모이시다 보니 형성된 곳이다. 
 
비닐하우스에선 늘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비닐하우스에선 늘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 envato elements

관련사진보기

 
비닐하우스가 왜 선택되었을까. 그것은 비닐하우스가 겨울엔 제일 따스한 곳이기 때문이다. 해가 뜬 날, 비닐하우스 안에 앉아 있으면, 난방이 빵빵한 웬만한 집보다 낫다. 앉아 있으면 따끈따끈해서 봄날 같아서 졸음이 쏟아지는 곳이다.

이런 곳이 처음부터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다. 처음에 이 비닐하우스가 개장될 땐, '마을사랑방'이었다. 그러던 마을하우스가 왜 마을경비실이 되었을까.

그렇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 이유는 당연히 비닐하우스라 속도 보이지만, 속에서 바깥도 잘 보인다는 것. 그것보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하우스의 위치 때문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하우스는 마을 입구에 있다.

비닐하우스에선 늘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자손들 이야기부터 누구누구 씹는 이야기까지 레퍼토리가 다양하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누가 지나가거나 자동차가 지나가면 약속이나 한 듯이 한 말씀들을 하신다.

"저차는 OO집 찬가 벼. 장에 갔다가 오는구먼."
"마을 이장 차가 이제 나가는 거보니 일하러 인제 나가는 겨."
"저거 OO 아들 아녀. 쟈는 왜 인제 나가는 겨."


한 분이 의견을 내고, 모두가 찬성하면 별문제가 없다. 문제는 의견이 엇갈릴 때다. 그렇게 되면 비닐하우스 안에선 피 튀기는 토론마당이 졸지에 펼쳐진다.

"그건 아녀. 지금 일하러 갔다 오는 게 아니라, 외출 갔다 오는 겨. 내가 안단 말이여."
"아따 뭔 소리여. 내가 알면 더 알았지. 지금 일하고 오는 거 맞다니께."


이렇게 한참 토론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른 주제로 자연스레 넘어가는 것은 다반사다. 확인되지도, 확인할 수도 없는 일이라 적당히 넘어 가신다. 사실 확인하고 싶지도 않으실 터. 그냥 당신들이 심심하지 않으려고 하신 행위니까 말이다.

그런데, 예외적인 일이 생겼다. 23일 나와 아내가 마을을 지나가는데, 왕고엄니가 말을 걸어오셨다.

"있자녀. 그때 어디갔다 온 겨?"
"언제요?"
"요 며칠 전에 배낭 메고 부부가 어디 갔자녀?"


아내와 내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아. 그거요."

그날 아내와 나는 배낭을 메고 인근 호수(마둔 호수) 산책길을 운동하고 왔다. 사실을 말씀 드렸다.

"이~~ 그려. 내 그럴 줄 알았어. 근디 00 엄마는 자꾸 부부가 버스타고 출근하는 거라자녀."

무슨 일일까. 그날 울 부부의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왕고엄니랑 앗싸엄니(춤을 잘추시고 멋쟁이라 붙여진 별명)랑 '토론 배틀'을 하신 모양이다. 왕고엄니의 '운동하러 가는 거다' vs 앗싸엄니의 '출근하는 거다'가 맞붙었다. 결국 구순 되신 왕고엄니가 'win(승리)' 하셨다.

왕고엄니의 입이 귀에 걸리셨다. 지금이라도 앗싸엄니에게 전화를 해서 '앗싸엄니의 패배의 소식'을 알리고 싶은 얼굴이었다.

이분들이 마을사랑방을 하우스에 차리시더니, 마을 경비실로 사용하시다가, 토론마당으로 활용하시더니, 결국은 소설을 쓰는 작업실로 진화하신 거다. 누가 지나가면, 그 사람을 소재로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쓰는 소설 말이다.

그거 아시는가. 울 부부가 한때는 그 소설의 주인공이었다는 걸.

"울 부부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신 '아부지 엄니들' 무병장수하셔요. 사랑합니다."

마을 하우스 어르신들은 '5인 이상 사적 모임금지' 할 땐, 4명이 모이시고, '7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 할 땐, 6명까지 모이는 노력을 하신다. 거리두기로 앉으시고, 나름 방역 수칙을 지키시는 센스를 발휘하신다. 뉴스를 통해 들으시는 귀들이 있으신 게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