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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하루는 가라,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시민기자 그룹 '40대챌린지'는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룹니다.[편집자말]
엄마로서 이번 방학은 좀 달랐다. 아이가 곧 3학년이 되다 보니 저학년 때와는 달리 학습에 관한 대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축구를 몹시 사랑하는 아이는 그저 3학년이 되면 '체육'이라는 과목이 생긴다고 기대에 부풀어 있지만 나는 걱정이 되고 조바심이 났다. 방학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다들 그렇듯 학원에 보내야 할까?

나는 엄마가 아닌 교사 관점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이 학습에 근본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이 뭘까?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은 두 말 할 것 없이 '독서'였다. 아마 이 질문을 다른 선생님들에게 던져도 대부분 나와 같은 답을 말하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가르쳐본 사람은 안다. 최후의 승자는 독서력이 좋은 아이라는 것을. 독서력은 그야말로 공부의 만능키다.

학원 대신 도서관으로, 1시간씩 책 읽기 
 
일주일에 서너 번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가서 1시간씩 책을 읽고 왔습니다.
 일주일에 서너 번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가서 1시간씩 책을 읽고 왔습니다.
ⓒ 진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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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동안 아이와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일명 '도서관 다니기 프로젝트'로 일주일에 3~4번 도서관에 가서 1시간씩 책을 읽고 오는 것이다. 독서가 습관이 되고 책을 이해하고 즐기는 능력, 즉 독서력을 탄탄하게 쌓는 게 목표다. 교과 사교육 없이 딱 이것만 해보기로 했다.

책은 집에서도 편하게 읽을 수 있지만 굳이 도서관에 간 이유가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15년 넘게 가르쳐보니 아이가 책을 좋아하고, 책 읽는 습관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책 읽는 환경과 분위기'가 가장 중요했다. 독서는 자연스럽게 본인 스스로 느끼고 몸에 익히도록 해야 한다. '책 읽어라'라는 말보다 수많은 책이 꽂혀 있는 서가와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 책을 읽는 친구들의 모습이 동기부여가 된다.

'도서관 다니기 프로젝트'의 핵심은 도서관에서 아이가 원하는 책을 읽게 하는 것이다. 철저하게 아이의 책 선택권을 존중해주었다. 이야기책만 좋아하는 아이에게 가끔 '900번대 역사 책꽂이에서 끌리는 제목의 책을 한 권 골라오세요' 같은 미션을 주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탐색해 보도록 유도하기는 했다. 하지만 책을 지정해주거나 강요하는 일은 없었다. 책을 고르는 것부터가 독서이고, 아이스크림처럼 책도 고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아이만 한 게 아니다. 나도 함께 도전했다. 나는 아이에게 '책 읽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독서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이외에도 도전하게 된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바로 나의 성장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40대에 들어선 작년부터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틈틈이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사유하는 힘이 약하고 편협한 시각을 가진 나 자신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나는 더 나은 글을 쓰고,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었다. 제대로 된 독서의 시간이 나에게도 필요했다.

"엄마, 우리 방학 끝나도 계속해요"
 
도서관에서 아이가 읽고 싶은 책을 자유롭게 읽도록 하였습니다.
 도서관에서 아이가 읽고 싶은 책을 자유롭게 읽도록 하였습니다.
ⓒ 진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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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학원에 다니는 것처럼 우리는 도서관에 다녔다. 도서관에서 열 살 남자아이는 어떤 모습일까? 한 마디로 변화무쌍하다. 어떤 날은 책 읽는 시간보다 서가를 어슬렁거리는 시간이 더 많았다가, 또 어떤 날은 내 아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도서관 책상 앞에 앉아 꿈적도 안 하고 책에 깊이 빠져 읽기도 했다.

하품을 연신 하다가 엎드려 잔 적도 있으며, 이 책이 너무 환상적이라고 감탄을 하며 나에게 책을 추천해준 적도 있다. '책 고르는 안목이 있네'라고 생각이 들 만큼 엄마가 보기에 흐뭇한 책을 읽은 날도 있고, '킥킥' 거리며 가필드 만화책만 주구장창 본 날도 있다.

도서관에서 종잡을 수 없는 아이의 반응과 태도는 나를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 도서관을 열 번째 다녀온 날 아이에게 물었다.

"우리 2월에도 도서관 다니는 거 할까? 말까?"
"해요! 엄마, 우리 방학 끝나도 계속해요. 대신 그때는 일주일에 1~2번 가는 걸로요."

"오! 좋아. 그런데 너 원래 도서관 가는 거 별로 안 좋아했잖아. 왜 바뀐 거야?"
"왜냐면… 그 느낌이 굉장히 좋았거든요. 책을 읽을 때의 느낌! 그 느낌을 또 느껴보고 싶어요."


이거면 됐다 싶었다. 아이가 그 느낌을 알았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감격이었다. 또한 이번 프로젝트를 하며 나도 아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터라 크게 공감하기도 했다. 엄마, 아내, 교사 등의 역할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 자신으로서 책과 마주하며 책에 빠져든 시간이 정말 좋았다.
 
아이가 도서관에 다니면서 쓴 독서기록장의 일부입니다.
 아이가 도서관에 다니면서 쓴 독서기록장의 일부입니다.
ⓒ 진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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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책과 나만 있는 것 같았고, 단순히 책을 읽은 게 아니라 하나의 세계에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몰입감이었다. 도서관이라는 장소가 주는 마법이 분명히 있었다.

내가 아이와 이번 도전을 하며 좋았던 점이 또 있다. 사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는 이게 더 기억에 남을 듯하다. 그건 '도서관을 오고 가던 길'이다. 우리는 집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인 도서관과 차로 10분 거리인 도서관을 번갈아가며 다녔는데 오고 가는 시간이 꽤 즐거웠다.

어젯밤 꿈 이야기로 수다를 떨기도 했고,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웃긴 이야기 짓기 놀이를 하며 깔깔대면서 가기도 했다. 아이가 내는 축구 퀴즈 문제를 무수히 많이 풀었으며,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러 세 가지 맛을 골랐다. 누군가 아이 열 살 방학 때 무엇을 했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아이와 데이트를 실컷 했죠. 도서관 데이트를요."

뻔한 하루는 가라,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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