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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3월이면 중학생이 되는 딸은 요즘 부쩍 패션에 관심이 많다. 패션 유튜버들의 영상을 살펴보는 게 취미이고 각종 온라인 쇼핑몰을 둘러보며 "이거 어때? 예쁘지?"라고 나에게 하루에 수십 번도 더 물어본다. 주말이 되면 친구들과 함께 대구 시내인 동성로나 백화점에 아이쇼핑을 하러 가는 낙으로 사는 13세 여학생.

나는 평일 때론 주말까지 일하는 자영업자인지라 딸과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하는 게 늘 미안했기에, 이번 방학에는 큰 마음먹고 딸에게 원 없이 쇼핑을 시켜주기 위해 당일치기 서울 구경을 가기로 결심했다.

서울에 가서 옷 쇼핑하기에 어디가 좋을까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바로 '이대 앞'이 제격이다 싶었다. 딸은 처음 가보는 서울 구경에 몇 주 전부터 서울지역 일기예보를 살피고, 갈 때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며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그리고 지난 16일 일요일, 딸과 함께 동대구역에서 KTX를 타고 서울에 도착했다. 딸은 기차 안에서도 친구들에게 실시간으로 '상경'을 자랑했다.

빼곡했던 이대앞 옷가게들... 사라지고 없다
 
'문 닫은 가게'...한산한 이대 앞 거리. 4일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앞 거리가 한산하다.
 "문 닫은 가게"...한산한 이대 앞 거리. 4일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앞 거리가 한산하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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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우리가 둘러볼 곳이 어떤 곳인지 미리 설명해 두었다. 이대 앞은 특색 있는 옷가게와 화장품, 액세서리, 소품을 파는 상점들이 골목골목 가득하며,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 엄청 많을 것이라고.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넌 가자마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라고 등등 호언장담을 했다. 드디어 이대역 도착.

어라, 근데 뭔가 싸하다. 사람이 왜 이렇게 없지? 내가 기억하는 이대 앞은 지하철 입구에서부터 북적거렸는데... 애써 의심을 거두고 이화여대 정문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문을 닫은 가게들이 많았다. 그리고 가게 유리문에는 하나같이 '임대'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딸은 "옷가게들은 어디 있어?"라고 추궁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했다.

"위로 더 올라가서 골목으로 들어가면 옷가게들이 좀 있을 거야."

겨우 딸을 달래 내가 좋아하는 단골 옷가게가 많았던 작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허나 그곳의 빼곡했던 작은 가게들은 아예 '전멸'이었다. 흡사 사람들이 피난 가버리고 텅 빈 마을 같았다. 딸이 이대 앞 거리를 보면 놀랄 거라던 나의 예상대로 아이는 정말 깜짝 놀랐다. 옷가게들이 하나도 없어서.

내가 기억하는 이대 앞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했던 나에게 학교 앞은 늘 북적거리는 곳이었다. 그게 내 기억 속 친숙한 학교 풍경이었다. 이대역에서 학교 정문까지 걸어가는 길에 늘 수많은 미용실의 전단지를 받았고, 옷가게들의 셔터 올리는 소리와 함께 등교했다. 곳곳에 유명한 미용실들도 많았고 옷가게들이 많다 보니 수선집이 몰려 있는 수선 골목, 저렴한 떡볶이 집이 몰려 있는 떡볶이 골목도 있었다.

맛있는 식당과 카페도 많았다. 당시에는 정문 아래로 기찻길이 있을 때였는데 기찻길 아래 좁은 골목은 특색 있는 작은 상점들이 가득했다(후에 이 골목은 이화 52번가라는 이름이 붙었다). 수업이 없는 공강 시간이면 친구들과 학교 앞에서 쇼핑을 하다 뛰어들어가곤 했고, 무슨 정신으로 그랬는지는 기억은 안 나지만 4학년 때는 휴학을 하고 친구들과 이대 앞에 호기롭게 창업을 하기도 했고 장렬하게 망하기도 했다.

쓰다 보니 '라떼는 말이야' 같은 소리지만, 당시 이대 앞은 여대라는 특성 때문인지 주요 고객층의 동향을 파악해야 하는 프랜차이즈 회사들은 안테나숍 같은 1호점을 오픈하는 곳이었고(내가 입학을 하던 1999년, 한국 스타벅스는 이대 앞에 1호점을 열었다), 패션이나 유행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도 등하굣길만 왔다 갔다 해도 어느 정도 트렌드를 감지할 수 있는 곳이었다.

물론 이대 앞이 코로나 전에도 예전처럼 번화하지 않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내 기억 속의 이대 앞과 지금의 모습이 너무도 대비되어 서글펐다. 그나마 문이 열려 있던 한 옷가게로 들어가 여기까지 온 기념으로 바지를 샀다. 계산을 하며 사장님께 그 많던 가게들이 없어져서 깜짝 놀랐다고 하니 "이대앞 좋은 시절은 이제 다 지나갔다"라며 본인 역시 이번 달까지만 영업을 하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명동도 분위기는 마찬가지... 관광 상권들의 비참한 현실
 
4일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앞 거리. 빼곡했던 작은 가게들은 아예 '전멸'이었다. 흡사 사람들이 피난 가버리고 텅 빈 마을 같았다.
 4일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앞 거리. 빼곡했던 작은 가게들은 아예 "전멸"이었다. 흡사 사람들이 피난 가버리고 텅 빈 마을 같았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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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시내인 동성로 역시 코로나 이후 문을 닫은 가게들이 많긴 하지만 서울의 중심 상권처럼 이렇게 주저앉은 정도는 아니다. 이대 앞은 비대면 수업으로 학생들이 학교에 오는 일이 적어진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다른 대학가와 달리 외국인을 대상으로 관광지화 된 곳이라는 특수성으로 타격이 더 커 보였다.

되돌아보면 2000년대 초에는 관광지도를 들고 다니는 일본인 여성 관광객들이 많았고 그 후에는 중국인 관광객들도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화(梨花)의 중국어 발음 '리화'가 '이익이 불어나다'는 의미의 중국어인 '리파(利發)'와 발음이 비슷하기도 하고 배꽃이 부귀를 상징한다고 하여, 이대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것이 관광코스처럼 자리 잡아 관광버스를 타고 오는 유커(遊客)로 북적였던 시절도 있었다.

대구의 주요 상권은 주로 대구 시민들이 수요층인 반면 이대와 명동처럼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았던 상권은 코로나로 인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나 역시 자영업을 하는 입장에서 코로나로 인해 모두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서울의 중심 상권이, 이대 앞이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이대 앞에서 쇼핑에 실패한 딸과 나는 명동으로 향했다. 명동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많았던 화장품 가게들도 사라졌다. 우리는 명동까지 와서 (대구에도 있는) ZARA를 구경했다. 딸은 이럴 거였으면 그냥 동성로가 나았겠다고 했다.

야심 찼던 딸과의 서울 쇼핑은 그렇게 의문의 1패로 돌아갔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명동의 유명 만두집에서 저녁을 먹었고, 만두가 엄청 맛있지 않냐며 너스레를 떨며 딸을 위로했지만 뭔가 헛헛했다. 정작 위로가 필요한 건 딸이 아니었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장기화로 내로라하는 상권의 자영업 생태계는 확연히 달라졌고 코로나가 사라지면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마저 의심하게 되었다. 한때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들이 자영업자들을 부러워하는 말이 나돌 때가 있었다. 하지만 자영업이란 사전적 의미 그대로 '자신이 직접 경영하는 사업'이기에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의 사업을 일구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며 울고 웃는 외로운 싸움이란 걸 나는 안다.

보이지 않게 감내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 힘들어도 꿋꿋이 버텨온 날들이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고 이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며 느끼는 무력함은 무엇으로 위로가 될까.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코로나의 터널이 언제 끝날지, 어떻게 변화된 상황 속에서 살아갈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각자의 사업을 스스로 지키고자 하는 모든 자영업자들의 안녕을 바란다. 다음에 이대 앞을 지날 때는 북적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지금의 상황을 추억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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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책방을 운영하며 사는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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