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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과 코딩으로부터 삶의 팁을 얻습니다. 머리를 쥐어뜯던 개발자의 뜯긴 머리카락 정도의 깨달음과 코딩에 대한 종이 한 장 만큼의 지식을 담았습니다.[편집자말]
"아, 그냥 제가 알아서 할게요."
"이눔 자식이, 그냥 시키는 대로 해. 내가 다 알아."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뭘 몰라! 부모는 꽁으로 되는 줄 알아? 다 알아 내가!! 넌 하라는 대로만 해!"

"제발 좀. 내 인생이에요!"
"그럼 내 인생은,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드라마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부모와 자식의 애틋한(?) 대화다. 이런 대화는 심심해도 좋을 듯한 현실에서도 종종 오고 가는데 경우에 따라선 애절해 보이기도 한다.

네 아이를 두고 있는 나에겐 이런 장면들이 많이 두렵다. "나는 안 그럴 거야!"라고 했던 내가 욕심을 부리는 모습이나 어느 순간 냉랭해져 버릴지도 모를 아이와의 관계는 호러영화 이상의 무서움이다. 상상만으로도 마음에 한기가 서린다.

정말 부모는 아이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을까? 아이는 정말 알아서 잘 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부모 자식이 그런 것들을 다 해내야 하나?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이런 질문은 변수가 너무 많아 정답을 찾을 수 없다.

이럴 땐, 정답을 찾기보단 오답만은 피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맞는지는 모르지만 딱히 나쁠 것 없는 선택으로 마음을 붙들 수 있는 나름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 과연 나에게 맞는 해답은 무엇일까. 코딩 세계에도 있는 부모 자식 관계를 보면 고민에 조금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코딩 세계에서의 부모와 자식

코딩의 세계에서도 자식을 낳을 수 있다. 이는 한 객체의 특성을 이어받은 다른 객체를 만들 수 있다는 말로 코딩에서는 이를 '상속(Inheritance)'이라 부른다. 기본 개념은 부모의 형질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유전과 유사하다(실제로 Inheritance는 유전이란 뜻도 가진다).
 
윈도우로부터 동일한 기능을 상속 받은 모양과 색상이 조금씩 다른 버튼
▲ 윈도우 창 제어 버튼들 윈도우로부터 동일한 기능을 상속 받은 모양과 색상이 조금씩 다른 버튼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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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프로그램을 닫지 않고 컴퓨터를 종료시켜도 윈도우가 일괄적으로 프로그램을 종료시킬 수 있는 것은 모양과 색이 제각각인 버튼들이 윈도우로부터 '닫기'라는 속성을 상속받은 덕분이다.
   
게임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이렇다. 게임 속 '취사병'과 '의무병'은 상위 개념인 '병사'로부터 만들어진다. 여기서 '병사'는 부모, '취사병'과' '의무병'은 자식의 개념이 적용된다. 그리고 이 자식들은 '병사'의 <이동>, <식사>, <수면> 등의 속성은 그대로 이어받지만, <임무>라는 속성이 '취사병'은 <취사>로 '의무병'은 <치료>로 특화되면서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객체로 태어난다.

유사한 객체가 만들어지고 각 객체가 조금씩 다른 속성을 부여받아 특화되는 코딩 속 모습은 동일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서로 다른 인격체로 커나가는 인간 세계의 모습을 모방하고 있다.
  
병사는 취사병과 의무병의 모태가 된다.
▲ 상속 관계 병사는 취사병과 의무병의 모태가 된다.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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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자식 간의 규칙

인간 세계를 모사한 코딩 세계이지만 다른 것이 있다. 코딩 세계에서는 부모 자식 관계를 맺은 객체들 간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약속이 있다는 점이다.
 
자식은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사용하지 않거나 자신만의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
 
코딩 세계의 약속을 현실 세계에 적용하면, 태생적으로 어쩌지 못하는 유전적인 요소는 그대로 물려주고 물려받게 되지만 그 이외의 취미, 관심사, 생활양식, 사상 등은 물려주지 않거나 물려받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너무 당연한 얘기 같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이걸 받아들이기 쉽지 않아 많은 분란이 생긴다. 좋은 모습만을 보이고 좋은 모습만을 본받기 위한, 그 '좋은 것'의 기준이 모두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좋은 것'의 간극이 크면 클수록 분란이 커진다. 그리고 부모의 '좋은 것'에 대한 강요나 자식의 '좋은 것'에 대한 거부가 문제를 심각하게 만든다. 이해할 수 없는 아이의 '좋은 것'에, 이행하기 힘든 부모의 '좋은 것'에 서로 힘들어 한다.

컴퓨터는 서로의 좋은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올바르고 좋은 것의 기준은 각자의 몫이다. 부모가 고심 끝에 '선택적'으로 물려주지만 그것이 자식에게는 '대체'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도록 허용한다.

그건 기계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반박할 수 없는 정확한 지적이다. 그런데 '기계니까'라는 말은 많은 것이 생략된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계는 약속을 잘 지키니까'라는 말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이건 존재의 문제가 아닌 인식과 이행의 문제다. 존중을 바탕으로 인정하겠다는 약속의 이행 말이다.

부모 자신을 위한 존중과 인정

쉽지 않은 일임을 안다. 그게 어렵지 않게 척척되면 속된 말로 그게 어디 사람인가? 아쉽게도 사람은 이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하고 시행착오도 겪어야 한다. 뭣 하나 녹록한 게 없다. 도(道)를 닦고 도(道)를 닦고 또 도(道)를 닦고... 우거진 숲을 헤매며 하나씩 겨우 겨우 길(道)을 내는 일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게 어렵다고 안 할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어느 부모나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고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주려 한다. 그 어려운 걸 하겠다고 매일 같이 다짐하고 노력하는 것이 부모다. 그래서 기계를 조금 닮아 보자는 거다. 아이를 위해서가 아닌 힘들어 하는 부모 자신을 위해서.

그 어려운 일을 함에 있어 앞서 말한 코딩 세계의 규칙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자식은 본받고 싶지 않은 것들은 선별해서 거를 수 있다. 코딩에서는 이를 '재정의'라고 하는데, 한 마디로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부모는 적어도 이것만큼은 자신을 닮기 바라거나 자신의 뜻대로 하길 바랄 순 있지만 어차피 자식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지 싶습니다만..
▲ 이 정도면 간섭 아무래도 이건 아니지 싶습니다만..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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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은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결혼해서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며 그런 성공을 위해서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부모의 정의를, 자식은 혼자서 최저 생계비만으로 살아도 그림을 그리며 자유롭게 사는 것이 성공이라고 재정의 할 수 있다.

다소 과장했지만 남의 일이 아니다. 이제 11살, 9살인 딸들은 디자이너와 아이돌이 꿈이다. 그리고 고맙게도(?) 결혼하지 않고 엄마 아빠와 같이 살 거라고 한다. 뭔가 한껏 기쁘면서도 살짝 막막한 면이 없지 않다.

7살, 6살 되는 아들들은 "엄마랑 평생 살 거지?"라고 매일같이 꼬드기는 엄마의 물음에 고맙게도(!) 여전히 답이 없다. 배시시 웃으며 잘 모르겠단다. 아무래도 뭔진 몰라도 함부로 대답하면 안 된다는 걸 아는 눈치다. 이 작은 꼬맹이들도 다 제 생각이 있다. 그러니 너무 힘 뺄 필요 없다. 다 제 살길 찾기 마련이다.

각자의 영향력은 한계가 있다. 이 한계가 명확한 코딩의 세계에선 부모나 자식이 서로에게 간섭해 바꿀 수 있는 것이 없다. 부모는 최선을 제시하고 자식은 알아서 한다. 그저 각자의 선택을 존중할 뿐이다. 그런 존중엔 포기가 뒤따른다. 한쪽이 무너지는 어쩔 수 없는 포기가 아니다. 어느 한 쪽도 강압하지 않기에 할 수 있는 존중의 포기, 그러니까 인정이 자연스럽다.

인정을 통해 잘 돌아가는 프로그램처럼, 건설적이고 유기적인 관계를 위해서 존중하겠다는 약속을 지켜보았으면 한다. 내 눈에 차지 않는 아이의 모자람이 행복의 모자람이 될 거라는 불안은 접고, 자꾸만 나서는 사랑에 앞서 존중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그러면 아마도 부모와 아이는 알 수 없는 미래에 할부로 받을지 떼일지도 모를 행복을 지금 당장 일시불로 지급받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자식 객체를 '재정의' 하다 떠오른 아이들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말랑말랑한 사랑의 밑바닥에 단단한 존중을 깔자.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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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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