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가누가 한층 진화한 기량을 뽐내며 잠정 챔피언 가네를 꺾었다.

UFC 헤비급 챔피언 '프레데터' 프란시스 은가누는 23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의 혼다센터에서 열린 UFC 270 메인이벤트 헤비급 타이틀전에서 잠정 챔피언 시릴 가네를 만장일치 판정으로 꺾었다. 이번 경기를 앞두고 레슬링을 집중연마한 은가누는 헤비급 최고의 타격 테크니션으로 꼽히는 무패파이터 가네를 그라운드에서 압도하며 가네에게 데뷔 첫 패배를 안겼다.

한편 앞서 코메인이벤트로 열린 플라이급 타이틀전에서는 랭킹 1위 데이비슨 피게레도가 챔피언 브랜든 모레노를 판정으로 꺾고 챔피언 벨트를 탈환했다. 지난 2020년 7월 조셉 베나비데즈를 꺾고 플라이급 챔피언에 올랐다가 작년 6월 모레노에게 서브미션으로 패하며 타이틀을 빼앗겼던 피게레도는 7개월 만의 재대결에서 설욕에 성공했다. 이로써 피게네도와 모레노는 3번의 맞대결에서 1승1무1패를 기록하게 됐다.
 
 1,2라운드에서 밀리던 은가누(왼쪽)는 3라운드부터 레슬링 압박을 사용하며 승기를 잡기 시작했다.

1,2라운드에서 밀리던 은가누(왼쪽)는 3라운드부터 레슬링 압박을 사용하며 승기를 잡기 시작했다. ⓒ UFC

 
착실히 약점 보완해 챔피언 등극한 은가누

은가누는 세계 최고 수준의 피지컬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UFC 헤비급에서도 독보적인 신체조건을 보유하고 있다. 113kg의 체중에도 군살 없이 근육질의 체형을 유지하고 있고 211cm의 팔길이 역시 헤비급 내에서 최고 수준이다. 게다가 아프리카 선수 특유의 탄력을 앞세운 엄청난 펀치력은 UFC 역사상 최고라고 해도 큰 과장이 아니다. 이는 은가누의 격투기 전적만 봐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2013년 11월 프로파이터로 데뷔한 후 가네를 만나기 전까지 19전16승3패의 전적을 가지고 있던 은가누는 16승 중 12승을 KO, 4승을 서브미션으로 승리했다. UFC 진출 후로 범위를 좁히면 13전11승2패10KO1서브미션이라는 놀라운 전적이 나온다. 그 중 1회 KO만 7회에 달하고 7번의 1회 KO중에서 경기 시간 2분을 넘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야말로 '초살 전문가'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전적이다.

은가누가 더욱 대단한 점은 경기를 치르면서 상대에 맞게 '진화'를 한다는 점이다. 은가누는 스티페 미오치치와의 1차전에서 여느 때처럼 한 방 KO만 노리다가 미오치치의 노련한 레슬링에 밀려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패했다. 그리고 이어진 데릭 루이스와의 경기에서도 15분의 경기 시간 내내 탐색전만 벌이다가 또 한 번 판정으로 패했다. 루이스전에서 은가누의 유효타는 고작 11회에 불과했다.

하지만 은가누는 커티스 블레이즈와의 두 번째 경기를 시작으로 4연속 1라운드 KO를 기록하며 다시 괴물의 위용을 되찾았다. 워낙 경기 시간들이 짧아 크게 티가 나지 않았지만 미오치치와의 첫 번째 타이틀전과 비교해 한결 나아진 테이크다운 디펜스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은가누가 짧은 시간에 익힌 테이크다운 디펜스가 헤비급 최고 수준의 레슬러 피오치치에게 통할지 의문을 가지는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미오치치와의 두 번째 경기에서 은가누는 미오치치의 태클을 안정적으로 방어하며 자신의 준비가 결코 어설프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1라운드 중반 기습적인 왼발 하이킥으로 미오치치를 당황시키며 승기를 잡은 은가누는 2라운드에서 장기인 펀치를 통해 미오치치를 그로기 상태로 빠지게 했다. 그리고 2라운드 시작 52초 만에 왼손 펀치에 이은 파운딩으로 헤비급 타이틀을 가져 오는 데 성공했다. 

새로 장착한 레슬링으로 가네 그라운드에서 압도

은가누의 레슬링 방어가 단기간에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만든 숨은 공신은 바로 NCAA 디비전2 올아메리칸 레슬러 출신이자 현 UFC 웰터급 챔피언 카마루 우스만이었다. 은가누는 미오치치전을 앞두고 MMA식 레슬링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은 파이터 중 한 명인 우스만을 초빙해 미오치치를 상대하기 위한 레슬링 방어법을 배웠고 이는 실전에서 확실한 효과를 봤다(카메룬 출신의 은가누와 나이지리아 출신의 우스만은 매우 친한 사이다).

하지만 우스만에게 배운 레슬링 방어기술이 1차 방어전 상대 가네에게는 소용이 없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가네는 테이크다운을 시도하는 레슬러가 아닌 스탠딩에서 상대와의 거리싸움을 즐기는 킥복서 출신의 파이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은가누는 가네와의 경기에서 1,2라운드 가네의 노련한 거리싸움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수 많은 헤비급 강자를 쓰러트렸던 은가누의 핵펀치도 가네의 스텝과 회피기술 앞에선 큰 소용이 없었다.

이렇게 가네의 무난한 승리가 될 거 같았던 경기는 3라운드에서 놀라운 반전을 맞았다. 3라운드 중반 가네의 오른발 킥을 잡아낸 은가누가 그대로 가네를 번쩍 들어올려 마치 프로레슬링의 '파워슬램'처럼 옥타곤 바닥으로 가네를 꽂아 버린 것이다. UFC 데뷔 후 한 번도 등이 바닥에 닿은 적 없는 가네 입장에서는 적잖이 당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은가누의 테이크다운이 한 번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3라운드 중반 첫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킨 은가누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4번의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며 가네를 그라운드에서 압도했다. 가네도 5라운드 초반 한 차례 테이크다운을 성공시켰지만 은가누는 어렵지 않게 몸을 뒤집어 상위 포지션을 차지했다. 결국 가네는 전체 타격 횟수에서 79-71, 서브미션 시도에서 3-0으로 앞서고도 은가누의 레슬링 압박에 고전하며 생애 첫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2000년대와 달리 종합격투기 선수들의 기량이 상향평준화 되면서 이제 하나의 장점만 극대화된 선수는 결코 좋은 성적을 오래 유지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특기가 확실한 선수일수록 새로운 기술과 종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은 더욱 어렵다. 하지만 은가누는 레슬링 방어에 이어 레슬링을 통한 압박까지 익혀 가네라는 강적을 꺾었다. 경기를 치를수록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은가누가 과연 다음 경기에서 또 얼마나 발전한 기량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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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 UFC 270 헤비급 타이틀전 프란시스 은가누 시릴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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