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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대표 박동완
 민족대표 박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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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완은 야만이 지배하던 시대에 한국과 미국 땅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경계인으로 살아야하는 양서류의 운명이었다. 민족대표의 역사의식과 도덕적인 순수성을 유지하면서, 세상의 한 구석이라도 정화시키고자 하는 기독교적인 소명의식으로 살았다. 그래서 하던 일과 새로운 일을 계속(시작)하였다. 그는 넉넉한 인품과 담백하고 정갈한 심성으로 하와이 동포들을 한데 묶는 일에 앞장섰다. 

고질적인 국민회와 동지회로 갈린 교민단체의 화목을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1938년에 있었던 제28주년 국치기념일 행사를 두 단체가 연대하여 개최토록 하고 박동완은 연설을 통해 화합을 역설하였다. 현지 한인신문의 보도다. 

국민회와 동지회와 일반의 연합으로 제28주년 국치기념일로 8월 28일 하오 2시에 선교기념관에서 기념식을 거행하니, 일반 동포께서는 모두와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하늘에 사무치는 망국의 원한을 품은 우리는 한번 한 자리에 모여서 울어도 같이 울고 빌어도 갚이 빕시다. 천운이 순환하고 인사가 변천하여 광복의 좋은 기회가 왔으니, 이 기회에 그 일을 경영하는 우리는 한 자리에 모여서 정신을 집중하고 계획을 협정합시다.

백사를 제하고 부디 참석들 하십시오. 모이는 것이 일반 일의 발념입니다. 또한 이 기념식 시에 활동사진을 찍겠으니, 일반 부인들과 새 각시들은 할 수 있으면 한국 복색을 차리고 오고 다들 시간 전에 와서 밖에서 때를 지어 집회실 내로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민국 20년 8월 27일 동지회중앙부장 김이제
국민회총회장 조병오 동포 첨존. (주석 1)

이 기사에는 국치기념 순서와 함께 첫 연설자로 박동완이 적혀 있다. 그는 국민회와 동지회가 연대하여 준비한 국치절 기념행사의 첫 연설자가 될 만큼 존경과 화합의 상징인물이 되었다. 기사에서도 보이듯이 당시 하와이 한인사회는 임시정부의 연호인 '민국 20년'이라 기술하였다.

그는 망명하기 이전에 국내에서 이미 세례받은 목사의 신분이었다. 그런데 1934년 1월 14일 호놀룰루에 있는 호항한인 기독교회에서 다시 목사안수를 받았다.

이미 한국에서부터 목사가 되어(<동아일보> 1928년 8월 27일) 와히아와 교회의 초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뒤 6년이나 시무한 상황이었는데도 다시 목사안수를 받게 된 것은 감리교회의 독특한 강례 때문이었다. 독립자금 및 민족주체성을 명분으로 한인기독교회가 독립교회의 성격을 띠고 한인감리교회에서 분리되어 나왔지만, 교회의 행정제도 및 감리교회를 따랐다. 교인들 또한 스스로를 감리교인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박동완은 감리교회법에 의해 한국에서 집사목사 안수를 받은 것으로 여겨지며, 결국 하와이에서 다시 장로목사 안수를 받게 된 것이다. (주석 2)

박동완이 새삼 장로목사 안수를 받게 된 것은 국민회와 동지회 두 단체로 쪼개진 동포사회를 화목시키기 위한 조처도 작용했을 것 같다. 국제정세가 변하고 있어서 조국광복이 멀지 않다고 내다보면서, 해외의 동포끼리 힘을 모아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박동완이 동지회와 국민회 간의 연합에 깊이 관여했던 만큼 그는 동지회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회장의 자리에 올라 있었다. 그는 동지회 중앙부장 김리제 씨의 사면 청원서의 수리 여부를 묻는 질문을 동지회 각 지방 대표들을 대상으로 <대평양주보>에 공문으로 발송하였다. 동지회의 연례대표회 대표회장으로서 박동완은 1939년 10월 16일에 연례회의를 주관하였다.

박동완은 하와이 한인교포들의 화합과 연합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또한 한인을 대상으로 한인협회를 조직하는 데 앞장섰으며 이를 정치기관으로 삼아 상해 임시정부를 위해 힘을 집중시킬 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한시도 민족의 해방과 조국의 독립을 마음속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또한 그의 생각은 동포의 연합에 있었다. 정의에 기반한 사랑과 화합만이 그의 주된 관심사였으며 그가 평생을 추구해 왔던 민족주의적 기독교정신이었다. (주석 3)


주석
1> <국민보>, 1938년 8월 31일.
2> 박재상ㆍ임미선, 앞의 논문, 93쪽.
3> 박재상ㆍ임미선 앞의 책, 176~177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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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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