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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성으로만 치면 제주도는 더 이상 섬이 아니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 어디서라도 전남과 경남의 연안 도서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산간 오지인 경북과 강원의 내륙 지역보다 가기 쉽고 편하다. 전국의 어느 공항에서든 제주도를 잇는 비행기가 뜨고 편수도 많다.

게다가 어디서든 1시간이면 족하다. 광주의 경우, 이륙 후 채 30분도 걸리지 않는,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조금 과장한다면, 비상 상황에 대비한 기내 방송이 끝나자마자 이내 착륙한다는 안내가 나올 정도다. 공항까지 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평소 출근 시간보다 짧은 셈이다. 

모르긴 해도, 전 세계에서 제주 국제공항 활주로처럼 바쁜 곳이 또 있을까 싶다. 비행기들이 초등학생의 '앞으로 나란히'처럼 줄 서서 이륙을 기다리는 풍경이 낯설다. 종일 비행기가 뜨고 내리느라 그 소음에 제주의 하늘엔 지저귀는 새들이 종적을 감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뭍'이 된 제주에서 '이국의 정취'는 이미 옛말이다. 여느 곳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풍광을 자랑하던 제주가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다. 한 제주 토박이분은 3년 전에 견줘 길과 건물이 너무 설다고 했더니,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달라지는 곳이 제주라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가파도 올레길에서 바라본 제주도. 송악산과 산방산이 손 뻗으면 닿을 듯 가깝고 저 멀리 한라산이 아스라이 보인다.
 가파도 올레길에서 바라본 제주도. 송악산과 산방산이 손 뻗으면 닿을 듯 가깝고 저 멀리 한라산이 아스라이 보인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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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상징인 봉긋한 오름들은 도로와 건물 등 인공물에 포위되어 자태를 잃었고, 하늘과 수평선이 맞닿은 장쾌한 바다를 만끽할 공간조차 마땅찮다. 길목마다 어김없이 식당과 카페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어서다. 제주의 멋진 풍광을 즐기려면 돈을 내야만 한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관광객을 상대로 한 위락시설들이 산 중턱과 해안가에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지만, 흰 눈을 인 한라산 정상만큼은 가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날씨가 허락된다면 동서남북 어디에서든 그 장엄하고 신비로운 모습을 친견할 수 있다. 하나 남은 '이국의 정취'다. 

요즘 제주의 '삼다'는 좀 안타깝다

학창 시절 제주도를 삼다도라 배웠다. 알다시피, 바람과 돌과 여자가 많다는 뜻으로 붙여진 별칭이다. 비유적 표현일 뿐인데 그 세 가지를 적으라는 시험 문제까지 나온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교과서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지만, 아무튼 그때는 반드시 외워야 할 필수 교양이었다.

삼다도는 제주산 생수 브랜드에만 남은 '사어'다. 혹 지금도 제주도를 삼다도라 부르는 이들이 있다면, 예전처럼 그 셋을 꼽는 경우는 드물 성싶다. 바람은 고층 콘크리트 건물에 막혔고, 돌은 콘크리트에 덮였으며, 여자는 외지 관광객으로 대체되어야 적확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주의 하루하루가 상전벽해라던 토박이분은 삼다도라는 표현은 여전히 유효하다면서 대신 이 세 가지를 들었다. 렌터카와 편의점, 그리고 쓰레기. 길 위의 자동차 두 대 중 한 대는 렌터카이고, 100~200m에 하나꼴로 대기업 브랜드의 편의점이 있으며, 산과 바다에 널브러진 쓰레기는 차라리 '화수분'이라고 말했다. 

이태 전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해온 한 지인 부부는 시나브로 망가지는 제주도가 안쓰러워 짬이 날 때마다 '플로깅'에 나선다고 했다. 마을 주변과 올레길을 수시로 걸으며 쓰레기를 가방에 담아온다는 것이다. 그들이 제주 2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천혜의 관광지 제주도를 보존하기 위해선 관광객 수를 제한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고작 70만 명이 거주하는 섬에 해마다 1,500만 명에 육박하는 외지인들이 찾아오는 현실에서 환경이 멀쩡할 리 없다는 거다. 그나마 코로나로 중국인 관광객의 발이 묶여 잠시나마 숨 쉴 겨를이 생겼다며 다행스러워했다. 
 
협재 해수욕장에서 건너다 본 비양도. 섬에 가려면 해수욕장 인근 한림항에서 여객선을 이용해야 한다.
 협재 해수욕장에서 건너다 본 비양도. 섬에 가려면 해수욕장 인근 한림항에서 여객선을 이용해야 한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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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제주가 고향인 한 지인으로부터 진짜 제주도를 만끽하려면 제주도의 '위성'을 찾아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제주도에 딸린 섬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제주나 성산포, 모슬포 등지에서 다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우도와 추자도, 비양도, 가파도, 마라도 등을 말한다. 

어느덧 '뭍'이 돼버린 고향을 향한 서글픔을 드러낸 말이지만, 이후 그가 추천한 제주도의 '위성'들은 나의 로망으로 자리 잡았다. 제주에 올 때마다 반나절이라도 한 번씩 찾게 되는 휴게소 같은 곳이 됐다. 적어도 토박이분이 지적한 '삼다'의 번잡스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위성'들도 빠르게 제주를 닮아가는 듯하다. 성산 일출봉에서 건너다보이는 우도는 일찌감치 '제주도 속의 제주도'라 불리며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핫스폿이 됐다. 섬 안에 주민이 거주하는 살림집보다 카페와 식당, 민박이 더 많다는 건 익히 알려진 바다. 

추자도 역시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리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낚시꾼들의 성지로 자리매김하면서 새로운 명소로 급부상하고 있다. 마라도는 국토 최남단이라는 명성을 등에 업고 사시사철 전국의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이름값으로 치면 제주도보다 더 유명한 섬이다. 

이제 남은 '위성'은 무인도를 제외하면 협재 해수욕장 건너 비양도와 마라도 가는 길에 자리한 가파도뿐이다. 이 두 섬을 찾는 관광객이 100명 안팎에 불과한 주민 수에 견줘 많긴 하지만, 덜 알려진 탓에 다른 섬들만큼 번잡하진 않다.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도 특유의 자연환경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이번엔 가파도 올레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해찰하며 걸어도 두 시간이면 다 둘러볼 수 있을 만큼 작은 섬이다. 청보리 축제가 열리는 3월 말을 제외하곤 제주도의 푸른 바다와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시야를 가리는 건물은커녕 나무조차 찾아볼 수 없는 곳이라서다.

가파도는 멀리서 보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해안 절벽이 곧추선 마라도와는 달리 수평선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의 해발고도가 20m에 불과해 바다에 납작 엎드린 모양새다. 섬의 정상에 세운 전망대에 올라서면, 사방으로 거칠 것 없는 풍광을 선사한다. 

우리가 바라는 진짜 제주는
 
가파도 여객선 터미널 모습. 세찬 바람에 나무 한 그루 자라지 못하는 가파도에서는 모든 건물이 이 터미널처럼 납작하다.
 가파도 여객선 터미널 모습. 세찬 바람에 나무 한 그루 자라지 못하는 가파도에서는 모든 건물이 이 터미널처럼 납작하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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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슬포 운진항에서 정기 여객선을 탔다. 비수기인 겨울인 데다 오전 시간이라 객실이 텅 비어 있다. 어딜 가든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제주도와는 판이한 모습이다. 가파도 선착장을 조금 벗어나니 섬 전체가 '적막강산'이다. 바람 소리와 이따금 지나는 경운기 소리만 우렁차다. 

집채만 한 파도가 집어삼킬 듯 달려들고, 거센 바람에 집도 담도 풀도 죄다 바닥에 몸을 숨겼다. 몸 하나 가릴 곳이 없어 굳이 바람을 피하자면 주저앉거나 땅에 엎드려야 한다. 살을 에는 듯한 삭풍의 칼바람까지는 아니어도 귓전을 때리는 바람 소리에 더욱 차갑게 느껴진다. 

가파도의 올레길은 해안선을 따라 돌다 마을 안 고샅길을 걷도록 동선이 짜여 있다. 그 길에서 만나는 풍광이 눈과 가슴에 담을 수 있는 가파도의 모든 것이다. 섬의 한가운데에 자리한 가파초등학교와 아이들의 등하굣길이 될 벽화 거리는 가파도 올레길의 '화룡점정'이다. 

건물의 규모로만 보면 학생 수가 족히 수십 명은 돼 보이지만, 현재 가파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달랑 세 명뿐이라고 한다. 그것도 병설 유치원에 다니는 꼬맹이를 포함한 숫자다. 머지않아 학교 문이 닫히게 되면 섬의 '중심'이 사라지는 셈이어서 못내 안타깝고 서운하다.
 
병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까지 포함해 재학생이 셋 뿐인 가파초등학교의 전경. 저 넓은 운동장이 모두 제 것일 텐데, 과연 그들은 행복할까.
 병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까지 포함해 재학생이 셋 뿐인 가파초등학교의 전경. 저 넓은 운동장이 모두 제 것일 텐데, 과연 그들은 행복할까.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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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 곁에는 '책 읽는 소녀상'과 함께 생뚱맞은 기념물 하나가 세워져 있다. 특별하달 것 없는 큼지막한 현무암 덩어리인데, 그 아래 새겨진 교가의 노랫말이 어째 좀 슬프다. '세찬 바닷바람에 나무조차 크지 못하는 외딴 섬이지만, 열심히 공부해 학교를 널리 빛내자'는 내용이다. 

아이들 모두 섬을 떠나고 나면 그 빈자리는 이내 관광객들 차지가 될까. 폐교를 앞둔 학교 주변엔 그들을 상대로 한 카페와 식당, 기념품 가게 아니면 인기척 없는 빈집들뿐이다. 설마 싶지만, 주민은 없고 뜨내기 관광객들만 이따금 오가는 '무인도'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문 연 지 얼마 안 된 듯 새뜻한 무인 카페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는 한 시간여 동안 단 한 명의 관광객이 들지 않았다. 관광객은커녕 주변을 오가는 주민들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문 연 지 얼마 안 된 듯 새뜻한 무인 카페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는 한 시간여 동안 단 한 명의 관광객이 들지 않았다. 관광객은커녕 주변을 오가는 주민들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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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뜻하지만 썰렁한 '무인 카페'는 징후적이다. 주민이 죄다 떠난 외딴 섬이라면 종국엔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어지게 될 거라는 생각에서다. 번잡스러움을 피해 부러 가파도에 와놓고선 인구소멸을 걱정하는 게 언뜻 이율배반적이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우리가 바라는 '진짜 제주도'는 주민의 삶과 관광객의 만족감이 공존할 수 있는 바탕 위에 있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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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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