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2021년 12월 10일 서울 한 고등학교에서 수험생이 성적표를 받아보고 있다.
 2021년 12월 10일 서울 한 고등학교에서 수험생이 성적표를 받아보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1995년 5월 31일 발표된 김영삼 정부의 교육개혁안에는 "미래 사회를 주도할 신교육체제를 구축하고, 한국 교육의 병리 현상을 치유"하기 위해 "교육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추구"한다고 나와 있다. 그 이후 우리 사회는 대통령이 6번이나 바뀌었고 4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학습자 중심, 학습자 주도성을 강조하는 교육을 부르짖어왔다. 하지만 여전히 학생 중심 학교, 학습자 주도성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학생들을 위한다"는 말을 일상으로 외치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잠자고, 서로를 향해 폭력적으로 행동하고, 학교를 떠나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학생들이 줄을 잇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학습자 중심 학교는 어떤 이유로 구현되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학습자 중심의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왜 학습자 중심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사회적인 공감대, 교육계의 성찰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이번 글에서는 학습자 중심의 의미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학습자 중심 '교육'은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학습자 중심의 학교가 되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개념상 당연하다는 점이다. 배움은 가르친다고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학습은 배우는 사람이 배우려고 해야 가능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우선, 짚어야 할 대목은 학생 중심 '교육'이라는 말의 개념적 자기모순성이다. 교육은 결코 '학습자' 중심적이지 못한 개념이다. 가르치고 기른다는 동사인 교육은 대상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즉, 행위의 주체와 대상이 분리된다는 의미이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자' 중심적 개념이다. 그래서, 학생 중심 교육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교육 분야에 줄탁동시라는 말이 있다. 알이 부화할 때, 어미가 부리로 껍질을 쪼아줘 돕는다는 뜻이다. 당연히 알이 부화할 준비가 되었을 때, 쪼아야 성공적인 부화가 되는 것이지 무리하게 쪼면 알을 깨뜨리고 만다. 따라서, 학교에서는 항상 학습이 중심이어야 한다.

군사부일체는 필사지식 시대의 특수한 현상

두 번째 이유는 변화된 지식정보 사회의 현실로 인해 모든 환경은 교사 중심 학교를 벗어나 학생 중심 학교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점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개념적으로 모든 학습은 배우는 사람이 중심일 수밖에 없으나, 시대적,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근대산업사회까지 교육은 가르치는 사람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나는 첫 번째 기사(지식 스트리밍 시대, 디지털 네트워크가 미래학교 http://omn.kr/1wt1o)에서 이제는 우물물이 수도로 바뀌었듯이, 지식과 정보도 도서관에서 퍼 날라야 되는 재화에서 스트리밍되는 서비스가 됐다고 주장했다.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지식이 생산, 유통, 저장되는 지식 스트리밍 시대에 학교 활동의 주도권이 교사에게서 학습자에게로 전환되는 일은 필연적이다.

지식과 정보를 대부분 손으로 베껴 썼던 필사지식 시대에는 지식과 정보가 매우 귀했기 때문에 지식을 생산하고, 저장, 유통하는 집단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따라서, 모든 교육의 주도권은 당연히 교사에게 있었다. 생산품이 귀하고, 기업이 소수인 초기 산업화 시대에는 생산자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제품을 판매했다. 그렇지만, 소비자 수요를 초과하는 생산이 이루어지는 후기산업사회에는 수많은 생산자가 구매자를 찾아나서기 때문에, 당연히 소비자 중심 시장이 형성된다. 소비자가 왕인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마찬가지 현상이 교육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필사지식 시대에 교사는 왕이나 부모와 동일한 권위를 가졌다. 그래서, 군사부일체라는 믿음이 통용될 수 있었다. 하지만, 구텐베르크 인쇄 혁명이 시작되고, 근대 산업사회에 이르러 지식의 생산과 저장, 유통도 산업적인 대량 생산체제로 전환되자, 교사는 필사지식 시대의 권위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도서관은 부족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책을 접하기 어려운 여건이었기 때문에, 또한 인쇄지식이 가지고 있는 물리적 한계, 즉 물상을 지닌 책이 이동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학교에서 지식을 전달하고 가르치는 교사는 상당한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근대산업사회에서 교사는 스승으로 대접받았고, 하늘과 같은 은혜를 베풀어 준 사람으로 칭송을 받았다.

지식과 정보가 디지털화되고 네트워크로 연결된 현대사회에서는 누구나, 언제나, 어디에서나 무한대의 지식과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누구나 지식과 정보의 생산자, 저장자, 유통자가 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누구나 능동적 학습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심지어 네트워크와 기계를 통해서도 배울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니, 교사의 권위가 근대산업사회와는 완전히 달라질 것은 뻔한 일이다. 그래서 요즘,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한탄하게 되었고,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은 잘해야 자신의 관점과 지식을 주입하려는 사람으로 경계의 대상이 되거나, 심지어 꼰대 취급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지식·정보는 내게 와 의미가 된다

학교가 학습자 중심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는 세 번째 이유는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시대에는 학습자가 학습을 하고자 할 때만 모든 지식과 정보가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점이다. 노자는 천지불인, 즉 우주는 인정사정없다고 선언했다. 우주 만물은 자체로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이 우주를 인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이 존재함으로써 우주는 인간의 고향이 된다.

마찬가지로 무한한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은 자체로 의미를 갖지 않는다. 단지 학습자가 관심을 갖고 탐색하고 찾아서 학습자가 활동과 작업을 통해 해당 지식과 정보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되고 학습자와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너는 내게로 와 꽃이 된다.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에 지식과 정보는 무한하다. 하지만, 각각의 학습자는 이 우주에 유일하게 하나 존재한다. 유일한 존재로서 학습자가 지식과 정보를 불러와 관계를 맺었을 때, 비로소 지식과 정보는 유의미한 존재로 재탄생한다. 인공지능 검색엔진은 매번 학습자의 관심을 중심으로 정렬된 거대한 사이버 도서관을 눈앞에 가져다준다.

지난번 칼럼(왜 야후는 구글에게 참패당했나 http://omn.kr/1wwwa)에서 제시했듯이, 구글은 학습자에게 유의미한 지식과 정보를 검색어를 중심으로 정렬하여 제시하는 주관적 방법을 개발함으로써 야후를 제거했다. 구글은 학습자 중심 학교를 위한 길을 열었다. 비로소, 학습자가 지식과 정보와 개별적, 주관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마지막으로 학습은 학습자가 자신의 관심과 욕망의 프리즘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바라볼 때 동력을 갖기 때문에 학습의 센터이자 지식과 정보의 유통 센터여야 하는 학교는 학습자 중심으로 운영돼야 한다. 무한한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은 학습자가 추구하는 욕망을 통해 바라보고 의미를 부여할 때, 출력을 생산해내는 엔진과 같은 것이다. 즉, 지식과 정보는 인간의 욕망이라는 연료가 있어야 움직이는 자동차 엔진이다. 객관적인 지식과 정보는 그 자체만으로는 학습자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학습자의 욕망이 지식과 정보의 잠재적 추동력을 끌어내고, 자동차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다.

학교는 어느 마음에 불을 켤 것인가?

타인에 의해 강제되는 욕망은 결코 엔진을 움직이는 연료가 될 수 없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도록 하는 행위, 돈과 지위, 사회적 고정관념에 충실하도록 교육하는 행위는 학습자를 억압하고 소외시키는 폭력에 불과하다. 이는 마치 휘발유를 디젤엔진에 넣는 것과 같은 행위이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직시하고, 자신의 관심에 충실할 때 비로소 몸과 마음이 열리고, 손발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학습자의 마음에 불을 켜는 일, 스스로의 욕망으로 자신의 마음에 불을 켜게 하는 일, 그것이 학습자 중심 학교의 핵심이다. 그것은 학습자 스스로 결정하는 일생일대의 중대사, 백척간두에서 한걸음 더 내딛게 하는 힘이다. 우리 학교는 어느 마음에 불을 켤 것인가?

댓글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현재 서울시교육청에서 근무 중. 플로리다주립대 정책학 박사: 「차터스쿨이 공립학교의 학업성취도 및 인종분리에 미치는 영향 분석」 (2012) 강의: 순천대 객원교수(2015), 숙명여대 및 광주교대 등 강의 저서: 《교육을 교육답게》(2018), 《포노사피엔스 학교의 탄생》(2020), 공역서 《교육은 어떻게 사회를 지배하는가》(2018)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