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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1930년대) 군산 부영시장(공설시장) 모습
 일제강점기(1930년대) 군산 부영시장(공설시장) 모습
ⓒ 군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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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1930년대) 군산에는 조선인이 이용하는 공설시장이 두 곳 있었다. 하나는 1931년 12월 일제가 신영정(현 신영동) 철도부지에 개장한 부영시장(공설시장)이고, 또 하나는 1936년 4월 산상정(현 선양동)에 설치한 제2시장(산상정 시장)이었다. (관련기사: '시장 사용료'까지... 일제의 지독한 조선인 차별)

일제가 관리·운영했던 두 공설시장('부영시장'과 '제2시장')은 광복 후 극도의 혼란기(미군정기)에도 시장 기능을 유지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부영시장은 구시장, 신영시장, 공설시장 등으로 불리면서 지역의 서민경제 발전에 기여하였다. 식량과 의복을 배급받아 겨우 연명하는 배급경제 속에서도 상권이 확대되고 이용객도 해마다 증가한다.

공설시장 주변 골목은 매일 혼잡을 이뤘다. 인근 상가와 가정집에서 버리는 음식물도 한몫했다. 이곳저곳에 쓰레기가 쌓였고, 행상들이 팔다 남은 반찬꺼리까지 더해져 주민들 보건 위생에 문제가 됐던 것. 시장 앞 간선도로 역시 잡상인들이 좌판을 벌이는 바람에 행인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아래는 1947년 11월 23일 치 <군산신문> 기사 한 대목이다.

"부(府)에서는 문란(紊亂)한 점을 없애고 부민의 편리를 도모하고 물자 집산을 원활히 하여 가격균등 유지를 확립하기 위해 미원동(米原洞) 4,200여평(坪) 대지에 4천6백만 원 공비(公費)로 현재의 약 3배의 중앙공설시장(中央公設市場) 설립 계획을 세워왔으며 그 계획 준비도 완성되고 상인의 신입(申込)도 대다수에 달하였음으로 불원간 공사에 착수하리라 한다. (현대어로 수정)"

신설될 중앙공설시장은 점포 5백 개, 노점상 2천 명 수용 규모이고 공사비는 국고와 부(府) 예산으로 지출하되 부족분은 신입자 부담으로 추진, 1948년 5월 준공하게 될 거라고 신문은 전한다. 이어 '신시장에 의한 부민의 편리와 이익은 막대할 것이며, 현재 시장(부영시장)은 질서문란과 비위생적인 점을 면치 못함으로 불원간 철폐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신축건물 규모와 준공 시기, 입주 상인들의 입주금 납부 등 공사 내역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음에도 어찌 된 영문인지 그 후 미원동에 대규모 공설시장이 들어섰다는 보도는 어느 매체나 구전(口傳)을 통해서도 접할 수 없었다. 불원간 철폐될 거라는 부영시장 역시 8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 신영동에 자리한 마트형 '공설시장'이 그것이다.

50~60년대 신영동 '공설시장' 모습

군산 공설시장은 한국전쟁(1950~1953)을 거치면서 목조건물 일부가 파괴 및 소실된다. 이후 노천시장 또는 천막 시장으로 유지하다가 1962년 개축된다. 그렇게 큰 재해를 당하면서도 지역의 서민경제 중심지로 부상한다. 충남 일부(강경, 논산, 부여, 서천, 장항)와 전북 서부권(만경, 김제, 부안) 주민도 이용하는 등 시장권도 확대된다.

아궁이에 무쇠 가마솥 걸어놓고 밥해 먹던 50~60년대, 당시 공설시장은 정미기를 갖춘 대형 방앗간 두 곳을 비롯해 싸전거리, 닭 전(가축시장), 감독(감도가), 양키시장 등과 벨트를 이루고 있었다.

위는 군산 도립병원에서 의료봉사(1954~1956) 하던 영국인 의사 존 콘스 박사가 찍은 공설시장 모습이다. 위치는 반찬가게 골목과 마주한 채소전 입구로 보인다. 요즘은 구경조차 어려운 각종 사기그릇과 골판지를 덧댄 판잣집 상가들이 시대를 반영한다. 미국의 원조로 생계를 유지하던 시절, 아낙들의 말쑥한 옷차림에서 여유와 활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당시 채소전은 지붕 없는 노천시장으로 시골 아낙들이 머리와 어깨에 이고 지고 내온 무, 배추, 봄똥배추(봄동배추), 콩밭지꺼리(콩밭에 심은 열무), 남새 등을 벌여놓고 팔았다. 하우스 재배가 없던 그때는 장에 나오는 채소 종류도 계절에 따라 달랐으며, 사람들은 나무새만 보고도 날짜와 절기 변화를 가늠하였다.

매서운 바닷바람이 목을 움츠러들게 하는 겨울의 채소전은 날씨만큼이나 을씨년스러웠다. 그러나 소한, 대한 지나고 날이 풀리면 봄똥배추가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면서 생기가 돌았다. 시골 할머니들이 캐오는 쑥과 냉이, 달래향이 봄이 머지않았음을 알려줬던 것. 콩밭지꺼리는 여름을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하였다.
 
마트형 전통시장 공사 전 공설시장 입구(2009)
 마트형 전통시장 공사 전 공설시장 입구(2009)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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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형 전통시장 공사 전 대장간(2009)
 마트형 전통시장 공사 전 대장간(2009)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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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설시장은 여러 개 골목으로 형성돼있었다. 취급 상품과 제품도 달랐다. 정문에서 왼쪽 첫 번째 골목으로 들어서면 환갑잔치와 폐백, 이바지 음식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가게가 두세 곳 있었다. 그곳에 전시된 생실과와 숙실과는 백열등에 반사되어 더욱 먹음직스럽게 보였으며 '壽(수)'와 '福(복)'자가 새겨지도록 둥글게 고인 그 솜씨는 경이롭기까지 하였다.

이바지 음식 가게와 연탄집게, 불삽, 쥐덫 등을 파는 철물점을 지나면 내항선 철도를 따라 대장간 골목이 시작됐다. 이곳은 서너 평쯤 되는 대장간 7~8곳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어 망치 소리와 담금질 소리로 요란했다. 대장간은 비좁았으나 구조는 복잡하지 않았다. 중앙에 메질하는 모루가 놓여있고, 벽 쪽에 화덕이 있었으며 그 옆에 풀무가 자리했다.  
 
마트형 전통시장 공사 전 생선전(2009)
 마트형 전통시장 공사 전 생선전(2009)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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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들어가면 젓국집(젓갈가게) 골목이 시작됐다. 가게 앞에는 각종 젓갈이 가득 담긴 도가지(항아리)와 함지박이 질서 있게 놓여 있고, 어른 키 높이의 드럼통에는 새우젓이 가득 담겨 있었다. 새우젓은 새우를 잡는 철에 따라 이름도 달랐다. 5월에 잡은 새우로 담그면 '오젓', 6월에 담근 새우젓은 '육젓'이라 했던 것. 사람들은 여기서부터 생선전이라 하였다.

생선전 지나 닭 전(가축시장)이었다. 톱날처럼 파인 붉은 벼슬과 꼬리가 하늘로 치켜 올라간 수탉은 대장부다웠다. 산토끼, 다람쥐 등 도시 외곽 야산에서 잡아 온 산짐승도 볼 수 있었고, 희한한 물고기(어른 팔뚝보다 굵은 잉어와 가물치)와 부엉이, 꿩, 칠면조 등도 만날 수 있었다. 그중 아이들에게 '인기짱'이었던 것은 나무상자 안에서 계속 채만 돌리고 있는 다람쥐였다.
  
마트형 전통시장 공사 전 고무신가게(2009)
 마트형 전통시장 공사 전 고무신가게(2009)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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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골목은 벽지와 창호지 등을 파는 큰 지물포와 신발가게 3~4개가 나란히 자리했다. 신발 가게들은 주로 군산 경성고무에서 생산되는 '만월(滿月)'표 고무신과 운동화를 진열해놓고 팔았다. 신발가게 옆으로 들어가면 오색찬란한 주단 가게와 한복집 20여 곳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곳은 가게마다 백열등을 여러 개씩 매달아 놓아 오방색의 화려함이 가득했다.

장례용품을 취급하는 장의사(葬儀社)도 두세 곳 있었다. 수의(壽衣)와 상복(喪服)이 나란히 내걸려 있고, 시신을 넣는 관(棺)도 세워져 있어, 그곳을 지나려면 금방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것처럼 무서웠다. 상갓집에서 풍기는 야릇한 향냄새와 둔탁한 삼베 냄새가 깊은 산속의 묘지와 상엿집을 떠오르게 하면서 죽음의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던 것.

시장 정문 앞 도로변은 라이터장수, 약장수, 땜장이, 군고구마장수, 빙수장수, 인장포, 토정비결 보는 할아버지 등이 자리했다. 그들은 우풍화학(한국주정) 벽돌담을 바람막이 삼아 자리를 폈다. 그중 라이터장수, 땜장이, 인장포 아저씨는 사철, 군고구마 장수는 겨울, 빙수장수는 여름, 그리고 토정비결 할아버지는 늦가을에서 이듬해 봄까지 손님을 받았다.

공설시장은 1969년 4월 현대식 건물을 착공, 그해 12월 준공식을 치른다. 그러나 3일 후 건물 아홉 동이 반소되고 두 동이 전소되는 대형화재가 발생한다. 예상치 못한 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으나 시(市) 당국의 보조와 상인들 노력으로 이듬해(1970) 복구된다. 2012년 3월에는 전국 최초 마트형 전통시장으로 거듭나 오늘에 이른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동아일보, 조선일보(1920~1930년대), <群山新聞(군산신문)>(1947~1948), <미군정·정부수립기·군산지역의 경제·사회상>(1999 군산문화원), <군산상공회의소 100년사>(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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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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