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개승자>의 한 장면.

KBS 2TV <개승자>의 한 장면. ⓒ KBS 2TV

 
"우리 앞에 깔고 갈까?" 경연 순서 결정권을 지닌 신인들이 대선배 김준호의 팀을 어느 순서에 배치할지 고민하며 던진 말이다. 물론 가벼운 농담이었지만 그속에는 어느새 강력한 우승후보로까지 부상한 신인팀의 패기와, 만만한 상대로 전락해버린 선배팀에 대한 뼈있는 풍자도 녹아있었다. <개그콘서트>였다면 절대 상상할 수 없었을 장면이 <개승자>에서는 현실이 되었다는 것은, 계급장을 뗀 서바이벌이었기에 가능한 이변이기도 했다.
 
1월 22일 방송된 KBS 2TV <개승자>에서 4라운드 1대 1 데스매치의 최종 결말과 5라운드 TOP6 결정전이 펼쳐졌다. 데스매치는 앞서 3라운드 깐부미션에서 연합했던 두 팀끼리 1대 1 대결을 펼쳐서 승자는 5라운드 진출, 패자는 탈락 후보가 되는 미션이었다.
 
데스매치에서 탈락한 4팀 중 시청자 평가단 득표수가 가장 낮은 한 팀이 최종탈락한다. 지난 회차에서 방송된 첫 번째 대결에서는 김준호팀이 이수근팀을 제쳤고, 윤형빈팀은 김원효팀을, 이승윤팀은 변기수팀을 각각 제치고 생존했다.
 
마지막 대결에서 마주친 김민경팀과 신인팀은 나란히 캐릭터쇼로 정면승부를 벌였다. 김민경팀은 병원을 배경으로 한 정통 콩트극 '기억 상실'을 선보이며 노련한 연기를 펼쳐보였다. 신인팀은 대학교 기숙사 생활을 소재로 한 '슬기로운 기숙 생활'을 준비했다. 특히 신인팀의 리더 홍현호가 하드캐리한 마성의 기숙사 총무 '홍기쁨' 캐릭터를 두고, 지켜보던 선배들조차 "캐릭터를 가지고 논다", "홍현호 쇼가 됐다. 홍승자다"라며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신인팀은 판정단 투표에서 무려 82대 17로 김민경팀을 압도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탈락후보가 된 네 팀은 판정단 평가로 세 팀이 생존하고 한 팀이 탈락하게 됐다. 김원효팀이 48표로 최다득표를 기록했고, 변기수팀이 32표로 그 뒤를 이으며 생존에 성공했다. 이수근팀과 김민경팀이 최종 탈락후보로 경합한 가운데, 이수근팀이 13표를 득표하여 6표에 그친 김민경팀을 제치고 최후의 생존자가 됐다.
 
팀장인 김민경은 마지막 소감으로 "처음부터 팀장을 안 하고 싶었고,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근데 저희 팀원들을 보고 내가 이들과 함께 간다면 가능하겠다는 생각으로 했다. 너무 큰 힘이 되어준 팀원들 너무 고마웠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신인들의 엄마'로 불릴 만큼 후배와 팀원들을 보듬는 김민경의 따뜻한 리더십, 어떤 상황극에 던져놔도 제몫을 해내는 연기력은 박수를 받기 충분했다.
 
 KBS 2TV <개승자>의 한 장면.

KBS 2TV <개승자>의 한 장면. ⓒ KBS 2TV

 
5라운드는 파이널 무대에 진출할 최정예 6팀을 가리는 라운드였다. 4라운드에서 단 1표차로 윤형빈팀을 제치고 1위에 오른 신인팀(37표)에게 대진 순서 결정권의 베네핏이 주어졌다. 신인팀은 3번째 순서를 선택했다. 김준호가 기침을 하는 척하며 3번 자리를 청탁하자, 신인팀은 못들은 척하고 "우리 앞에 깔고가자"며 2번에 배치하여 김준호팀을 당황시켰다. 삐친 김준호는 신인팀을 향하여 "너희가 계속 웃길 것 같지? 우리도 한때는 웃겼어"라는 자학개그를 던지며 동료들을 폭소하게 했다.
 
또한 신인팀은 강력한 경쟁자이자 우승후보로 꼽히던 이승윤팀을 1번에 배치하며 견제심을 드러냈다. 이로써 1번 이승윤팀-2번 김준호팀-3번 신인팀-4번 김원효팀-5번 변기수팀-6번 윤형빈팀-7번 이수근팀으로 이어지는 경연 순서가 확정됐다. 5라운드까지 생존하여 파이널까지 진출하게되는 6팀은 더 이상 탈락에 대한 부담없이 4번의 경연 기회를 보장받는다. 또한 5라운드는 무대 시작 후 5분까지 집계된 중간 점수만 먼저 공개하기로 했다.
 
이승윤팀은 간판 코너인 '신비한 알고리즘의 세계'를 다시 선보이며 박대기 기자, 비의 '깡', <전국노래자랑> 등 다양한 화제의 인터넷 밈을 패러디했다. 이승윤팀은 첫 시작이라는 불리한 경연순서에도 중간점수 762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으며 저력을 증명했다.
 
김준호팀은 명예회복을 위하여 독기를 품었다. 김장군은 "우리를 너무 무시한다. 2라운드 때부터 아무도 우리와 하지 않으려는 게 화가 났다"고 고백했고, 정명훈은 "모든 팀이 우리를 바닥에 깔고가는 느낌"이라며 자존심이 상했음을 드러냈다. 김준호팀은 건달들의 인터넷 라이브 방송 도전기를 다룬 '달건이 TV'를 선보이며 특유의 표정연기와 버라이어티한 몸개그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김준호팀은 김장군의 삭발투혼과 독한 캐릭터들의 향연에도 불구하고 581점이라는 조금은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다.
 
<개승자>의 치열한 긴장감

<개승자>는 KBS가 2020년 6월 종영한 <개그콘서트>에 이어 약 1년 5개월 만에 지상파에서 부활시킨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개승자>는 코미디언들이 팀을 이뤄 다음 라운드 진출 및 최종 우승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온전히 시청자로만 구성된 개그판정단의 투표로 생존 결과가 좌우되는 서바이벌 포맷으로 <개콘>과 차별화에 나섰다.
 
<개승자>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역시 다크호스들의 놀라운 선전이다. <개콘>의 갑작스러운 종영으로 방송무대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줄 기회가 없었기에 시청자들에게는 생소했던 신인팀, 그리고 방송 첫회 개그맨들 자체적으로 선정한 예상탈락후보 1위로 지목되었던던 이승윤팀이 '양강' 체제를 구축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변이 없는 한 이들은 파이널무대까지 진출할 가능성이 매우 높게 전망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적인 성공 비결은 SNS와 유투브 시대의 트렌드를 반영한 웃음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신인팀은 '회의 줌 하자'에서는 디지털 시대의 비대면 화상회의를 소재로 하여 무대의 현장감과 방송 편집의 장점을 결합했고 현실적인 에피소드를 가미해 세련된 느낌을 살렸다. 김민경팀과의 깐부미션에서 선보인 '1호선 빌런', 4라운드 '슬기로운 기숙생활' 등에서는 홍현호가 열연한 '홍기쁨'의 하드캐리가 돋보이며 정통 캐릭터 콩트극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개콘>의 익숙하지만 동시에 식상한 느낌, 뻔한 캐릭터를 탈피했다는 게 돋보인다.
 
이승윤팀은 '신알세'를 통하여 최근의 대세인 온라인 '숏폼' 컨텐츠의 특징을 십분활용하여 각종 패러디 퍼포먼스를 알고리즘으로 연결해낸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특히 이승윤은 그동안 대표작으로 꼽히던 '헬스보이' 코너와 '나는 자연인이다' 시리즈 등에서 주로 몸으로 때우는 캐릭터에만 능하고, 연기력이나 아이디어가 부족하다는 선입견을 극복한 재발견이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었다.
 
반면 오히려 베테랑 개그맨들은 고전하고 있다. 유민상팀, 김대희팀, 박성광팀, 박준형팀, 오나미팀 등이 줄줄이 탈락했고, 아직 살아남은 김준호팀과 이수근팀 역시 저조한 성적 끝에 간신히 살아남으며 고전을 면치못하고 있다. 외모나 분장개그, 유행어를 짜내려는 억지 말장난으로 웃음을 끌어내려는 방식은 더 이상 통하기 어렵다. 코너를 아예 제대로 짜오지도 않았을 정도로 무성의했던 팀도 있었다.
 
급기야 경연 순서에서 고참급 개그맨들이 신인팀을 비롯한 후배들에게 약체로 무시당하는 장면은 과거 <개콘>이었으면 상상도 못했을 장면이다. <개콘>이 인기 개그맨들을 위주로 기존의 코너와 캐릭터를 수평적으로 반복하는 방식이었다면, <개승자>는 생존과 탈락의 경쟁체제에서는 과거의 영광과 계급장을 떠나 치열한 긴장감이 살아나는 효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차가 거듭될수록 드러나는 뒷심 부족은 아쉬움을 남긴다. 특정팀만이 아니라 출연팀들 전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짧은 기간 내에 여러 번의 무대를 선보야야하고 탈락이라는 부담감도 있다보니, 출연팀들은 한 번 반응이 좋았던 코너나 가장 자신있는 캐릭터를 반복하여 안주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승윤팀의 신알세나, 변기수의 힙쟁이같은 코너들도 같은 웃음 패턴과 소재의 반복으로 이야기의 재미가 처음 같지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개 코미디의 부활과 서바이벌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개승자>의 시청률은 평균 4%대에서 크게 반등하지는 못하고 있다. 단순히 서바이벌이라는 경쟁 요소를 넘어서 홍현호와 신인팀처럼 능력있는 새로운 유망주들의 발굴, 실험적인 코너들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꾸준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공개 코미디의 부활을 위한 숙제다.
개승자 서바이벌 홍현호 김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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