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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도피 여행'이 됐다. 지난 15일부터 닷새 동안 제주 4.3 유적지를 답사하고 올레길을 걸을 요량으로 간만에 제주도를 찾았다. 매일 아침 스마트폰에 찍히는 코로나 확진자 수를 확인하며 일과를 시작하는데, 근래 경험하지 못한 낯선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12명. 제주에 온 이튿날인 16일 오후 5시 기준 제주 지역의 확진자 수다. 그나마 모두 다른 지역을 방문했거나 입도한 관광객과 관련된 경우다. 주말인 점을 고려하더라도 제주도민 간 감염자가 아예 없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같은 시간 떠나온 광주의 확진자 수는 무려 242명이었다.

외지인과의 접촉 빈도로 치면 제주도만 한 곳이 없을 테다. 오미크론이 기승인 지금도 하루에 수만 명의 관광객이 제주도에 들고나며, 도내 관광지마다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광주만 해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승객을 가득 실은 제주행 비행기가 매일 16편이나 뜨고 내린다. 

하물며 서울과 제주 노선은 매일 오가는 비행기가 180여 편에 이를 만큼 이용자 수가 많다.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연간 항공편 수를 기준으로 할 때 부동의 세계 1위다. 한 해 승객 수만도 자그마치 1000만 명이 넘는 세계에서 유일한 노선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도 여느 지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제주도의 확진자 수가 적은 건 왜일까. 무엇보다 관광객을 상대하는 제주 사람들의 방역에 관한 관심과 깐깐한 실천이 놀랍다. 실내외를 가리지 않고 관광지 어딜 가든 입장권을 끊기 전에 무조건 백신 접종 여부를 꼼꼼하게 확인한다.

유별난 게 있다면,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달라며 직원이 다가와 직접 눈으로 재확인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매표소 앞에 줄이 길어도 아랑곳하지 않을 뿐더러 공원과 숲처럼 탁 트인 실외에서조차 예외가 없다. 칼바람 부는 밖에서 20분 동안 입장 순서를 기다린 적도 있다. 

"스마트폰 좀 보여주세요." 제주도에 머무는 닷새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인사말이다. 환영의 의미를 담은 제주도 방언 '혼저옵서예'는 공항 등의 광고판에서나 볼 수 있는 글귀로 남았다. 아닌 게 아니라, 식당이든 카페든 '어서 오세요'라는 말을 먼저 듣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제주도가 감염병에 특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 유명 관광지여서인지, 내남없이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모습이다. 마스크 착용도 지나치다 싶을 만큼 철저했다. 홀로 올레길을 걷는 이도 모두 마스크를 쓴 채였고, 심지어 가파른 오름에 오르는 이들조차 잠시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미술관 등에서는 동시 입장 인원을 수시로 통제하는가 하면, 인파가 북적이는 곳에서는 귀가 따갑도록 마스크를 벗지 말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잠시라도 마스크를 내린다면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감수해야 할 분위기다. 카페에서조차 마스크 차림으로 앉아있는 사람이 더 많았다.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해마다 제주도를 제집 드나들 듯 들락거렸다. 개인적인 용무도 잦았고, 때로는 아이들과 함께 수학여행을 오기도 했다. 지금이야 단체활동 자체가 멈춰 섰지만, 제주도는 아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수학여행지다. 개인적으로는, 2019년 이후 3년 만이다.

그때와는 달리 누구든 제주도에 발을 내딛는 순간 해야 하는 일이 있다. 호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제주 안심 코드'라는 앱을 설치하는 것이다. 이 앱을 깔지 않고서는 사실상 제주도 여행은 불가능하다. 관광지뿐만 아니라 카페에서 그 흔한 커피 한 잔 사 마시기 힘들다. 

어딜 가든 스마트폰을 꺼내 '제주 안심 코드'를 실행시켜야 한다. 그런 다음 출입문에 게시된 QR 코드에 가져다 댄다. 이어 자신의 백신 접종 이력을 직원에게 보여준 뒤에야 비로소 입장권을 끊거나 메뉴를 주문할 수 있다. 이러한 절차를 차근차근 밟아야만 입장이 허락된다. 

'제주 안심 코드'는 코로나 확진자의 방문 이력과 접촉자를 신속하게 파악해서 집단감염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출입자 관리 시스템이다. 개인이 인터넷 메신저나 포털 등을 통해 따로 QR 코드를 발급받은 뒤 업소마다 설치된 리더기에 스캔하는 기존의 방식보다 훨씬 간편하다. 

지난 2020년 12월에 처음 도입된 후 빠르게 정착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주도민은 물론, 관광객들에게조차 출근이나 등교 전 '건강 상태 자가 진단' 앱을 구동시키는 것만큼이나 익숙한 습관으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이제 누구든 직원이 요구하지 않아도 두리번거리며 QR 코드부터 찾는다. 

QR 코드를 찍을 때마다 스마트폰에 방문 이력이 시간 순서대로 기록된다. 솔직히 처음엔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는 듯해 반감부터 들었다. 그러나 제주도 사람들은 하나같이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암호화되어 방문 이력과 백신 접종일 등의 개인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없다며 무한 신뢰를 보냈다.

집단감염이 일어나면 공멸하게 된다는 제주도민들의 남다른 경각심과 첨단 기술을 활용한 실효적인 공공 앱의 도입, 그리고 공공 기관에 대한 신뢰. 이 세 가지가 어우러져 관광객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이끈 것이다. 어딜 가든 사람들로 붐볐지만, 그다지 불안하지 않았던 이유다. 

제주도에 머문 닷새 동안 단 하루도 신규 확진자가 20명을 넘긴 적이 없었다. 고작 3명이었던 날도 있었다. 머지않아 하루 확진자 수가 수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암울한 예측이 나오는 상황에서 방심은 금물일 테지만, 제주도의 방역 '삼박자'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작지 않다.

그나저나, 매번 스마트폰을 켜고, 찍고, 보여주는 번거로움 속에서 스스로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불편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자 정작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더라는 점이다. 코로나로부터 온 국민이 사랑하는 제주도를 지켜내기 위해 이 정도는 기꺼워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불편하기는커녕 뿌듯했다. 다른 관광객들도 비슷한 느낌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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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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