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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다. 오늘도 어김없이 집을 나선다. 날마다 주요 일과가 되어버린 산책을 위해서다. 아침 7시경에 늦장을 부리며 기상해서 과일주스로 속을 채우고 오전 시간은 음악과 함께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며 보낸다.

오늘은 새뮤얼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정남향 고층아파트의 창을 타고 실내 깊숙이 들어온 겨울 볕에 반짝인다. 음악은 따로 선곡할 필요가 없는 KBS Classic FM이 좋다. 그날그날 취향에 맞는 음악들이 시간대별로 방송되어 내 정서를 보드랍게 감싸주기 때문이다.

요 며칠째 독서대에 얹혀있는 책은 에릭 와이너가 쓴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서부터 몽테뉴까지 철학자의 발자취를 찾아 기차를 타고 떠나는 작가가 심오하고 세련된 필치로 스피드하게 내게 그들의 철학적 사상을 배달해 준다. 오늘 나의 시선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 멈춰있다.

그가 특별히 자연주의를 주창하진 않았지만,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고 싶고, 인생의 본질적인 실상에 직면하고 싶어서 2년 2개월 2일간 월든 호수의 오두막에 머물렀던 시기를 기록한 '월든'을 함께 읽으며 자연에서 배운 것들이 무엇이었을까를 곱씹어 봤다.

내 산책코스는 집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5‧18 기념공원이다. 평일 하오의 거리는 한산하다. 대부분의 상점은 폐업했거나 아직 문을 열지 않았으며, 오픈한 상점들도 손님이 없어 문만 열어둔 채 조용하다. 햇살이 따사로워서 그런가. 빙점을 오르내리던 수은주가 오늘은 눈금을 좀 올려 포근하다.

언제나처럼 공원에 들어서 대동광장에서 곧장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운동 나온 시민들이 제각각의 표정으로 산책로를 바쁘게 돌고 있다. 나도 그사이에 자리를 잡고 들어가 그들의 발길에 치이지 않을 속도로 걷고 또 걷는다. 산책로에는 옷을 벗은 가로수들이 야윈 몸피를 드러낸 채 도시의 섬처럼 황량한 공원을 지키고 서 있다. 튤립나무, 느릅나무, 벚나무, 단풍나무, 목련 등 봄부터 가을까지 꽃과 그늘을 제공하던 키 큰 교목들이 앙상한 모습으로 바람과 소음을 막아주고 있다.

가물어 건조한 날씨 때문에 잔디에 쌓인 바짝 마른 나뭇잎들은 아직 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바스락거리며 이리저리 뒤척인다. 공원이 자리 잡은 여의산은 군사교육기관인 상무대 내에 있던 20㏊ 정도의 작은 야산이었으나, 1996년 상무대가 다른 곳으로 이전한 후 지방자치단체에서 인수해 공원으로 조성했다. 규모는 작지만 주변에 주택지가 밀집되어 있어 도심 한복판에서 도시의 허파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미세먼지에 덮여 뿌연 시가지가 온통 시멘트 덩어리의 아파트다.
▲ 518기념공원 오월루에서 바라본 시가지 미세먼지에 덮여 뿌연 시가지가 온통 시멘트 덩어리의 아파트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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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남쪽에는 상무대 시절에 군종 시설이었던 무각사(無覺寺)가 메타세쿼이아와 소나무 등 숲을 병풍 삼아 웅장하게 군림하고 있다. 무각사는 말 그대로 '깨달음도 깨우침도 없는 것이 진정한 불법'이라며 시민들 가까이에서 불도를 펼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대웅전을 너무 웅장하게 지어 그렇지 않아도 작은 여의산을 주눅 들게 한다.

공원길을 산책하는 내내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나를 떠나지 않고 함께 동행하고 있다. 그는 월든에서 생활하는 내내 자연과 사물, 호수, 동물들을 끊임없이 관찰하면서 그 안에서 그것들과 공생하려고 노력했다.

아주 오랜 시간 들여다봐야만 볼 수 있다.
무엇이든 제대로 보려면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는 자연이 주는 신비와 경이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온전히 몸으로 체득해 해석하고 싶어 했다.

관찰이 흥미로워지려면, 즉 중요한 의미를 가지려면, 반드시 주관적이어야 한다.
어떤 대상을 이해하는 것을 멈출 때에야 나는 비로소 그 대상을 보기 시작한다.
아름다움은 이해하는 것보다 보는 것이 더 좋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자연이나 사물을 이해하려 하다 보니 본질이 왜곡되고 실체를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도 선입견이 먼저 그를 형상화 시키기 때문에 참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소로를 거울삼아 생각해 본다. 관점을 바꾸면 어떻게 보느냐 뿐만 아니라 무엇을 보느냐도 바뀐다. 소로는 말한다.

제대로 된 관점에서 보면 모든 폭풍과 그 안에 든 모든 빗방울이 무지개다.

무각사 뒤편 산 정상에는 단군님께 제를 지내는 단성전(檀聖殿)이 자리 잡고 있으며, 바로 아래에 3층8각의 전망대 오월루가 있다. 오월루에 오르니 미세먼지에 덮여 뿌연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어디를 둘러봐도 사방이 거대한 시멘트 덩어리 아파트 숲이다. 삭막하다.

무각사를 돌아가면 산책로 아래쪽으로 아담한 원형광장이 있어 산책 나온 시민들이 가볍게 몸을 풀거나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대나무 숲을 지나 산딸나무, 느티나무, 삼나무, 배롱나무, 이팝나무 등이 어우러진 가로에는 까치와 물까치, 참새떼들이 가족 단위로 몰려나와 먹이를 찾느라 여념이 없다. 멧비둘기나 찌르레기도 간간이 보인다. 조그만 공원에 참으로 다양한 생명이 공존하고 있다.

공원 산책로 한 바퀴를 도는데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세 바퀴 정도는 돌아야 하루 운동량을 채울 수 있다. 소로처럼 조심스럽게 걸으며 나를 응시한다. 내가 보는 것이 곧 내 자신이다. 철학이 내게 스며드는 시간이다. 올해는 나도 나만의 월든 하나는 갖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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