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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하루는 가라,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시민기자 그룹 '40대챌린지'는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룹니다.[기자말]
아이가 영어를 좋아했으면 한다. 스스로 영어를 공부하고 익힌 새로운 언어를 즐겁게 사용하면 좋겠다. 하지만 그건 나의 바람일 뿐이다. 아이는 영어에 별로 관심이 없다. 난 최대한 먼저 시키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가끔은 삐죽삐죽 속마음이 튀어나온다.

"손흥민 인터뷰 하는 것 좀 봐. 외국에서 하고 싶은 걸 하려면 저렇게 영어도 잘해야 하는 거야."

아이 표정을 슬쩍 살핀다. 아이는 전혀 내 말을 귀담아 듣고 있지 않다. 나는 아이에게 영어 공부를 하는데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내가 자진해서 영어 시험을 보겠다고 한 이유
 
내가 공부하고 아이는 내게 시험 문제를 낸다. 새해에 시작한 새로운 동기부여 작전이다.
 내가 공부하고 아이는 내게 시험 문제를 낸다. 새해에 시작한 새로운 동기부여 작전이다.
ⓒ envato el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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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영어 공부 관련 팟캐스트를 듣는데 출연자가 말하길, 부모가 영어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에게 좋은 자극을 준다고 했다. 오호, 그렇군. 그때부터 영어 유튜브를 하나 정해 매일 일정한 분량을 공부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가 관심을 보였다. 내 옆에 와서 문장을 같이 외운다. 그러나 한 달 정도 지나니 아이의 관심이 시들해졌다.

딸 "엄마 노트에 오늘의 영어 적었어?"
나 "아니, 오늘은 피곤해서 못했어."
딸 "그러면 어떻게 해. 얼른 하고 자."


아이는 내가 자신의 숙제를 체크하듯, 내가 했는지 안 했는지만 따졌다. 내가 기대한 효과는 이게 아닌데... 지금처럼 해외여행이 어렵지 않았던 때, 해외여행을 하면서도 아이가 영어에 흥미를 갖길 바랐다. 그러나 아이는 "난 말이 잘 통하는 제주도 여행이 더 좋아!"라고 했다(아, 내 속아). 

언제까지 동기 부여 되기만을 기다릴 순 없었다. 아이와 상의해 이번 겨울방학에는 하루에 영어 단어를 5개씩 외우기로 했다. 한 단어를 5번씩 쓴다. 그리고 금요일에는 단어 시험을 본다. 처음엔 곧잘 하다가 며칠이 지나자 하기 싫어 몸을 배배 꼰다.

시키는 나도 고민이 되긴 마찬가지. 어떻게 하면 하고 싶은 마음이 들까. 식탁 위에 있는 생활영어 책을 보고 말했다.

"그러면 엄마도 영어 시험 볼게. 딸이 엄마 시험 감독해."

아이의 얼굴이 밝아진다.

"좋아."

내가 공부하고 아이는 내게 시험 문제를 낸다. 새해에 시작한 새로운 동기부여 작전이다. 생각보다 아이는 깐깐하다.

"엄마도 매일 문장 다섯 번씩 써. 나도 단어 다섯 번씩 쓰니까."
"엄마는 너보다 아는 단어가 많아. 굳이 쓰면서 외울 필요가 없다고."
"안 돼, 엄마도 나랑 똑같이 해야지."


난 그저 아이가 영어에 흥미를 갖게 하려고 하는 건데, 이렇게 되면 곤란하다.

"엄마는 집안일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잖아. 너 엄마가 밥 차리는 거 도와줬어? 어떻게 다 똑같이 하려고 해?"

결국은 화를 내고 말았다. 결국 아이와 합의를 봤다. 아는 단어는 넘어가고 모르는 단어는 나도 쓰기로 했다. 처음 시험 보는 날. 난 하루에 문장 20개씩을 외우기로 해서 양이 꽤 많았다. 아이는 문제를 부르며 내가 제대로 쓰는지 살핀다. 시험이 끝난 후엔 꼼꼼하게 채점도 한다. 아쉽게 하나를 틀렸다.

아이는 "잘했다"면서 내 노트 아래 뭔가를 써주었다. 'Good'을 쓰나 했는데 'so cool'이라고 적었다. 시험 본 문장 중에 있던 '죽인다'라는 뜻의 'so cool'을 기억했나 보다. 그 다음 날, 아이와 TV를 보는데 남자 출연자가 느끼한 말을 하자 아이가 'Cheesy'라고 말한다. 어제 내가 시험 본 것 중에 있던 단어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동기 부여는 실패했지만

하지만 아이는 세 번째 시험감독을 하며 그 역할이 마냥 재미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버렸다. '시험 보는 사람은 엄마인데, 왜 이렇게 내가 볼 게 많냐'며 불평한다. 채점도 나에게 맡기고 가버린다. 숙제도 줄여줬다. 하루에 10문장만 외우라고 한다. 내가 "오늘 엄마 영어 시험 보는 날이야"라고 하면 아이는 "아!" 하는 탄식을 내뱉는다. 싫은 티를 낸다. 

아이가 시험을 보는 엄마를 보며 영어에 재미를 느끼길 바랐는데, 오히려 자신에게 시험을 내고 채점하는 엄마의 고충을 이해한다. "엄마가 너 수학 문제 채점하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겠지?"라고 말하니 피식 웃는다.

나도 시험을 보며 아이를 이해한다. 가끔은 시험을 내일 보자며 미루기도 한다. 동기부여는 잘 모르겠고 서로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내 마음도 어쩌지 못하는데 남의 마음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 건 욕심이겠지. 아이에게 동기 부여하려는 마음을 접는다. 새해에 시작한 시험감독 동기부여 챌린지는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시험감독은 없어져도 공부할 사람은 남았다. 챌린지의 방향을 아이에게서 내게로 옮긴다. 아이가 영어 공부할 때 나도 영어책을 가지고 아이 앞에 앉는다. 영어책 한 권을 다 본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이 책 한 권은 다 보리라, 다짐한다. 하루에 20문장 생활영어 외우기 챌린지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뻔한 하루는 가라,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룹니다.
태그:#영어 공부 , #40대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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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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