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부유한 60대 은행가와 평범한 20대 변호사가 '사형제'와 관련, 거금을 걸고 뜻밖의 내기를 했다. 은행가는 어차피 자유를 박탈당하고 비로소 죽어야 감옥에서 해방된다면 차라리 한 순간에 죽는 게 더 인간적이라 했다. 변호사의 입장은 누군가 아무리 중범죄자라도 바로 죽이는 사형보다야 오래 살리는 종신형이 훨씬 인간적이라 봤다.

유력 인사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논란이 길어지자 평정을 잃은 은행가가 탁자를 꽝~ 치며 말했다. "만일 당신이 독방에 5년간 갇혀 있을 수 있다면 이백만 루블을 주겠소." 이 말에 젊은 변호사는 "진심이시라면 저는 15년도 갇혀 있겠소." 그렇게 해서 15년의 자유와 이백만 루블의 내기가 시작되었다.

은행가는 정원 한 켠 바깥채에 사실상의 감옥을 만들어 경비원을 배치하고 변호사를 가두었다. 그 안에는 피아노도 있고 독서나 편지 쓰기도 가능했다. 술과 담배도 주어졌다. 죄수가 된 변호사는 외부인 접촉이 금지됐고 외출도 못했다. 오로지 작은 창문을 통해 필요한 물품만 공급받았다. 그렇게 꼬박 15년을 잘 참고 견딘다면 변호사는 큰돈을 벌 예정이었다. 그러나 은행가의 생각에 변호사는 삼사 년도 채 안 되어 자유가 그리워 포기하고 말 터였다.

처음 옥살이를 시작한 변호사는 고독과 무료함이 힘들었다. 피아노와 삼류소설 같은 것으로 시간만 때웠다. 그러나 술과 담배는 참았다. 몸에 좋지 않아서였다. 이듬해부터 죄수는 고전을 차곡차곡 읽기 시작했다. 5년째 되던 해엔 다시 음악 소리가 들리고 술도 마시기 시작했다. 글을 썼다가 찢기도 하고 혼자 울기도 했다.

6~7년이 됐을 때 수인은 온갖 외국어와 철학, 역사를 공부했다. 그 뒤 4년 동안 무려 600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 10년이 흐른 뒤 그는 복음서, 종교 및 신학서에 몰입했다. 마지막 2년은 셰익스피어 등 문학 외에 화학, 의학, 철학 등을 두루 섭렵했다. 마침내 약속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 사이 은행가는 주식과 투기 등으로 재산을 거의 탕진해 버렸다. 갑자기 거액의 내기를 제안한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이제 새 날이 밝으면 그는 죄수에게 이백만 루블을 줘야 하고 그러면 자신은 빚더미에 앉는다. 은행가가 파산을 면할 유일한 길은 죄수가 죽는 것뿐이었다.

이에 은행가는 경비원이 잠든 새벽에 몰래 죄수의 방으로 들어간다. 죄수는 긴 머리에 더부룩한 수염을 한 해골의 모습으로 앉아 잠들어 있었다. 그 책상엔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은행가가 죄수를 죽이려다 대체 무슨 내용인지 읽기 시작했다.

"내일 열두시에 나는 자유를 얻는다. 그러나 그에 앞서 나는 그대들에게 몇 마디 하고 싶다. 나는 자유와 생명과 건강, 그리고 책들이 지상의 축복이라 하는 모든 걸 맹세코 경멸한다. 나는 책 속에서 온갖 기적이나 호사를 다 누렸고 지혜도 얻었다. 동시에 나는 세상의 모든 행복과 지혜를 경멸한다. 모든 것이 시시하고 공허하다.

그대들은 분별을 잃고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 나는 하늘을 땅으로 바꾸어버린 그대들에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대들의 삶의 방식을 경멸하기 위해 내가 한때 갈망했으나 이제는 하찮게 보이는 이백만 루블을 거부한다. 그 돈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기 위해 나는 약속 기한 5시간 전에 여기서 나갈 것이다."


이 글을 읽은 은행가는 이 기인의 머리에 입을 맞춘 뒤 눈물을 떨구었다. 그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자괴감과 극심한 자기혐오까지 느꼈다.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1860~1904)가 1888년에 쓴 <내기>라는 작품이다.

강렬함, 쓰라림

젊은 변호사는 내기(계약)에서는 졌지만 인간 승리를 보여 준다. 늙은 은행가는 내기(계약)에서 이겼으되, 삶 전체를 통 털어 파산 선고를 받았다. 별로 길지 않은 이 작품은 별로 길지 않았던 작가의 인생만큼이나 강렬하다. 나에게 이 강렬함은 쓰라림이기도 하다. 크게 세 측면이다.

첫째,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의 강렬함이다. 과연 무엇이 잘 사는 것인가? 흔히 생각하듯, 어릴 적에 공부만 잘해서 명문 학교에 진학하고 각종 고시에 합격해 번듯한 자리를 누리며, 소유와 소비 속에 남부럽지 않게 오래오래 살면 되는가? 오늘날 각종 선거 앞에 권력을 차지하고자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인간들, 그러면서도 오~래 살겠다고 각종 건강관리에 몰두하는 이들을 보면 체호프가 느꼈던 경멸감이 내게도 솟구친다.

'내기' 속 은행가는 팔십이 넘게 살아도 산 송장, 즉 좀비의 삶을 살았으니 평생 죽어 살았다. 반면, '내기'를 쓴 작가는 오십도 못 돼 죽었지만 그 작품 속의 인간성은 여전히 살아 있고 울림이 크다. 나는 길을 걸을 때마다 우연히 스쳐가는 사람들, 그리고 언론에 나오는 엘리트들이 산 송장이 아니라 진정 살아 있는 사람이기를 기도한다.

둘째, 돈과 삶의 의미에 대한 강렬함이다. '내기' 속 변호사는 사형(죽음)보다 종신형(삶)을 옹호했고 내기에서 사실상 이겨 거액의 돈을 딸 수 있었다. '인생 대박'의 기회였다. 그러나 그는 종이 한 장에다 세속적 부나 축복에 대한 경고를 하며 "약속 기한 5시간 전에 여기서 나감"으로써 막대한 부를 스스로 포기한다. 동시에 그는 삶과 자유를 동시에 얻었다.

만일 그가 파산 직전의 은행가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았다면 그는 평생 죄책감 속에 좀비로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15년간 옥중에서 읽은 책과 성찰을 통해 삶의 본질을 깨쳤다. 결과적으로 그는 사형보다 종신형이 삶의 가능성, 즉 인간 성숙의 가능성이라는 차원에서 보다 인간적임을 온몸으로 보여 주었다. 돈은 없어도 삶이 가능하지만, 삶이 없다면 돈은 전혀 무의미하다.

셋째, 자유와 속박의 개념에 대한 강렬함이다. '내기' 속의 은행가는 겉보기에 자유로운 삶을 누렸다. 소유와 소비의 자유, 돈벌이의 자유, 투자와 투기의 자유를 만끽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매 순간 불안과 초조, 긴장과 스트레스 덩어리였다. 그는 15년 내내 행여 죄수가 고집스럽게 버텨낼까 봐 하루도 마음 편하지 않았다. 겉으로 자유로웠지만 속으론 속박의 삶을 살았다.

반면, 변호사 죄수는 겉보기에 옥살이를 무려 15년간 했지만, 다소 갈팡질팡하면서도 매일 삶을 즐겼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걸 하며 때론 뒹굴뒹굴했다. 책을 통해 세상을 알아갔고 역사와 종교를 알아갔다. 그는 감옥 안에서 오히려 자유인으로 변화했다.

'인권'이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자유'를 외치는 정치경제적 엘리트치고 진정 자유로운 이는 별로 없다. 내면이 자유로워야 진정 자유롭다. 내면이 자유로워지려면 권력, 재산, 지위, 체면, 위신, 권위 등에 매달리거나 속박당하지 않아야 한다. 내면이 자유롭다는 것은 본성, 양심, 인간성, 영성에 충직하게 사는 것이다. 젊은 변호사가 그랬고, 실은 체호프의 정신이 그랬다.

안톤 체호프가 살았던 19세기 후반의 제정 러시아는 봉건제와 자본제 사이의 과도기였다. 1861년 알렉산드르 2세 치하에서 막 해방되기 시작한 농노들이 도시의 자본주의 노동시장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기업과 은행이 만들어지고 돈벌이의 자유를 외치는 이들이 늘어나는 중이었다. 그들은 황제의 권력을 등에 업고 제국주의를 향해 나아가려 했다. 1884년 조선과 러시아 사이에 통상조약이 성립되고 1904년에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던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

그 뒤 '인간 해방'을 외쳤던 러시아 혁명도, 또 '부국강병'을 외친 미국·일본·한국의 경제번영도 약 100년이 흐른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허망하기 그지없다. 체호프의 말마따나 "모든 것이 시시하고 공허하다." 내면의 자유가 없는 외형적 화려함 자체가 거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일상적 삶의 과정이 무가치하다거나 역사 전반이 무용하다고 할 순 없다. 오히려 물질만능주의 속세의 공허함을 직시한 변호사(실은 체호프 자신)의 탄식처럼 "그대들은 분별을 잃고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 나는 하늘을 땅으로 바꾸어버린 그대들에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대들의 삶의 방식을 경멸하기 위해 내가 한때 갈망했으나 이제는 하찮게 보이는 이백만 루블을 거부한다"는 태도로 살아가는 것, 아니, 기존 방식에 대한 경멸을 넘어 새로운 방식을 자유로이 창조하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의 소중한 삶에 대한 책임성 있는 자세가 아닐까?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요, 동시에 잘 죽는 것이니까. 이런 면에서 '인권'이란 인간성에 대한 권리이자 인간성에의 책임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대전충남인권연대 필진 강수돌 교수의 기고글이며 대전충남인권연대 뉴스레터에도 실립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전충남인권연대는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소중한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 세계평화의 기본임을 천명한 세계인권선언(1948.12.10)의 정신에 따라 대전충남지역의 인권현실을 개선시키기 위해 인권상담과 교육, 권력기관에 의한 인권 피해자 구제활동 등을 펼치는 인권운동단체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