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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아르바이트를 기억한다. 대학 신입생 때, 서울 대학로의 한 패션브랜드 매장에서 옷을 파는 일이었다. 주 고객이 20, 30대였던가. 나와 비슷한 또래 손님들에게 옷을 입어보라 권하고, 서툴게나마 아부성 멘트를 날리고, 그렇게 첫 월급을 받아든 때의 떨리던 기억. 난생처음 받은 월급이 기뻐서, 일평생(?) 공부만 했던 내가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듯한 느낌에 어깨가 으쓱해졌었다. 첫 월급으론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께 내복을 사드렸다.

다행히 나는 운이 좋았다. 먼지 쌓인 매장 지하를 뒤지며 재고를 찾고 물품별로 정리하는 게 힘들었을 뿐, 월급이 밀리거나 성추행을 겪은 기억은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 한 실수는 '처음'이란 이유로 지나갔고, 내 나이대 친구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만 알았다. 그래서 더 충격이었다. 시간이 지나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혼자 정비하다가 열차에 끼어 숨진 19세 청년노동자인 구의역 김군, 고등학교서 현장실습을 받다 숨진 이민호군 얘기를 들었을 때 말이다.

지난 10일 제주도에 방문한 김에 가까운 친구가 자신의 SNS에 소개했던 전시에 가본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제주한라대 산업디자인과 수강생 21명이 각자의 노동 경험을 토대로 만든 디자인 작품을 선보인 '2030 젊은 노동자들이 본 노동의 점선면'이라는 제목의 전시였다. 소위 '요즘 친구들'의 노동 경험은 어떤지, 내가 했던 것과는 얼마나 같고도 다를지 궁금했다. 

날아드는 욕설과 임금체불, 감정노동... 노동의 굴곡들
 
'노동의 점선면' 전시, 제주한라대 산업디자인과 수강생들이 각자의 노동 경험을 토대로 만든 작품들 모습.
 "노동의 점선면" 전시, 제주한라대 산업디자인과 수강생들이 각자의 노동 경험을 토대로 만든 작품들 모습.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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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 농사, 마트 캐셔, 야간편의점... 참여한 수강생들의 경험은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대부분 수강생의 경험에서 손님이나 사장으로부터 받은 폭언과 욕설, 고된 감정노동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월급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지만, 그날도 내 통장에 찍힌 돈은 '0원'이었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사장님은 종종 친구들과 골프 여행까지 다녀오면서, 정작 내 월급은 제때 주지 않았다. 다음 달 월급도 당연하다는 듯 밀렸고, 기다리란 답변만 되풀이됐다. 나는 결국 그만두었다. 기다리다 결국 매장으로 가자, 사장님은 욕설로 시작해 변명하며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내 첫 알바는 상처투성이였다." (김수진, <나의 20대 다사다난 노동기>)

"마트 일이 익숙해져 가던 어느 날, 어떤 손님이 계산하며 '뭐가 이리 비싸냐'고 화를 내셨다. 거스름돈을 드렸더니 봉투를 달라고 하시기에, '마트 봉투는 200원인데 드릴까요?' 물었더니 무상 봉투를 달라신다. '저희가 지금은 무상 봉투를 드릴 수가 없다'고 설명하는데 순간 그분이 받았던 잔돈을 내게 확 던지며 소리쳤다. '부자나 돼라 이 XXX아'라는 욕설과 함께." (김민지, <노동의 선>)


"'손님이 왕 아냐? 이 ㅅㄲ가 뭐라는 거야?' / '아가씨 데려와서 술 좀 따르라고 해. 여기 알바 교육이 왜 이래?' / '어디다 대고 말대꾸야? 그래서, 그쪽은 잘못이 없다?' / 모두 제가 실제로 일하면서 들었던 막말과 폭언 내용입니다. 여러분이 들었던 말 중에서 가장 싫었던 말은 무엇이었나요? 잊고 싶은 기억을 지우듯, 이 부분을 가차 없이 찢어주세요." (<감정노동>, 문경덕)

'나는 경험했지만, 타인은 겪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노동의 점선면' 전시, 제주한라대 산업디자인과 수강생들이 각자의 노동 경험을 토대로 만든 작품들 모습.
 "노동의 점선면" 전시, 제주한라대 산업디자인과 수강생들이 각자의 노동 경험을 토대로 만든 작품들 모습.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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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이었던 건, 이들이 대개 자신의 뼈아픈 경험을 토대로 작업하되 이를 기반으로 타인에게도 유익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점이었다.

18세 미만 청소년들이 노동을 이해하기 쉽도록 시각적 요소로 만든 <아르바이트의 다른 말은 노동>(이지하), <노동자 권리지키기 프로젝트>(고은정), <오이 소주와 커피 그리고 담배>(정여진), <우린 모두 노동자>(윤지수) 등이 그랬다. <워라밸>(임소희) 작업은 소위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관련해 한국뿐 아니라 해외사례를 소개하고 있어 유용했다.

특히, 제주도는 서귀포산업과학고 3학년이던 이민호군이 현장실습 도중 사고 기계에 끼어 숨진 곳이기도 하다. 이를 반영한 산재 예방 카드뉴스 <더이상 죽음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좌희선), 관련 뉴스를 눈물 모양으로 시각화한 <현장 실습생의 눈물>(고태윤)도 눈에 띄었다. 또한 ▲산업재해란 ▲근로계약서를 꼭 써야 하는지 등 필수 정보를 모은 소책자 <사회초년생을 위한 노동 알아보기>(고나영)는 실제 고등학교나 작업장에 비치해둬도 좋을 듯했다.
 
'노동의 점선면' 전시, 제주한라대 산업디자인과 수강생들이 각자의 노동 경험을 토대로 만든 작품들 모습.
 "노동의 점선면" 전시, 제주한라대 산업디자인과 수강생들이 각자의 노동 경험을 토대로 만든 작품들 모습.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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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벌써 10여 년 가까이 노동자로 살아온 나조차 몰랐던 지식을 알려주는 작품도 있었다. <개정된 근로기준법을 알려드립니다>(김소희)가 그것이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말 관련법이 강화돼,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사실 확인을 하지 않으면 최대 300만 원,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을 타인에게 누설해도 300만 원, 근무장소 변경 등 피해자의 요청에 따른 조처를 하지 않는 경우에도 200만 원의 벌금을 물 수 있게 됐다(2021년 10월 14일부터 시행). 최근 상사의 괴롭힘으로 고생하던 친구 얼굴이 떠올라, 말해줘야겠다 싶어 더욱 꼼꼼히 읽어봤다.

부정적이었던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는 게 힘들지는 않았을까. 전시에 참여했던 김수진씨는 관련해 "첫 알바부터 월급이 밀려 화도 나고 당황스러웠다. (전시 작품을 만들면서) 욕하던 사장 얼굴이 자꾸 떠올라 좀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그 기억을 마주하는 용기를 배웠다"며 "이제는 문제가 생기면 바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수현씨도 "작업 전과는 달리, 급여와 처우 등 노동자가 받아야 하는 권리를 이제는 당연하게 챙기게 됐다"고 소감을 말했다.

한편 전시가 진행되는 노동자책방엔 '노현넷(노동안전과 현장실습 정상화를 위한 제주네트워크)'의 청소년노동자 권리찾기 수첩, 일터의 부당대우 경험 등이 담긴 '제주 일하는 청소년 인터뷰 사례집' 등이 놓여 있어서, 실제 생활에서도 유익하게 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하는 청소년 인터뷰 사례집'엔 소위 2000년대생, 갓 사회에 나온 10대 노동자들의 실제 노동 경험들이 녹아 있었다.

"카운터에 있는데, 손님이 카드를 던지고는 '그것도 못 받냐'며 쌍욕을 했다(2002년생 조OO)", "불판이나 찌개 그릇에 손을 많이 데이는 데도 안전교육은 따로 없었다(2002년생 이OO)"는 증언들에 마음이 아팠다. "야간 편의점 알바를 할 때 술 취한 손님들이 왔는데, 몇 살이냐 묻기에 열아홉이라니까 제게 '가슴이 크다'고 했다. 뉴스에서만 보던 걸 막상 당하니까 눈물만 나고 어쩔 줄을 모르겠더라(2002년생, 김OO)"며 성희롱 피해를 적은 이도 있었다.

계속되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죽음
 
'노동의 점선면' 전시, 제주한라대 산업디자인과 수강생들이 각자의 노동 경험을 토대로 만든 작품들 모습.
 "노동의 점선면" 전시, 제주한라대 산업디자인과 수강생들이 각자의 노동 경험을 토대로 만든 작품들 모습.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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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도 전남 여수의 한 선착장에 현장실습을 하던 특성화고 3학년 홍정운군이 기초교육 없이 잠수작업에 내몰렸고, 요트 바닥의 따개비 등을 제거하는 수중작업 중 사망했다. 열아홉, 스물 초반의 나이부터 노동 현장에 놓이는 청소년들. 시기의 차이일 뿐, 누구나 언젠가는 노동을 하며 노동자 정체성을 지니고 살아간다.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학생들에게 이런 얘기들을 해주는 언니·오빠들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3학년 홍군에게 누군가 기초적인 안전교육만 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노동에 대한 정보들이 더 알려질 때, 지금도 벌어지고 있을 각종 사건사고로부터 한두 명의 학생이라도 더 안전해지지 않을까. 준비 없이 노동에 뛰어들게 될 젊은 친구들에게, 앞서 나왔던 '인터뷰 사례집' 마지막 장의 내용을 꼭 전해주고 싶다.

- 질문 : 만약 내 동생, 내 후배가 처음 아르바이트를 한다면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받아야 할 최저시급을 잘 확인하고, 근로계약서에 자신이 하는 일을 정확히 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강OO)"
"면접을 할 때 사장님과 알바생들 분위기를 잘 봤으면 좋겠어요. 나와 맞을지 아닌지를요.(김OO)"
"동생과 같이 면접에 가줄래요. 나는 못 받았던 최저시급을 꼭 받을 수 있게요.(조OO)"
"알바를 하면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으라고, 법을 찾아보라고 하고 싶어요.(김OO)"


이 전시는 민주노총 제주본부 1층 노동자책방에서 당분간 무기한 열릴 예정이다.

[관련 기사] 
"시장님 꼭 와주세요" 사망 사고 일어난 구의역 현장 http://omn.kr/k4z8
여수 특성화고생 사망 보도, 외면하거나 소극적이거나 http://omn.kr/1vkz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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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기자.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자세히 보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A political reporter. I'm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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