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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 OBN 방송국 스튜디오
 충북 옥천군 OBN 방송국 스튜디오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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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옥천FM 공동체 라디오입니다."

빨간 버튼을 누르자, 명랑한 목소리가 104.9MHz 전파를 타고 충북 옥천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옥천읍 중앙로 13-3번지 OBN 방송국 스튜디오에서부터 전해진 목소리였다.

같은 시각 옥천우체국 3층에는 방송통신위원회 한상혁 위원장, 청암송건호기념사업회 김병국 이사장, 공동체라디오방송협회 안병찬 회장, 충청북도 서승우 행정부지사, 김재종 군수 등 인사들과 취재진이 모여 있었다.

단 위에 선 인사들은 앞에 놓인 빨간 버튼을 동시에 눌렀다. 옥천FM 공동체라디오의 개국을 선포하는, 로켓을 발사하는 듯 긴장된 순간. 옥천 주민 세 사람이 결성한 통기타 밴드 통울림이 이 자리에서 축하 공연을 선보여 기쁨이 더해졌다.

이로써 2021년 12월 21일, 옥천FM공동체라디오 OBN(오븐)이 문을 열었다. 청암언론문화재단이 설립된 지 20주년을 맞은 해이자 청암송건호 선생의 기일이기에 더욱 의미 있는 개국일이었다.

공동체라디오는 시·군·구 등 소규모 지역에서 주민참여로 제작하는 10W(와트) 이하의 FM라디오 방송이다. 2005년 최초 시범방송 이후 전국 7곳(서울 관악, 마포, 경기 성남, 광주 북구, 대구 성서, 충남 공주, 경북 영주)에서 운영돼왔다. 방송통신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례적으로 17년 만에 신규허가자를 모집, 옥천을 포함해 20곳을 최종 선정했다. 

옥천은 104.9MHz 주파수를 받아 신규허가자 중 첫 번째로 개국했다. 충북에서 유일한 공동체라디오이기도 하다. 청암송건호기념사업회는 옥천FM 법인이 되어 옥천 출신 언론인 송건호 선생의 정신을 이어나간다. <월간 옥이네>, <옥천신문> 등 지역 언론 매체의 일부 콘텐츠 역시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볼 수 있게 됐다.

각종 매체가 넘쳐나는 시대, 옛 미디어로 여겨지는 '라디오' 설립은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왜 올해 전국 20곳이나 공동체라디오를 신규설립했을까? 공동체라디오가 생긴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또 우리의 삶은 옥천FM을 통해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까?

지역에 초점을 맞춘 재난방송
 
충북 옥천군 OBN 방송국 전경
 충북 옥천군 OBN 방송국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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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1일, 옥천FM공동체라디오 OBN(오븐)이 문을 열었다.
 2021년 12월 21일, 옥천FM공동체라디오 OBN(오븐)이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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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간 코로나19 확산으로 우리는 재난방송, 특히 지역에 특화된 재난 정보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이는 한국방송통신위원회가 올해 공동체 라디오를 전국에 대폭 확대하게 된 주 배경 중 하나다. 꼭 코로나19 정보가 아니어도 자연재해, 사고와 같은 재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라디오는 인터넷 통신망이 아닌 주파수 기반 방송이기에 재난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실제로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15명 직원이 일하는 후쿠시마현 지역 방송국 '이와키FM'은 24시간 방송을 하며 당시 상황을 알렸다.

통신 등 기반 시설이 마비된 상황에서 라디오 방송은 주민들에게 빛과 같은 존재였다. 대피소에 뿔뿔이 흩어졌던 피해 주민들은 라디오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급수차가 어디에서 물을 공급하는지, 버스운행이 되고 있는지 등 생존과 직결된 정보를 얻었다.

국내에서도 2018년 KT 서울아현지사 화재로 인터넷 통신망이 두절됐을 때, 시민 다수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옥천FM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자연재해, 계속되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지역에 초점을 맞춘 정보를 전달하고 위기 극복을 돕는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글 못 읽어도 지역소식을 접한다... 주민참여로 만드는 콘텐츠

공동체 라디오 개국은 글을 읽기 어려웠던 청취자에게 특히 반가운 소식이다. 기존 언론이 인쇄 매체 위주였던 탓에 정보를 접하기 어려웠던 문맹 청취자와 시각 장애인, 이주자, 노인도 쉽게 지역 관련 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됐다.

평소 잠이 오지 않을 때 라디오를 듣는다는 박영하(80)씨는 "라디오가 있어 여러 이야기, 특히 건강 정보를 쉽게 들을 수 있다"고 말했고 한승민(13) 어린이는 "(라디오는) 나이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주민 구릉 소니씨와 끼란 카르키씨도 "옥천공동체라디오를 통해 다함께 잘 사는 지역이 되기를 바란다"며 방송에 기대를 보였다.

문턱이 높게만 느껴지던 기존 방송국과 달리, 옥천FM 공동체라디오는 지역주민도 방송활동가로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었다. 실제로 현재 편성된 43개 프로그램 대부분을 주민 방송활동가가 진행할 만큼 주민 참여비율이 높다.

주민들은 공동체라디오를 통해 다양한 주제를 논의할 수 있는 공론장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옥천FM은 앞으로도 지역 방송활동가를 계속 발굴해 예비인력을 확보하고 방송 제작 교육을 진행하며 미디어 일자리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문화예술 영역에도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버스킹 문화를 이끌어가는 옥천버스킹연합회는 '세 시의 데이트'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문화·예술인을 소개하고 공연을 선보인다. 이들은 "공연할 무대가 더 넓어진 기분"이라며 "지역민을 위한 새로운 무대가 생겼다는 것이 의미있다"고 말한다.

"앞으로 프로그램을 계속하다 보면 우리 지역에서도 새로운 스타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예울림 회원들이 매주 3-4명씩 참여해서 무대를 꾸미죠. 예울림 회원 외에도 버스킹 연합회분들도 모시고 자꾸 새로운 분들을 소개해볼 생각이에요." (예울림 김용주 단장)

이들은 "라디오를 통해 옥천이 더 하나되고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모두의 목소리를 듣는다

사회적 약자로 불리며 대상화되던 노인, 장애인, 다문화가정, 이주노동자, 새터민, 청소년 등이 방송에 참여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한 것도 옥천FM의 특징이다. 이들의 목소리를 전할 여러 프로그램 중 '오늘도 우리는 돌봄', '우리가 말하는 우리 이야기', '동요로 만드는 세상' 세 곳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은숙 실개천 마을학교 운영회장
 이은숙 실개천 마을학교 운영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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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우리는 돌봄' 실개천 마을학교 이은숙 운영회장 : "'돌봄'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입니다. 앞으로 돌봄 노동자들을 게스트로 모시고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려 해요. 처음에는 구읍 실개천마을학교의 이야기를 주로 하려 했지만 마을학교 활동 외에 일상 이야기도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년 전부터 몸이 약해지신 어머니를 돌보고 있는데, 저만 겪는 일이 아닐 거예요. 생각해보면 여성으로서 인생은 돌봄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자녀, 가족, 부모님을 돌보는 일, 참 의미있는 일이지만 웃지 못할, 어려운 순간도 있습니다.

그런 속 이야기를 같이 나누어 보려 해요. 자녀, 노인, 더 나아가 장애인 당사자 돌봄 이야기도 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라디오 방송이 하나의 소통의 장이 될 것 같아 기대가 큽니다. 방송을 통해 청취자분들이 힘을 내고 행복한 하루를 보내기를 바라요."
 
부티탄화 결혼이주여성협의회 회장 (사진제공 : 옥천신문)
 부티탄화 결혼이주여성협의회 회장 (사진제공 : 옥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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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말하는 우리 이야기' 결혼이주여성협의회 부티탄화 회장 : "결혼이주여성들이 매주 다른 주제로 대화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첫 번째 방송은 '선거', 두 번째는 '문화'를 주제로 정했어요. 이제 곧 있으면 한국에 설날이 올 텐데 베트남, 필리핀 명절 문화에 대해 이야기 나누려 합니다.

진행자로 섭외연락을 받고 나서 부담도 크고, 많이 떨렸습니다. 아무래도 모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진행해야 하는 만큼, 제 말을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어요. 동시에 우리를 옥천 주민으로 인정해주신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많은 분이 우리 이주여성에 대해 생각을 달리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주여성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로 바라보는 분이 많은데, 우리도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정순철어린이합창단 조원경 작곡가
 정순철어린이합창단 조원경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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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로 만드는 세상' 정순철어린이합창단 조정아 사무국장, 조원경 작곡가 : "남녀노소가 함께 동요를 들을 수 있도록 시간을 꾸며보려고 합니다. 정순철 선생님의 동요 외에도 추억의 동요, 새로운 동요를 소개해볼 계획이에요.

첫 방송은 정순철 작곡가 인물 소개와 그가 작곡한 여러 동요를 주제로, 두 번째 방송은 '졸업식'을 주제로 할 생각입니다. 코너 속 코너로 '내 마음의 풍금'과 같이 추억 속 동요와 사연을 공유하면서 청취자가 같이 호흡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해요. 틈틈이 합창단 어린이들도 게스트로 모셔볼까 합니다. 합창단 출신 청소년들도 방송에 참여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개국 소식, 또 프로그램 진행자 섭외연락을 받고 부담도 있지만 그보단 기대가 컸습니다. 옥천 청산면이 동요 작곡가 정순철 선생의 고향이고 특별히 올해가 어린이날 제정 100주년을 맞는 해잖아요. 3년 후면 동요 역사 100주년이 되고요. 그때까지 좋은 프로그램으로 다듬어 나가고 싶습니다. 동요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이 깨끗하게 회복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 <중학생, 노인, 이주여성이 진행... 이런 방송 들어보셨나요?>(http://omn.kr/1x0mx)으로 이어집니다.

태그:#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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