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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감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라앉는 감정으로 며칠을 부대꼈다. 새해 들어 벌써 이십여 일의 시간이 흘렀는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 그동안 사두었거나 들여온 책들을 끌어다 놓고 뒤적이며 보냈다.

늘 옆에 끼고 앉아 메모하거나 필사하며 챙겼던 노트는 뒷전이고 적극적인 독서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누군가로부터 글쓰기 플랫폼에 글이 올라오지 않는다는 말을 전해 듣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글이 안 써진다고 말했던 기억도 있다.

새해에도 멍한 나날들... 나이치레를 하고 있었다
 
집 근처 겨울 호수공원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한다.
 집 근처 겨울 호수공원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한다.
ⓒ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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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도 그랬다. 있는 반찬 꺼내 먹다가 영 궁하면 몇 가지 장 봐다가 겨우 구색을 갖추곤 했다. 빈곤하다 싶으면 더러 밀키트를 이용하였다. 지금껏 반찬 한 가지 사 먹지 않고 그럭저럭 꾸려온 부엌살림인데 밀키트를 다 사서 먹는다.

아직도 사실 밀키트는 적응 안 되는 상품이긴 하지만 좀 편하고 싶어질 때 사서 요긴하게 먹었다. 그런 걸 보면 무엇이든 남의 손을 빌린 음식이 맛있다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내 손으로 하는 수고를 좀 덜어낸 것에 대한 보상인 건지 헷갈린다.

좀 맹한 상태로 여러 날을 보내다 곰곰 생각하니 그제야 생각나는 것인데, 나는 '나이치레(어떠한 일을 치를 때, 당연히 하여야 하는 일이나 과정)'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정말로 부지불식간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예순이 넘었다'고 했던 <사는 게 뭐라고> 작가 사노 요코의 말처럼 그야말로 부지불식간에 시간의 무늬가 경계도 없이 스며들어 '예순'이라는 마디를 굳히고 있음을 순간 깨닫는다.

그러니 몸도 마음도 어지간히 지쳤는지 불청객처럼 찾아온 감기가 명쾌하게 물러나지 않는다. 무지근한 머리, 맑지 않은 기분, 일하고 있을 때 빼고는 얼른 집에 들어가 쉬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 근 2주 동안 뭔가 모르게 힘들었다.

언제나 그 '아홉치레'라는 것도 거르지 않았다. 열아홉에서 스무 살로 넘어갈 때, 스물아홉에서 서른을 헤아릴 때, 서른아홉에 마흔이라는 가파른 언덕을 넘고, 마흔아홉에서 쉰 살을 통과할 때도 그랬다. 그때는 설렘이라는 희망을 기웃거렸다. 살아보지 않았으니까, 잘 몰라서 막연하고 불안했으나 앞서 산 사람들의 씩씩함을 믿고 내디딘 발걸음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올해 예순을 막 디디고 보니 여느 때와 조금 다르다. 자꾸 주저앉고 싶고 타협하고 싶고 안주하고 싶다. 원인 모르고 정체 모를 무엇인가 자꾸 나를 물고 늘어지는 느낌과 신경전을 벌인다. 생면부지 허허로운 들녘에 홀로 내던져진 듯 낯설다. 고약한 예순이다.

돌아보니 얻은 것도 있으나 새삼 잃은 것이 많다. 50대의 5년 안쪽으로 부모를 먼 곳으로 떠나보냈다. 더는 두 분의 잔잔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따뜻한 눈빛과 마주할 수 없으며, 두 분을 위해 조촐한 밥상 한 번 차릴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봄이면 천지 가득 꽃이 피는데 이제는 그 꽃을 함께 볼 수 없다.

영원할 줄 안 것은 아니지만 지난해 시월 엄마를 보내고 난 이후로 애면글면 마음 썼던 것들을 놓아버려서 그럴까? 허탈하다. 연연해할 것이 없어서인지 슬픔도 끼어들지 않고 그저 부질없다는 생각만 앞선다.

부모에 대한 애도는 평생에 걸쳐서 하는 일이라고 자신을 다독인다. 애도는 결국 살아내는 자가 치러야 하는 삶의 몫이다. 살면서 느닷없이 솟구치는 슬픔을 만나더라도 내가 감당해야 할 무게이다. 

그래, 육십이 아직 까불면 안 되지
 
산책을 하다가 잠시 쉴 수 있는 의자.
 산책을 하다가 잠시 쉴 수 있는 의자.
ⓒ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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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호수공원에 나갔다. 앞서서 가는 한 무리의 어르신들이 주거니 받거니 목소리를 키우며 나누는 대화가 들린다.

"제까짓 게 먹었으면 얼마나 먹었다고 나이로 거들먹거려!"
"뭣 때문에 또 그려."
"아니 이제 칠십 먹은 것이 우리들 앞에서 나이 많다고 까불잖여. 꼴같잖게!"
"제 딴엔 퍽 많이 먹었는가 해서 그러지. 내버려 둬."
"아따, 요즘 세상같이 사건, 사고 잦은 세상에서 무탈하게 칠십 먹은 것도 겁나 장한 일 아녀."
"그래도 그렇지. 팔십이 중반인 사람들 앞에서 에고, 나이 먹으니 어쩌고저쩌고 할 일여?"


나는 가만가만 어르신들 옆을 스쳐 앞서 나간다.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닌데도 괜히 발걸음이 빨라진다. 며칠 동안 가라앉았던 몸과 마음을 훌훌 털 수 있을 것만 같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은 꼴은 아닌가 싶기도 하면서 '풋' 웃음이 나온다.

그래, 팔십 앞에서 칠십이 까불면 안 되지. 거기 비하면 육십은 어디 가서 나이 운운할 나이는 아닌가 싶으면서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퍽 앞서서 중뿔나게 잘 살아낸 것 같아도 결국 앞에서 먼저 살아간 사람들의 뒤를 따르는 것에 불과한 것이 인간의 삶인지도 모른다.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싶은 육십이라는 나이. 그러고 보니 나는 아직 학생이잖은가. 늦게 시작한 공부가 아직 1년 남았으니.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고, 살림도 놓지 않아야 하며, 다니는 학교 교수님의 추천으로 취업도 했으니 열심히 일도 해야 한다.

요즘은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들 산다. '내 나이가 뭐 어때서'가 아니라 각자 제 삶을 꾸리는 데 굳이 나이를 들먹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상황과 처지에 맞게 잘 살아내면 그만이다. 또한 글과 그림을 붙잡고 사는 삶도 있으니 이만하면 육십이라는 플랫폼에 망설임 없이 올라 타도 될 나이를 시작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耳順),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된다'는 것에 미치지는 않겠으나, 육십에는 그러려고 애쓰기는 해야겠다.

음력 설이 멀지 않다. 설 지나면 남도에서는 이른 봄소식이 전해질 것이다. 그야말로 검은 범을 상징하는 임인년. '검은 호랑이의 해'다. 나는 호랑이띠다. 예순을 시작하는 첫 해에 호랑이띠인 삶을 시작한다. 호랑이의 기운을 받아 '육십'이라는 여행지로 발걸음을 추동한다. 어흥, 어흥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추후에 개인 브런치에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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