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창원 LG 세이커스 감독에서 물러난 후 먹방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전 농구선수 현주엽은 현재 50만 구독자를 모은 유튜버로 변신했다. 유튜브를 통해 현주엽을 접한 젊은 대중들은 그를 '잘 먹는' 유튜버로 기억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현주엽은 현역 시절 '매직히포'로 불리며 '국보급 센터' 서장훈과 정면대결을 할 수 있었던 한국 남자농구의 정상급 빅맨이었다.

현역 시절 현주엽의 가치를 더욱 높여준 능력은 바로 그가 가진 넓은 시야와 패스능력이었다. 물론 현주엽이 고질적인 무릎부상으로 인해 고려대 시절의 터프함을 잃어 어쩔 수 없이 패스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패스에 주력한다 해도 시즌 평균 7개가 넘는 어시스트를 할 수 있는 빅맨은 흔치 않다. 이런 능력 덕분에 당시 현주엽은 공식별명 '매직히포' 외에도 '포인트 포워드'라는 별명이 새로 추가됐다.

2021-2022 여자프로농구에도 20여 년 전의 현주엽을 떠오르게 하는 뛰어난 패스능력을 자랑하는 센터가 있다. 해가 지날수록 성장을 거듭하다가 프로 15번째 시즌이 된 이번 시즌 비로소 박지수(KB스타즈) 다음 가는 리그 정상급 센터로 군림하고 있는 선수다. 쟁쟁한 가드들을 제치고 이번 시즌 어시스트 3위(5.40개)를 달리고 있는 삼성생명 블루밍스의 '포인트 센터' 배혜윤이 그 주인공이다.

프로 입단 6년 만에 트레이드만 3회
 
 포지션 대비 길고 정확한 슛거리는 배혜윤이 리그에 적응할 수 있었던 중요한 경쟁력이었다.

포지션 대비 길고 정확한 슛거리는 배혜윤이 리그에 적응할 수 있었던 중요한 경쟁력이었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사실 농구선수의 시야와 패스능력은 경험과 비례하는 경우가 많다. KEB하나은행(현 하나원큐) 시절이던 2018-2019 시즌까지만 해도 득점에만 특화돼 있던 강이슬도 팀 내 비중이 커지면서 점점 패싱능력이 향상됐다. 특히 KB로 이적한 이번 시즌엔 데뷔 후 가장 많은 3.14개의 어시스트(13위)를 기록하고 있다. 20대 시절까지 평범한 센터였던 배혜윤 역시 30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패스에 눈을 떴다.

숭의여고 출신의 배혜윤은 강아정(BNK 썸)과 김단비(신한은행 에스버드)를 배출한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5순위로 신한은행에 지명됐다. 하지만 앞서 단행된 신세계 쿨캣과 신한은행의 트레이드로 배혜윤은 신한은행이 아닌 신세계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신세계는 김정은(우리은행 우리원)과 양지희, 박세미 등을 중심으로 세대교체에 들어갔고 25경기에 출전한 배혜윤은 5.04득점3.72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신인왕에 선정됐다.

하지만 많은 유망주들이 그렇듯 배혜윤 역시 2,3년 차 시즌에 출전시간이 줄어들면서 성장이 정체됐고 2010년 4월 트레이드를 통해 우리은행으로 이적했다. 배혜윤은 우리은행 이적 후 두 시즌 연속 주전으로 활약하며 30분 이상의 출전시간과 두 자리 수 득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2012년 우리은행에 위성우 감독이 부임한 후 베혜윤은 양지희에 밀려 다시 벤치로 밀려났고 2012-2013 시즌 통합우승 과정에서 주역으로 활약하지 못했다.

결국 배혜윤은 프로 입단 후 첫 우승을 경험한 2012-2013 시즌이 끝난 후 우리은행과의 계약에 실패하며 돌연 선수생활 중단을 선언했다. 배혜윤은 3개월의 짧은 방황 끝에 삼성생명으로 트레이드되며 현역생활을 이어가게 됐지만 은퇴소동까지 있었던 선수가 새 팀에 빨리 적응할지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배혜윤은 삼성생명 이적 후 10년 가까이 활약하며 어느덧 삼성생명의 간판선수로 군림하고 있다.

배혜윤은 이적 후 세 시즌 동안 주전으로 활약했음에도 샤데 휴스턴과 모니크 커리, 키아 스톡스 등 외국인 선수들에 밀려 골밑에서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했다.

2016-2017 시즌에는 슛 거리가 늘어나면서 삼성생명 이적 후 처음으로 두 자리 수 득점(10.14점)을 기록했지만 2017-2018 시즌 6.87득점3.37리바운드로 다시 성적이 떨어졌다. 당시 배혜윤은 외국인 선수 엘리사 토마스는 물론 포워드 김한별(BNK)보다도 골밑에서의 존재감이 떨어졌다.

부족한 골밑 경쟁력을 넓은 시야로 극복
 
 배혜윤은 성적으로도 팀의 에이스지만 맏언니로서 후배들의 성장과 사기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배혜윤은 성적으로도 팀의 에이스지만 맏언니로서 후배들의 성장과 사기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사실 배혜윤은 183cm의 나쁘지 않은 신장을 가지고 있음에도 골밑에서의 움직임은 썩 뛰어난 편이 아니다. 실제로 배혜윤은 최근 두 시즌 연속 7개 이상의 리바운드를 기록했음에도 통산 리바운드가 4.90개에 불과하다. 배혜윤보다 신장이 작은 진안(BNK,181cm)이 5.44개, 김소니아(우리은행,177cm)가 7.40개의 평균 리바운드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림을 지키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이다.

이에 배혜윤은 다른 쪽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찾기 시작했다. 배혜윤은 골밑에서의 경쟁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빈 곳의 동료들을 찾을 줄 아는 넓은 시야와 포지션 대비 길고 정확한 슈팅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단점을 보완하기 보다 장점을 극대화한 배혜윤은 2018-2019 시즌 3.97개의 어시스트로 이 부문 4위에 올랐다. 상대가 배혜윤의 패스를 의식하기 시작한 2019-2020 시즌엔 평균 16득점(6위)을 기록하기도 했다.

배혜윤은 지난 시즌에도 14.59득점,7.31리바운드(이상 7위),4.24어시스트(8위)의 성적으로 15년 만에 삼성생명의 챔프전 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시즌이 끝난 후 '살림꾼' 김보미가 은퇴하고 챔프전 MVP 김한별을 트레이드하면서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배혜윤과 김단비(1992년생)를 제외한 주요 선수단 대부분이 20대 초·중반으로 구성된 젊은 팀으로 변모한 것이다(1990년생 박하나는 부상으로 출전불가).

하지만 배혜윤은 젊어진 팀을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번 시즌 윤예빈(34분2초) 다음으로 팀 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32분53초를 소화하고 있는 배혜윤은 14.45득점(9위),7.65리바운드(5위),5.40어시스트(3위)로 삼성생명을 이끌고 있다. 득점과 리바운드,어시스트, 블록슛까지 모두 팀 내 1위 기록으로 배혜윤은 이번 시즌 신한은행의 김단비와 함께 리그에서 가장 다재다능한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지난 17일 BNK를 상대로 힘들게 6연패의 사슬을 끊고 단독 4위 자리를 지켰지만 삼성생명은 여전히 공동 2위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에게 6.5경기 차이로 크게 뒤져 있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지난 시즌에도 4위로 플레이오프에 올라 우리은행과 KB를 차례로 꺾고 챔프전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이번 시즌에도 지난 시즌 같은 '언더독의 이변'을 노리고 있는 삼성생명의 중심에는 리그 최고의 '포인트 센터' 배혜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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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농구 삼성생명 2021-2022 여자프로농구 삼성생명 블루밍스 배혜윤 포인트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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