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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학교에서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당연히 학생을 가르치는 수업이다. 생활교육도 중요하다. 하지만 진짜로 중요한 일은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를 기록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수업과 생활교육을 했더라도 학생부 기록으로만 남기 때문이다. 학생에게도 마찬가지다. 실제 학교생활보다 학생부 기록이 중요하다. 학교마다 다르지만 많은 학교가 졸업식과 종업식이 끝난 지금쯤에서야 겨우 학생부를 작성하고 점검하는 일이 마무리되고 있는 까닭이다.
 
배움이 있는 학교
 배움이 있는 학교
ⓒ 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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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학생부를 기록하면서 품었던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다. 나이가 제법 있는 사람은 생활기록부(생기부)를 경험했을 것이다. 줄임말인 '종생부'가 어감이 좋지 않아서 아주 잠깐 사용한 종합생활기록부도 있다. 생기부와 학생부는 모두 학생의 학교생활을 기록하는 자료지만 내용과 쓰임새가 크게 다르다. 학생부는 학생부종합전형 때문에 대학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생기부보다 훨씬 크다. 교사로서 학생부를 기록하면서 느낀 바를 정리해 보려고 한다.

먼저 학생부에 기록해야 하는 사항은 다음과 같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
 
제25조(학교생활기록) ① 학교의 장은 학생의 학업성취도와 인성(人性) 등을 종합적으로 관찰・평가하여 학생지도 및 상급학교(「고등교육법」 제2조 각 호에 따른 학교를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학생 선발에 활용할 수 있는 다음 각 호의 자료를 교육부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작성・관리하여야 한다.

1. 인적사항: 학생의 성명ㆍ주민등록번호 및 주소 등
2. 학적사항: 학생이 해당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졸업한 학교의 이름, 졸업 연월일 및 재학 중 학적 변동이 있는 경우 그 날짜ㆍ내용 등. 이 경우 학적 변동이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7조제1항제8호 및 제9호의 조치사항에 따른 것인 경우에는 그 내용도 적어야 한다.
3. 출결상황: 학생의 학년별 출결상황 등. 이 경우 출결상황이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7조제1항제4호부터 제6호까지의 조치사항에 따른 것인 경우에는 그 내용도 적어야 한다.
4. 자격증 및 인증 취득상황: 학생이 취득한 자격증의 명칭, 번호, 취득 연월일 및 발급기관과 인증의 종류, 내용, 취득 연월일 및 인증기관 등
5. 교과학습 발달상황: 학생의 재학 중 이수 교과, 과목명, 평가 결과 및 학습활동의 발전 여부 등
6.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학교교육 이수 중 학생의 행동특성과 학생의 학교교육 이수 상황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의견 등. 이 경우 해당 학생에 대해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7조제1항제1호부터 제3호까지 및 제7호에 따른 조치사항이 있는 경우에는 그 내용도 적어야 한다.
7. 그 밖에 교육목적에 필요한 범위에서 교육부령으로 정하는 사항
가. 학교정보: 학생의 재학 중 학년, 반, 번호 및 담임 교원의 성명 등
나. 학생의 수상경력: 학생이 중학교나 고등학교 교육과정(중학교나 고등학교에 준하는 교육 과정을 포함한다. 이하 이 항에서 같다) 이수 중 수상한 상의 명칭, 등급ㆍ등위, 수상시기 및 수여기관 등
다. 학생의 창의적 체험활동 상황: 학생이 재학 중 실시한 자율활동, 봉사활동, 동아리활동 및 진로활동 등
라. 학생의 독서활동 상황: 학생이 중학교나 고등학교 교육과정 이수 중에 읽은 책의 제목 및 저자 등
마. 학생의 자유학기활동 상황: 학생이 자유학기 중에 실시한 자유학기활동 결과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은 기록을 남기려고 하는지 궁금하다. 그 가운데 학교폭력 내용을 기록하는 것은 없앴으면 좋겠다. 학교폭력 사건이 벌어졌을 때 매우 가벼운 경우라도 해결이 쉽지 않은 까닭은 조치사항이 학생부에 기록으로 남기 때문이다. 요즘 처벌을 위주로 하는 응보적 생활 지도를 벗어나 관계를 회복하는 생활교육을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학교폭력 사실을 학생부에 적시해서 처벌을 강화해야 함을 말하는 셈이다.

학생부에 기록하기 때문에 학교폭력이 줄었음을 증명하는 자료를 보지 못했다. 학교폭력 관련 업무를 맡았다가 양쪽 학부모로부터 비난을 듣거나 소송을 당하고 징계까지 당하는 교사가 많다. 변호사도 검사도 아닌 교사가 폭력 사건을 매끄럽게 처리하기는 불가능하다. 지난해부터 학교폭력심의위원회 업무는 지역교육지원청이 맡게 되었지만, 여전히 학폭 담당은 누구나 피하고 싶은 폭탄이다.

누군가 당신의 학생부를 몰래 보았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도 당신이 학창 시절에 어떤 생활을 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학생 개개인의 많은 자료를 그것도 전산 자료로 모으는 나이스 시스템을 반대했지만 막지 못했다. 건강기록부까지 해킹한다고 생각하면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

하지만 학생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철저한 보안 시스템으로 보호하고 있기도 하지만 굳이 해킹을 시도하는 해커도 많지 않을 것이다. 까닭은 학생부 기록 가운데 거짓이거나 부풀려진 자료가 많기 때문이다. 학생부를 기록하는 교사가 부도덕하기 때문일까? 아니다. 학생부를 관리하고 활용하는 시스템 때문이다.
 
◦ 독서활동상황은 독서기록장, 독서 포트폴리오, 독서교육 종합지원시스템의 증빙자료를 근거로 입력함.
◦ 전체 학년 동안 동일한 책을 '독서활동상황'란에 중복하여 입력하지 않도록 함.
 
독서활동 상황을 기록할 때 학생이 실제로 읽었는가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난해 읽었다고 기록된 책을 다시 적어 내는 학생이 많아서 이제는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물론 같은 책을 다시 읽을 수 있지만, 학생부 점검을 받으면 지적을 받는다.
 
제16조(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①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은 수시로 관찰하여 누가 기록된 행동특성을 바탕으로 총체적으로 학생을 이해할 수 있는 종합의견을 담임교사가 문장으로 입력한다.
② 행동특성 중 학교폭력과 관련된 사항은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7조에 규정된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사항을 입력한다.
 
옛날 생기부 시절엔 행동발달 상황을 준법성, 근면성 등으로 나눈 항목에 3단계(가나다) 평가하도록 했다. 학생부로 바뀌면서 교과학습 발달상황,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을 모두 구체적으로 기술하도록 하고 있다. 학생부가 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보니 학생이 부족한 부분을 기록했다가 소송을 당하는 교사도 있다.

이렇게 민감한 서류에 자신 있게 기록할 정도로 수업과 생활교육 속에서 학생의 특기사항을 확인할 시간도 없다. 누가기록을 꼼꼼하게 남길 시간은 더더욱 없다. 지침에 충실한 교사는 좋은 말로는 관찰자 나쁜 말로는 감시자이다. 당연히 교사는 늘 학생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하지만 평가를 누가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쉽지 않기도 하지만 어쩌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요즘은 연수에서 학생부 기록으로 소송을 당했으나 누가기록을 가지고 있어서 승소했다는 사례를 전파하고 있다. 소송에 대비하기 위해 누가기록을 남기라니 정말 우스꽝스럽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많은 교사는 뜻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모호한 문구나 그냥 좋은 이야기를 기록함으로써 이런 상황에 대처하고 있다. 심지어는 학생이 써 낸 글을 참고하여 기록하는 교사도 있어서 학생부 기록을 써주는 사교육 업체도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학생부 기록은 왜 꼭 명사형으로 끝내야 하는지 묻고 싶다. 이것은 생기부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관행이다.
 
교과 성적이 우수하고 근면, 성실함. 교칙을 잘 준수하고 차분한 성격으로 학교생활에 충실함. 교과 성적이 매우 우수하고 마음씨도 고운 학생임. 항상 웃는 얼굴로 예의가 바르고 인사를 잘하며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지님.
 
교직에 오래 있어서 익숙한 표현이지만 명사형으로 끝맺으면 말을 제대로 못 배운 어린이가 하는 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다. 생기부를 손글씨로 적던 시절에 칸이 넓지도 않았기에 다만 몇 글자로 덜 쓰기 위해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 대선에서는 정책 대결이 사라진 느낌이다. 모쪼록 대선에 나선 후보들이 좋은 교육 정책을 만들기를 바라고 차기 정부에서는 학교생활기록부를 없앴으면 좋겠다. 학생은 일상을 기록해야 할 임금이 아니고 교사는 임금을 쫓아다니며 사초를 적는 사관이 아니다. 교육에서 앞서 있는 나라들은 우리나라처럼 학생의 일상을 낱낱이 기록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학생부는 일제 강점기부터 내려온 이제는 버려야 할 유산이 아닐까?

태그:#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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