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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편집자말]
맥박이 뛸 때마다 거센 파도처럼 통증이 잇몸 주변을 강타한다. 왠만하면 약에 의존하고 싶지 않아 진통제를 먹지 않으니 통증을 그대로 느낄 수밖에 없다. 낮에 받은 치과의 신경치료 때문이다. 날카로운 바늘로 찌르고, 깎고, 갈아대는 기계음들 속에서 초긴장으로 돌덩어리가 된 어깨는 아직도 묵직하다.

밤새 통증으로 끙끙 앓다 보니 의도치 않게 통증의 양상이 파악되었다. 마취가 풀린 직후엔 위아래 턱 전체가 쉴 새 없이 욱신거리더니 밤이 되자 시간 간격을 두고 강하게, 약하게를 반복한다. 새벽 즈음 되니 통증이 거의 사라지고 미약한 욱신거림만 남았다. 통증이 조금씩 물러가는 걸 실시간으로 체험한 신기한 경험이었다.

긴긴밤 통증의 파고를 견디며 '왜 진즉 치과에 가지 않았나' 소용없는 반성을 거듭했다. 별 게 아닐 거라고 방치하다가 결국 참지 못할 정도로 아프고 나서야 치과를 간 일이 후회막급이었다. 증상이 악화되었으니 당연히 치료기간이 더 길고, 더 아팠다. 이상을 느꼈을 때 바로 갔더라면 훨씬 가볍게 지났을 텐데 말이다.

50대 가까이 되어서야 만난 부부의 갈림길
 
긴긴밤 통증의 파고를 견디며 '왜 진즉 치과에 가지 않았나' 소용없는 반성을 거듭했다.
 긴긴밤 통증의 파고를 견디며 "왜 진즉 치과에 가지 않았나" 소용없는 반성을 거듭했다.
ⓒ envato el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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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몸의 여기저기에서 보내는 신호는 치아뿐만이 아니다. 산행할 때는 오른쪽 무릎이 좀 시큰하고, 안경을 써도 코 앞의 활자들이 흐릿해 보여 눈도 영 답답하다. 만성이 된 손목 통증과 노상 무거운 허리도 달래가며 쓴 지 오래다. 몇 년 전만 해도 분명 하룻밤만 자고 나면 온 몸이 개운했는데, 요즘엔 개운은커녕 잠마저 한 번에 푹 자는 경우가 드물어 자주 피곤하다.

거의 50년 동안 마음껏 부려먹었으니 이제는 관심 좀 가져달라고 몸이 말을 건네는 것 같다. 갱년기 같은 몸의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으니 잘 살피라고 통증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통증은 사실 몸의 고마운 반응이다. 이런 중요한 신호들 덕분에 늦지 않게 건강을 점검하고, 50 이후의 삶을 질병에 저당 잡히지 않도록 몸을 챙길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몸뿐만 아니라 50대 이후의 부부관계도 재정비가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우선 자녀의 독립이나 퇴직, 은퇴로 부부는 갑작스러운 삶의 변화를 맞는다. 회사 일로 밖으로만 돌던 남편이 집에 머무르면서 남편과 온종일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50에 마주한 게 '제2의 신혼'과 '황혼 이혼'의 갈림길이라니. 어느 쪽으로 접어들지는 이 시기를 보내는 부부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을 터.  

아는 70대 후반의 부부는 도심 한복판의 고가 아파트에 거주하지만, 서로 얼굴을 절대 마주치지 않는다. 밥도 따로, 일상 활동도 따로, 여행도 따로, 대화 단절의 기간이 어언 20년이 넘어간다. 오직 현관에 놓인 신발로 서로의 부재 여부를 가늠할 뿐이다. 원망과 불만이 쌓여 서로를 냉대하다 못해 원수 취급하고 괴로워하면서도 질긴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이 부부는 언제부터 서로를 방치하고 외면했던 걸까? 부부관계에 자신 없는 내겐 남의 일 같지 않아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변화의 시기를 무탈하게 잘 보내고, 오순도순 지내기 위한 방법으로 주변에서 들리는 여러 조언들이 있다. 함께 여행이나 한적한 전원생활, 골프나 배드민턴 등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부부마다 사정이 다르다. 취미 활동도 취향과 성향이 엇비슷해야 재미가 있을텐데 이것도 맞추기 쉬운 일은 아니다.

아직 50대 이후의 변화를 본격적으로 맞지 않은 나로서는 섣부른 고민일 수 있지만, 미리 마음의 준비라도 해 두고 싶어 종종 남편과 대책을 논해보곤 한다. 안심이 되는 남편의 호언장담 중 하나는 은퇴를 하더라도 집에만 있지 않겠다는 말이다. 변두리에 작은 오피스라도 얻어 책을 읽든, 연구를 하든, 사람들을 만나든 아침에 나가 저녁에 귀가하는 루틴을 지속하겠단다. 자기도 집에만 있기는 답답한 노릇이라며.

과연 남편의 말대로 실현될지 알 수 없으나, 은퇴 후에 어떻게든 남편의 일상을 스스로 꾸려갈 수 있다면 나로서는 더 바랄 게 없겠다. 은퇴 후가 아니라 당장이라도 영화보기, 산책하기, 근교 나들이, 카페 가기 등 남편과 단 둘이 함께 하는 일들이 최근 몇 년 사이 대폭 줄고 있는 처지이니 말이다. 어쩌면, 좀 건조하긴 해도 이런 거리감이 그나마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지금도 이리 데면데면한데, 은퇴했다고 하루 종일 붙어 있어야 한다거나, 그제야 뭔가를 함께 해보겠다고 무리를 한다면 오히려 더 역효과를 내지 않을까 싶다. 부부라 해서 배우자의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꿸 정도로 밀착할 이유도 없는데 말이다.

우리 부부만의 '따로 또 같이' 사는 법 찾아야
 
  서로를 끼니와 역할로 얽매지 않고 각자의 일상을 존중하면서 '따로 또 같이'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서로를 끼니와 역할로 얽매지 않고 각자의 일상을 존중하면서 "따로 또 같이"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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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한 다큐 프로그램에 소개된 사이좋은 60대 초반의 부부는 아예 거처까지 따로 두고 살고 있었다. 남편은 파주에, 아내는 서울에. 아내는 58세에 홀로 사는 거처를 마련하고 독립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각자의 일상에 몰두하다가 필요하고, 보고 싶을 때 서로를 방문한다. 

서로를 대하는 눈길과 태도에 그리움과 진심 어린 정다움이 배어 있었다. 60대 부부에게도 저런 감정교류가 가능하구나 싶어 참 인상 깊게 봤다. 서로를 끼니와 역할로 얽매지 않고 각자의 일상을 존중하면서 '따로 또 같이' 사는 법이 참 멋져 보였다.

어찌해야 50대 이후에 부부가 함께 행복할 수 있을지 더 고민해 보려 한다. 누구는 모성이야말로 부부관계를 구원할 최후의 방편이라고도 한다. 아무리 남편이 마음에 안 들어도 자식대하듯 하해와 같은 사랑으로 끝까지 품어주는 수밖에 없다는 아내들의 자조적 표현일텐데... 솔직히 내 아들도 아닌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나는 모성보다는 부부가 동의하는 부부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부부간에 심리적 거리는 가까울 때도, 멀 때도 있겠지만 이제껏 다르게 살아온 서로를 존중하면서 일상을 재정비한다면 제2의 신혼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더불어 살아갈 수는 있지 않을까?

몸이든 부부관계든 망가지기 전에 돌볼 기회를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하다. 여기저기 돌봐달라고 보내는 몸의 신호가 달갑지 않지만 그래도 고마운 마음을 가져 보려 애써본다. 건조한 관계지만, 수차례 삶의 굴곡에도 오랜 시간 같은 행로를 걷고 있는 남편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내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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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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