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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바탕에서 영롱한 빛을 쏘아내는 <검은 빛 시리즈>는 2차원의 캔버스가 먼 하늘의 행성처럼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빛은 광채와 함께 한 차원 이상의 깊이를 품고 관람객의 시선에 닿는다.
▲ 메리 코스 어두운 바탕에서 영롱한 빛을 쏘아내는 <검은 빛 시리즈>는 2차원의 캔버스가 먼 하늘의 행성처럼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빛은 광채와 함께 한 차원 이상의 깊이를 품고 관람객의 시선에 닿는다.
ⓒ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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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나의 주제를 찾을 수 있을까

매일 글을 쓰는 삶이 3년차에 접어 들었다. 그런데 글을 쓸수록 깊어지는 고민이 있다. 당신은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가. 당신의 주제는 무엇인가. 뻔한 삶을 살아 특별한 이야기는 없고 이어 써 나갈 하나의 주제도 잘 찾아지지 않는다. 어디서, 어떻게 나의 주제를 찾을 수 있을까.

화가 메리 코스(Mary Corse, 1945~)는 60년 간 빛과 회화의 관계를 탐구했다. 빛을 회화로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재료를 실험했던 그는 전기로 빛을 내는 라이트 박스를 설치하거나 물감에 금속을 섞어 채색했다. 말리부 해안을 달리다 도로 바닥에 그려진 흰 선이 빛을 발하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후 하얀 물감에 유리 마이크로스피어를 섞어 <흰 빛 시리즈>를 완성하기도 했다.

고속도로 차선에 사용되는 산업재료인 유리 마이크로스피어는 입사한 광원을 그대로 되돌려 보내는 특성이 있다. 이 재료를 섞어 채색한 거대한 화폭은 바라보는 이의 위치에 따라 다른 빛과 색을 만들어낸다(메리 코스:빛을 담은 회화, 아모레퍼시픽미술관, 2021.11.2~2022.2.20).

이후 흰색과 검은색으로 제한했던 화폭에 빨강, 노랑, 파랑의 삼원색을 사용하여 '색채 회화' 작업을 했고 그때에도 '모든 색의 빛이 모이면 다시 흰 빛이 된다'는 생각으로 색을 빛으로 만들고자 했다. 70년대 검은색을 사용한 작업에서는 검은색 아크릴 물감에 사각형 아크릴 조각과 유리 마이크로스피어를 혼합하여 채색함으로써 빛을 흡수하는 동시에 반짝거리는 표면을 만들었다.

빛을 주제로 작업하는 작가에게 검은색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데 빛이 어둠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대형 화폭의 검은 어둠에서 화려하게 빛을 내는 아크릴 조각과 유리 마이크로스피어는 밤하늘의 별을 연상시키며 아득한 거리감을 부여한다.

흰색과 검은색을 주조로 한 대형 작업은 선과 사각형의 단순한 이미지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는 '빛'이라는 하나의 주제에 천착해 60여 년간 작업을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재료를 연구했다. 그는 작업하는 재료에 대해서는 완벽한 이해를 추구할 만큼 철저했다. 이를 위해 물리학 수업까지 듣고 어떤 재료든 작가가 직접 다룰 수 있을 만큼 익숙해지기 위해 공을 쏟았다. 그러한 고민과 경험이 축적되면서 작품에 깊이와 철학이 더해졌다.  

작가는 1966년에서 68년 사이 '빛'을 회화로 가져오기 위해 전기로 회화를 제작했고 빛 그 자체로 회화가 될 수 있음을 선언했다. '빛'이라는 '객관적인 진실'을 작품에 담기 위해 라이트 박스 작업(전기로 빛이 나오는 사각형의 설치작품)을 구상하였지만 물리학 수업을 수강하면서 객관적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사람의 경험과 인식은 근본적으로 주관적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면서 다시 회화로 돌아와 물감에 금속 재료를 혼합한 작업을 지속했다. 사람의 주관적 인식에 방점을 두고 관람객이 공간 안에서 작품을 인식하고 경험하는 과정으로서의 예술 경험에 집중했다. 또한 설치 작업에서 캔버스로, 즉 3차원에서 2차원으로 바뀐 작업에 대해 차원이 줄어들수록 추상적 표현의 가능성이 증가된다고 생각했다.

작가는 사람의 경험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파고들었고 그 생각을 강화시켜 작품에 반영했다. 그로 인해 관람객 개개인의 작품 감상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고유한 것으로 변모하고 작품에서 발산하는 빛을 통해 빛에 대한 감각과 인식, 사유의 확장을 경험하게 한다.

빛을 내는 그의 작품은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로 사진에 찍히지 않는다. 사진을 찍는 위치에 따라 작품의 색채가 바뀌는 탓이다. 어두운 바탕에서 영롱한 빛을 쏘아내는 <검은 빛 시리즈>는 2차원의 캔버스가 먼 하늘의 행성처럼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빛은 광채와 함께 한 차원 이상의 깊이를 품고 관람객의 시선에 닿는다.

빛을 받아 색을 내는 그림이 아닌 스스로 빛을 만드는 그림, 발상의 전환도 놀랍지만 그 생각을 놓지 않았던 작가의 집념이 우리를 자극한다. 홀로 빛을 내는 작품 앞에서 60년이라는 시간을 생각한다. 흰색에서 삼원색으로, 그리고 검은색으로 작품의 주를 이루는 색과 재료는 조금씩 바뀌었지만 그의 작품들은 '빛'이라는 주제 안에서 공명하고 있다. 그에겐 작품의 주제로서의 '빛'이 60년의 작업을 밝혀준 '빛'이 아니었을까. 

'나다움'을 찾아내는 시간 

당신에게는 그런 주제가 있는가. 평생을 파고들어도 지치지 않을 사유의 핵심이 있는가. 단순해 보이는 소재나 생각일지라도 시간을 들여 탐구하면 나만의 고유한 세계로 확장될 수 있음을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생각의 흐름을 좇는 게 아닌 이상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생각을 고집스레 밀고 나가는 힘도 필요할 것 같다.

모두가 이해하는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개개인이 다르게 경험한다는 주관성에 집중해 작품에서 그 점을 강조했던 메리 코스처럼.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자기 생각을 믿는 고집과 끈기가 있어야 한다.  
 
"이런저런 말들에 휘둘리지 말고 깊이 대신 목소리를 찾을 것. 당장 최고가 되려 말고 지금 최선을 다할 것. 그렇게 버티는 시간은 조금 오래 걸릴지 모른다. 그러나 창작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런 지난한 시간을 지나며 단단해지고 다듬어진다. 나다운 걸 찾아낸다. (...) 뭐랄까, 내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좀 이상하고 아름다운 그런 어떤 걸. 그리하여 끝내는 당신만이 만들 수 있다."

_'왜 나는 깊이가 없을까', 고수리 

지난한 시간을 지나며 단단해지고 다듬어지는 것, 그러면서 나다운 걸 찾아내는 것,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런 저런 말들에 휘둘리지 말고 깊이 대신 나만의 목소리를 찾으려 한다.

계속 쓰는 시간이 쌓이면 축적되는 이야기에서 겹치는 주제가 발견되지 않을까. 남들이 뭐라 하든 강렬하게 믿고 좇고 싶은 생각이 또렷해지지 않을까. 시간이나 관계, 사랑이나 자유처럼 나를 떠나지 않는 생각들이 결국 내 이야기가 되어주지 않을까. 내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좀 이상하고 아름다운 그런 이야기가.

끝내는 나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로 나만의 문장을 쓰고 있을 언젠가를 상상한다. 메리 코스의 60년을 떠올리면 겸허한 마음으로 더 써 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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