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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을 마무리하며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이 있다. 20년에도 했던 그 말. 

"올해 아무것도 못 했어."

몇 년간 가장 많이 내뱉은 말 베스트 1은, 

"오늘도 아무것도 못 했어."

가장 많이 듣는 사람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배우자. 나는 그렇게 투덜대면서 국을 데우고 반찬뚜껑을 탁 탁 연다. 급히 옷을 갈아입은 배우자가 상차림을 돕는다. 그가 나의 눈치를 보는 게 느껴진다. 아이 실비보험 관련 서류 떼러 대학병원도 다녀왔고 마트에도 들렀고 빨래도 했는데, 아무것도 못 했다니... 입 밖으로 튀어나온 내 말에 내 마음이 상해버렸다.

육아를 하면서 오늘 바빴냐는 질문에 자주 멈칫했다. 특히 아기가 모유 먹던 시절이 그랬다. '바쁨' 하면 시끌벅적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떠오르는데, 아기를 돌보는 동안은 울음소리 외에는 조용하고 나 역시 크게 움직임이 없다. 재울 때는 약간의 흔들거림 정도다.

아기가 내 배 위에서 겨우 잠들었을 땐 미동도 없이 몇 시간을 보내야 하니까 정말 아무것도 못 한다. 살며시 들어 올리는 휴대전화가 구세주. 가장 동적일 때는 집안일할 때다. 정리정돈은 재빨리, 설거지는 후다닥. 아이를 돌보는 바쁨은 그동안 내가 알던 '빠름빠름'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라서 느리게 바쁜 그 시간에 꼭 들어맞는 단어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엄마 배 위에서 자던게 일상이었다. 아이와 둘만 있는 시간이 많았던 시기라 일상은 사진으로 기록되지 못했다. 아빠 배 위에서 자는 모습만 사진으로 남아있다.
▲ 배위에서 가장 잘 자던 아이  엄마 배 위에서 자던게 일상이었다. 아이와 둘만 있는 시간이 많았던 시기라 일상은 사진으로 기록되지 못했다. 아빠 배 위에서 자는 모습만 사진으로 남아있다.
ⓒ 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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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바빴던 건 아닌데.'
'정신은 없었는데, 뭘 했는지는 모르겠네.'


말끝에 따라오는 찜찜함과 울적함. 이게 아닌데... 육아인이 되기 전 쓰던 말로는 한계가 있었다. '아무것도 못 했음'은 많은 일을 했지만 나에게만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는 의미라는 걸 말이 뱉어지고 기분이 상한 다음에야 깨닫는다.

완전히 달라진 '밥 차리다'의 의미 

지금 뭐 하고 있어? 지인의 카톡에 '아이 밥 챙겨주고 있지'라고 답할 때도 그렇다. 어, 이건 너무 간단하잖아. 작은 사람과 함께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이전에 살던 세상과의 단절은 언어에서도 여지없이 느껴졌다. 남이 나에게 해주거나 내가 남에게 해주던 대접, 더 어릴 때는 숟가락만 놓으면 매끼 뚝딱 차려지던 한상을 뜻했던 '밥 차리다'는 이제 이런 의미다.

새벽부터 배달된 식재료와 반찬을 냉장고 안에 정리한다. 배가 완전히 비워지기 직전의 적절한 타이밍을 예상, 간식과의 간격을 신경 써서 상을 차린다. 앉아서 먹으라고 수십 번 반복하며 반은 떠먹인다. 국그릇이나 물 컵을 엎지르는 옵션은 다행히 가끔 있다. 나도 적당히 같이 먹으며 내일 뭐 먹지, 주말엔 뭐하지, 아이가 계속 피부를 긁는데 병원을 다시 가볼까, 머릿속은 우왕좌왕 중구난방.

흘린 반찬 치우려고 식탁 밑으로 들어간다. 아이 소매에 붙은 밥풀을 제거하고 그릇은 대충 헹궈서 식기세척기에 넣는다. 후식을 먹겠다고 하면 잽싸게 과일을 깎는다, 쓰레기와 설거지가 조금 더 늘었다. 다음 끼니가 되면 타이밍을 맞추는 것부터 반복한다. 모두 잠든 밤이 되면 다음날 반찬을 만들거나 재료를 주문한다. '아이 밥 챙기기'로 퉁친 말에는 이 많은 이야기들이 생략되어 있다.

과거의 내가 본 육아는 일회성 이벤트였다  

혼자 살다가 한 생명 책임지는 위치가 되니까 같은 말도 뜻이 달라졌다. 그 간극이 너무 커서 여전히 부대끼는 나는 육아 이야기에는 유독 예민해지며 '돌봄'이라는 단어가 너무 추상적이라 속상하고 상대방은 모를 거라 단정 짓곤 했다.

TV에서나 육아를 경험했던 20~30대의 내가 본 것이라곤 해맑은 다섯 청년이 눈 큰 아기와 놀아주는 모습, 평소 돌봄에 손 놓고 있던 아빠가 애만 데리고 여행가는 것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보호자의 미숙함에 맘 편히 웃을 수 있는 일회성 이벤트 육아. 평소 양육자였던 엄마는 앞부분에 슬쩍 등장함과 동시에 사라진다. 최소한의 분량으로(최근 그 사라진 엄마에게 포커스를 맞춘 예능이 생기긴 했다, <내가 나로 돌아가는 곳-해방타운>).

TV 속에는 사랑하는 남녀, 돈 버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흔했다. 별별 사건이 벌어지고,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음을 자연스럽게 습득했다. 다른 업종의 일이라 하더라도 누군가 '오늘 힘든 일 있었어' 울음을 터뜨리면 자세히는 몰라도 쉽게 공감했다. 성질 더러운 상사, 얄미운 동료, 어처구니없는 실수, 불합리한 시스템. 너를 괴롭힌 게 뭐야? 사랑도 그렇다. 이별한 친구의 구구절절 사연을 다 듣지 않고도 '야, 뭔지 알 것 같아'.

내 주변에도 돌봄 이야기는 없었다. 아이를 낳은 동료들은 일터에서 사라지거나 아이 없는 사람처럼 이전과 다름없이 -그것은 생존본능- 일하고 말했기 때문이다. 당사자가 되기 이전의 언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세계가 육아인이 사는 곳만은 아닐 것이다.

앞서 '힘든 일 있었어' 하면 대충 어떤 이야기인지 안다고 했는데, 그 또한 어떤 영역 안에서만 그렇다. 대중의 관심이 쏠리지 않는 세상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상을 나는 여전히 잘 모른다. 돌봄을 이제 안다고 생각하지만 장애인, 노인, 아픈 생명을 돌보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듯이. 하지만 모르는 걸 몰랐다는 걸 알게 된 것만은 다행이다. TV 없이 못 살던 내가 책으로 눈을 돌린 이유는 덜 선별된,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언어 발견이 시급하다 

나와 비슷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더 넓은 세상에서 언어생활을 하고, 지금에 적확한 단어를 발견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각의 데이터가 충분해야 하니까 나는 그 수많은 데이터 중 하나가 되려고 한다. 적절히 표현된 각자의 분량이 모여 뒤섞이고 같은 종류끼리 묶이고 재분류되다 보면 그것으로 또 다른 말이 탄생할지도 모르니까.

몽롱했던 날이었던가. 답답했던 날이었던가 인터넷에서 '돌밥돌밥'을 발견했던 순간 숨통이 조금 트였었다. 국어사전에 없는 말을 멀리하던 나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요즘 유치원 겨울방학이고 외식도 조심하게 되는 코로나 시대라 '돌밥돌밥돌밥' 하고 있다.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했다가 제발 혼자 있고 싶다가를 반복하는 겨울이다.

아이를 돌보면서 나도 돌봐야 한다는 압박과 바람을 동시에 가지는 이유를, 다른 사람의 말보다 내 말에 더 많이 상처 입는 나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자꾸만 내 분량을 확보해놓고 싶은 겨울이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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