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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검열관으로 일하다 보면 대체로 크고 복잡한 건물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건물이 크고 복잡할수록 리스크가 비례해서 증가하기 때문이다. 살펴봐야 하는 동선도 길고 설치된 소방시설이 많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특히 오래된 건물이나 이용객이 많은 곳이라면 기존 건물보다 위험도가 배는 증가하므로 꼼꼼하게 점검해야 한다.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내부에 위치한 미국고등학교. 많은 학생이 있어서 우선순위가 높은 건물 중 하나다.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내부에 위치한 미국고등학교. 많은 학생이 있어서 우선순위가 높은 건물 중 하나다.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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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매월 소방검열관에게 할당되는 소방검사 리스트는 주어진 한 달이 얼마나 어려운 시간이 될지 또는 수월하게 진행될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소방검사라는 노동의 강도는 건물의 크기와 복잡성에 따라 결정되지만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설정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과의 관계다. 이익을 창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과 처음부터 끝까지 안전을 지향해야 하는 소방검열관은 태생적으로 좋은 친구가 되기 어렵다.  

아무리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입되고 다양한 안전 관련 법률들이 존재한다고 해도, 결국 어느 시점에서 업체는 수익과 안전이라는 갈림길에서 선택을 강요받기 마련이다. 업체의 선택이 소방서의 입장과 배치되는 상황은 빈번하게 발생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장에서 공사업체 관계자가 건네는 커피 한 잔이나 도넛을 선뜻 받는 일은 매우 조심스럽다.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의 경우 공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다양한 업체 관계자들과의 만남이 시작된다. 공사 전 회의, 용접 허가, 도로 굴착허가, 소방시설 사용허가 등 전체 공정에서 감독을 해야 하는 일도 많고 완공검사를 마친 후에도 1년 동안의 하자보수 기간에도 얼굴을 볼 일이 생긴다.  
 
공사업체 관계자들이 도로 굴착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공사업체 관계자들이 도로 굴착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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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로의 업무 스타일도 알게 되고 소위 인정이라는 것이 생긴다. 간혹 소방검열관조차 과하다고 느끼는 규정을 집행할 때는 업체 관계자들에 대한 미안함이나 연민도 느낀다. 이 순간이 바로 소방검열관이 조심해야 할 타이밍이다.
 
회의장에 준비된 커피가 놓여있다.
 회의장에 준비된 커피가 놓여있다.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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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상 거절하기 어려워 마신 커피 한 잔이 반복되다 보면 타협되어서는 안 되는 기준이 흔들릴 수 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라는 말처럼 계속해서 상대방의 호의를 받다 보면 안전규정에 대한 중립적인 해석과 집행이 어려워진다.   

만약 미국의 한 조직이 의도를 가지고 소방서에 접근해 많은 금액을 기부했다고 하자. 아무리 기부나 로비가 합법화된 미국 사회라고 하더라도 안전을 담보로 분별없이 기부를 받았다면 결코 시민들의 비난을 피해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 내 책상 위에 놓여있는 귤 한 상자에 깜짝 놀랐던 일이 있다. 업체 관계자는 친절함에 대한 성의였다며 해명했지만 나는 마치 영화처럼 상자 안에 귤 말고 혹시 다른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던 기억이 난다. 결국 관계자를 불러 다시 귤 상자를 돌려보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아무리 선의로 건네는 작은 물건이라고 해도 화재예방이라는 소방검열관 본연의 임무가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처음부터 분명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좋다. 마음은 고맙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세련되게 전달하면 더 좋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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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서울 출생. Columbia Southern Univ. 산업안전보건 석사.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소방검열관. 중앙소방학교, 서울소방학교 등 외래교수. 소방칼럼니스트: 경향신문 <이건의 소방이야기>, 세이프타임즈 <이건의 이슈분석>, 오마이뉴스 <이건의 재미있는 미국소방이야기>. 저서: <주한미군 취업가이드>, <미국소방 연구보고서> 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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