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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대표 박동완
 민족대표 박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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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세 중년의 나이에 찾아온 하와이는 낯선 곳이었다.

육신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성한 곳이 별로 없고 두고 온 가족에 대한 애틋함과 미안함이 가슴을 짓눌렀다. 민족운동을 함께해온 동지들과 신앙동료들 그리고 사나운 승냥이 밑에서 신음하는 동포들에게도 똑같은 심경이었다. 

하와이 교포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으며 담임목사로서 목회 활동을 열심히 시작하였다. 교포들의 생활은 국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파인애플 농장이나 사탕수수밭에서 고된 노동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느라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런 중에서도 고국의 불행을 걱정하는 마음은 여느 지역 교민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부임해서 첫 설교의 제목을 의도적으로 <포도나무 가지>로 정하였다. 성경구절은 요한복음 15장 1절에서 11절까지였으며, 포도나무와 가지가 상징하듯 예수를 떠나서는 교회가 존재할 수 없음을 성도들에게 강조하였다." (주석 6) 

그의 '지성일관'의 신념은 하와이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라 사랑의 정신은 장소가 바뀌면서 더욱 강해졌다. 그는 주일은 물론 평일에도 교포들의 집과 일터를 찾아 전도하고 한국말로 설교하였다. 교포들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교회 부속 한글학교를 운영하여 큰 성과를 얻었다.

박동완은 1929년 5월 11일부터 교회 부속 국어학교(이하 한글학교)를 운영하였다. 한글학교는 그가 오기 전 이미 설립되어 있었다. 그해 1929년 12월에는 와히아와 교회 한글학교를 오하우섬에서 가장 큰 한글학교로 발전시켰다. 그가 얼마나 한국어 교육에 열정을 쏟았는지 당시 그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학생의 증언으로 알 수 있다. 

그들의 기억에 의하면, 박동완은 끝까지 혼자 살았으며 과묵하고 매우 엄격한 분이었다. 그가 와히아와 교회에 부임하였을 당시에는 하와이 교포들이 대부분 가난하게 살았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사례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어렵게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주석 7)

그는 하와이 군도 외딴 섬이나 오지를 찾아다니며 교포들에게 고국의 소식을 전하고 설교하였다. 아무리 곤궁하여 새 삶을 위하여 이민을 온 처지이지만 고국이 그립고 동포가 그리운 것은 인지상정이다. 

부임하자마자 와히아와 근처의 소부락을 왕래하며 전도에 열심을 다했던 박동완은 한국말로 예배를 보지 못하던 이웃 섬의 교포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는 주일에만 설교를 국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순회설교자'를 자처하였다. 교통이 불편했던 당시 사정을 감안했을 때, 한인교포들이 도보 혹은 배로 이동해 온 그를 얼마나 열렬히 환영했을지 상상이 간다. 그로 인해 와히아와 교회는 나날이 부흥하였다. (주석 8) 

박동완은 목사이면서도 언론인이었다. 그리고 독립운동가이다. 그의 심중을 분해한다면 3분의 1은 기독교정신, 3분의 1은 민족언론, 나머지는 자주독립정신으로 구성되었지 아닐까 싶다. 하와이 교포들에게 한글을 가치는데 열과 성을 다하였다. 이역에서도 한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충정이었다. 

교포들은 파인애플 농장이나 사탕수수밭에서 고된 일을 하며 힘든 삶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그의 목회 열정은 가난 앞에서 더욱 투지를 발휘하였으며 현지에서 태어난 교포 2세들을 상대로 한글학교를 열어 하와이에서 모국어를 가르쳤다. 그들의 기억에 의하면 그의 한글교육은 아동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주일을 빼고는 매일 두 클래스로 운영되었으며, 첫 번째 클래스는 아동을 상대로, 두 번째 클래스는 어른을 상대로 수업을 했다. 그는 사망 전까지 계속 혼자 살았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고문으로 인해 몸이 성치 않았을 그가 혼자 살았다는 것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교육을 중시하던 그의 영향으로 당시 교회에 다니던 한글학교 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매우 높았다고 한다. 시골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 교회 출신 중에서 하와이주 대법원장이 나왔다고 자랑하였다. (주석 9)


주석
6> 박재상, 임미선, 앞의 책, 192쪽.
7> 앞의 책, 192~193쪽. 
8> 앞의 책, 193~194쪽.
9> 앞의 책, 194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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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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