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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 크기의 상륙군 침실은 뒤척이기조차 곤란할 정도로 좁았다. 이곳에 눕게 된 이들은, 한때 고향집의 이부자리에서 편하게 쉬었을 평범한 젊은이들이었다.
▲ 해군함정의 상륙군 침실(2018년) 관 크기의 상륙군 침실은 뒤척이기조차 곤란할 정도로 좁았다. 이곳에 눕게 된 이들은, 한때 고향집의 이부자리에서 편하게 쉬었을 평범한 젊은이들이었다.
ⓒ 박광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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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에 위치한 해병대 부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지역 초등학교에서 발송된 위문편지가 장병들의 손에 전해지던 순간을 몇 차례 본 적이 있다. 사실 편지라기 보다는 쪽지에 가까운 것이었다. 비록 원고지 한 장도 채우지 못할 짧은 분량이었지만, 지역 초등학생들이 우리 장병들의 노고를 되새기며 종이의 여백을 삐뚤삐뚤 채워갔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참 따뜻해졌다.

20살 언저리의 장병들은, 그 짧은 쪽지를 받아들고서 기쁘게 웃었다. '국민'으로부터 '감사'를 받은 것은, 20여 년을 살아온 그들에게 분명 특별한 경험이 되었으리라. 그 와중에 어떤 대원은 '해병대 소속인 자신에게 공군 아저씨라고 써서 서운하다'며 울상을 짓기도 했다.

국방의 중임을 짊어진 장병들에게 있어 작게나마 동기 부여와 위로를 안겨주는 '위문편지'가, 최근 인터넷 공간에서 뜨거운 화두로 올라선 것은 너무나도 당혹스럽게 느껴진다. 1961년 이래 모 여고에서 실시되어 온 위문편지 행사에서, 일부 재학생의 부적절한 편지 내용이 논란이 된 것이다(관련 기사: '위험한 위문편지' 강요 고교, '학생 탓' 공지문 논란).

봉사활동 시간을 보상으로 국군장병에게 위문편지를 작성하게 하는 발상 자체가 구시대적이라는 비판을 접하고서, 충분히 일리가 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씁쓸함을 금할 수는 없었다. 특히, 사실상 수취인 장병을 조롱하는 편지 내용 자체에 대해 현역/군필 남성을 중심으로 강한 반발이 터져 나오는 것도 이해가 됐다. 

편지 내용이 부적절함에 대해서는 충분히 비판이 제기될 수 있겠지만, 아직 미성년자에 지나지 않는 학생에 대한 힐난치고는 다소 과격한 기류까지 감지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격앙된 반응은, '군'과 '남성'을 축으로 하는 집합의식의 위기감, 아니 분노가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현실을 시사하는 것만 같다.

그들은 왜 '200만 원'에 환호하는가 

문득, 최근 국민의힘의 윤석열 대통령 후보가 '여성가족부 폐지', '병사 봉급 200만원' 등의 단문을 페이스북 계정에 게시하여 지지율 반등을 꾀했던 행보가 생각났다(관련 기사: 윤석열 '병사 봉급 200만 원', 하사보다 많다?... 사실).

내가 2년간의 현역복무를 마치고 중위 계급으로 전역했던 2019년 2월, 내 계좌에는 봉급으로 세후 182만5000원이 입금되었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지급된, 참으로 감사한 봉급이지만,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200만 원'에는 못 미치는 금액이다. '봉급이 터무니없이 적다'는 것을 '전역사유'로 적어서 해병대사령부에 제출한 동기가 떠오른다.

병사 봉급 200만 원의 시대가 도래하면, 병사보다 낮은 봉급을 받고서 복무할 간부는 거의 없을 것이다. 결국 병사 봉급 200만 원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부사관과 장교단의 봉급 체계에 대해서도 재검토를 해야 할 텐데, 재원 마련이 현실적으로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윤 후보의 이 단문 공약이 실현가능성과 구체적 설계가 매우 불투명한 공약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많은 누리꾼들은 '강제징병'되어 '착취'받아 온 청년들이 드디어 '제대로 된 대우'를 받게 되었다며 환호한다.

나는 윤 후보의 병사 봉급 200만 원 공약보다도, 이 공약에 기뻐하는 누리꾼들의 반응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우리에게, '군대', 그리고 그곳에 속한 '군인'은 과연 무엇이었으며 앞으로 무엇이 되어야 하나.

모 여고 위문편지에 대한 분노, 병사 봉급 200만 원 공약에 대한 환영, 이 반응들이 가리키는 곳은 하나다. 그것은 바로, 남성에게 부과되는 국방의 의무이다. 한국 남성은 신체적/정신적으로 심각한 결격사유가 없거나 대체복무를 수행할 자격이 되지 않는 한, 현역 군인으로 입대하게 된다.

과거에는 이 의무 이행을 애국주의적/가부장주의적 수사로 포장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소위 '인권감수성'은 신장되었고 개인의 권리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 인민군의 토치카로 돌격해 자폭했다는 '육탄10용사'의 미담으로부터, 오늘날의 젊은 장병들은 오히려 위화감을 느낀다. 그들의 삶에서 가장 빛날 청춘의 순간에 강제적으로 '동원'되었다는 박탈감은 그 어떤 정신전력교육으로도 완전히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된 것만으로도 속이 상한데, 심지어 그 노고를 알아주는 지도자도 없는 것만 같다. 거기에, 자신들이 군에 동원되어 겪고 있는 고난이,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 희화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군 복무 중인 장병들은, 그리고 한때 장병이었던 군필자들은 여기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분노한다. 그 분노의 지점을, '여성가족부 폐지'와 '병사 봉급 200만 원' 공약이 파고 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기는 이미 도래했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마땅히 받아야 할(혹은 그렇게 생각되는) 대우를 군인들이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있는 것이다. 조금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모 여고 위문편지 사건이나 특정 대선 후보의 공약 등은 그 현실을 반영하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군인에 대한 대우 문제를 성찰하지 않는 한, '군대'가 '젠더갈등'이나 '대중영합주의'의 기폭제로 작용할 위험은 계속 남아있을 것이다. 

어떤 후보가 당선되든, 당장 징병제 폐지 등을 실현시킬 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성 대상 징병제로 군대가 유지되고 있는 현실 위에서 논의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지금 군대에 있는 시민', '군대에 이미 다녀왔으며 유사시에 다시 동원될 시민', '앞으로 군대에 가야 할 시민'에 대해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 그들의 희생이 사실상 강요되고 있음을 현실로써 인정해야 한다. 그 희생에 대해 사회는 어떤 방식으로 존경 혹은 존중을 표할 것인지, 더 나아가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병사들은 심리적/물질적으로 아무런 효용감이 없는 일방적 희생에 회의감을 느끼고, 부사관 및 장교후보생의 지원율은 곳곳에서 미달되고 있다. 이미 우리 군은 위기로 치닫고 있다. 이 위기는 최신예 무기체계를 구입하거나 개발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동원 대상자들의 문제제기를 외면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이미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서로마 제국은 광활한 영토와 자원을 보유하고도 자국민으로 군대를 보충하지 못해 붕괴되었다. 명나라의 최전선 산해관은 결코 외부의 공격으로 열린 것이 아니었다. 사회적으로 냉대받던 제국 일본의 군인들은 결국 통수권 확립을 명분으로 문민정부를 무력화시키기까지 했다.    

위기가 더욱 심화된다면 위의 사례들이 다시 반복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불만에 대한 무시가 아니라 경청이다. 시민사회 안에서 '희생의 실체'를 인정하고 대화가 이루어져 구체적인 정책으로 도출되기를 희망한다. 과거에 비해 향상된 처우를 들어 군 복무의 무게를 외면하거나, 희생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폄하하는 것은 지금의 갈등을 더욱 증폭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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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전쟁체험에 관한 연구에 정진하고 있는 오사카 거주 유학생입니다. 한일친선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편견과 혐오 너머로 새로운 지면을 여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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