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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희(都允熙) 작가 개인전 '베를린(Berlin)'이 갤러리현대(종로구 삼청동 14)에서 2월 27일까지 열린다. 최근 6년간 제작된 40여 점이 소개된다. 그녀는 40년간 시적인 회화작업을 해왔다. 2007년 아시아 작가로는 최초로 아트바젤 설립자이자 이름난 화상인 에른스트 바이엘러가 세운 스위스 '갤러리 바이엘러(Galerie Beyeler)'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작가는 2012년 베를린에 스튜디오를 마련하고 10년간 작업해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은연중 강렬한 감정적 주관성을 특징으로 하는 독일의 '신표현주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사실 20세기 후반부터 세계미술은 회화보다는 개념미술 쪽으로 갔다. 그런데 독일은 유난히 회화를 파고들었다. 그래서 '신라이프치히' 화풍이 일어났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20세기 회화의 거장 '바젤리츠, 리히터, 키퍼, 임멘도르프, 펭크, 폴케' 등이 다 독일 출신이다.

베를린, 잉여 없는 도시
 
베를린 '구 박물관(Alte Museum Berlin)'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1999년 지정). 베를린 관광 1번지다.
 베를린 "구 박물관(Alte Museum Berlin)"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1999년 지정). 베를린 관광 1번지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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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도윤희 작가는 왜 베를린으로 갔을까? 그녀는 자신이 고여있는 것 같아 한 곳에 못 있겠다고 생각했단다. 작가 말에 의하면 뉴욕, 파리, 아프리카 사막과 티베트 오지도 가봤지만, 베를린이야말로 누구도 간섭 안 하고 부담 안 주고, 편하게 해 주고 마음을 알아주는 도시였단다. 자신을 재발견하게 만드는 이 도시에 와서 자의식이 강해졌는지 내적 감정이 폭발하는 화풍을 보인다.

베를린에 대해 작가는 '잉여 없는 도시'라 한다. 과한 것도 모자란 것도 없는, 과잉친절, 불필요한 간섭이 없단다. 그녀가 처음 이주했을 때는 작업실 임대료도 저렴했다. 지금은 많이 올랐지만 이사를 가지 않는 한 월세를 올릴 수 없는 게 독일식 세입자 보호법이다. 하긴 독일은 세계에서 문화 예산을 가장 많이 쓰는 나라 아닌가. 그러니 다양한 국적의 예술가들이 여기 모일 수밖에 없다.

작가는 또 "베를린은 그냥 베를린"이라고 말한다. 런던, 파리처럼 관광지 아니고 그냥 먹고 쉬어 가며 즐기는 노마드 도시란다. 2017년 '카셀 도쿠멘타' 취재 갔다가 잠시 머문 이곳은 내게도 춤과 축제의 도시였다. 작가의 베를린 작업에 리듬감이 넘치는 이유일 것이다.
 
베를린 "박물관섬(Museumsinsel Berlin)"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1999년 지정) 뒤 야외 카페
 베를린 "박물관섬(Museumsinsel Berlin)"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1999년 지정) 뒤 야외 카페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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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입에서 "베를린은 물가는 엄청 싸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독일 정부는 서민이 기본 생계에서 부담을 줄이려 빵값·우유값 등에는 정부 보조금이 나온다고. 여기 자료를 보니 베를린 시내버스, 한쪽 면에 붙은 문구도 흥미롭다. "이 세상에 지각하려는 사람은 없다!"고. 시민들에게 심적 억압을 덜어주려는 발상이다. 또 "우리는 당신을 사랑하니까!"도 적혀 있다고. 당신이 난민이든 동성애자든 우리는 전혀 차별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다. 도윤희 작가의 말대도 이곳은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도시 같다.

예술, 감각의 총집합체
 
도윤희 I '무제(Untitled)' 캔버스에 유채 250×195cm 2021
 도윤희 I "무제(Untitled)" 캔버스에 유채 250×195cm 2021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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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부터 작가의 작품세계로 들어가 보자. '질 들뢰즈(G. Deleuze)'는 "예술은 감각적 집합체를 창조하는 것"이라 했는데 오감이 총동원되는 예술 그녀도 동의하리라. 작가는 내면에 이는 모든 감각을 '기호화'하려 했다고, 거기에 은유를 더하면 추상화가 된다고 말한다.

회화작가로서 색은 그녀에게 유령처럼 매혹적인 것이다. 게다가 현대회화에서 빠지면 안 되는 사운드도 놓치지 않는다. 이에 관해 물으니, 음과 음이 부딪칠 때처럼, 색과 색이 충돌할 때 나는 소리가 그림에서 중요한 요소가 된단다. 감정과 생각이 물감 덩어리가 되는 순간에 몸이 개입하면 화면의 모든 요소가 에너지로 발화하여 화산처럼 폭발한단다.

작가는 베를린 이후 '쓴다'는 문학적 감수성을 버리고 '그린다'는 시각예술의 본질로만 돌아섰다. 그 결과 이번 작품에는 제목 없이 '무제'다. 회화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인데 어설피 제목을 붙인다면 언어에 갇힌단다. 회화의 원류에 충실하겠다는 의연함을 보인다.

동시에 선과 색과 물감 등의 맞부딪치는 효과를 선호한다고 할까. 이를테면 표면은 얇아지고, 층은 두꺼워지고, 물감은 둔탁해지고, 선은 민첩해지고, 명암은 뚜렷해지고, 색은 강렬해지고, 기운은 은밀해진다. 그런 상반되는 요소가 상호충돌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낸다.

숨겨진 내면세계 반영
 
도윤희 I '무제(Untitled)' 캔버스에 유채 250×195cm 2021
 도윤희 I "무제(Untitled)" 캔버스에 유채 250×195cm 2021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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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나의 작업은, 현상의 배후에 숨겨져 있는 미를 찾아내는 일이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색채, 밤이 되어서야 드러나는 세계의 이면을 그린다"라고 말한다. 위 작품을 보면, 그런 작가 내면의 섬세한 풍경이 그대로 반영된 것 같다. 일상의 겪는 예상치 못하는 사연과 상처가 클수록 오히려 더 찬란하고 화려한 장면이 연출된다.

여기 베를린에 와서 하늘을 날 듯 더 자유로운 영혼이 된 것인가? 그동안 못다 한 열정의 폭포수를 거침없이 쏟아내듯 그렇게 작가 자신의 역량을 한껏 발휘하고 있다. 갑자기 "화가의 몸은 캔버스 앞에서 신성한 춤을 춘다"라는 시인 폴 발레리 말이 떠오른다.

작품을 가까이 보니, 레이어 층이 수북하게 쌓였고 세심한 손길이 많아 갔다. 아름다움에는 즐거움이 따르나, 거기에 공포와 긴장감이 더해지면 오히려 안도감으로 바뀌면서 더 큰 환희(delight)를 맛보게 된다고 보는 이가 있다. 그가 바로 18세기 아일랜드의 저술가 에드먼트 버크(E. Burke)다. 그는 이걸 '숭고미'라는 불렸는데 그녀도 그런 효과를 원했던 것 같다.

'저녁의 나라', 멜랑콜리 즐기다
 
도윤희 I '무제(Untitled)' 캔버스에 유채, 162×130.5cm 2018~2021
 도윤희 I "무제(Untitled)" 캔버스에 유채, 162×130.5cm 2018~2021
ⓒ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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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르는 멜랑콜리를 창작의 동력으로 삼았는데 작가도 그런 면이 보인다. 베를린에서 하루 작업 후 트램을 타고 귀가 중, 창에 드리운 사람들 표정의 무거움이 오히려 그녀 마음을 편하게 해줬단다. 여긴 겨울이 오면 2~3시만 돼도 깜깜해진단다. '저녁(Abend)의 나라'에 온 것이다. 그녀는 이런 우울을 오히려 축제로 즐기면서 작업을 한 것 같다.

위를 보니 죽음의 강박과 삶의 환희를 동시에 그린 표현주의 원조 뭉크의 검보랏빛 색조가 연상된다. 정형화되지 않는 형태와 농밀한 색으로 삶의 충동(에로스)과 죽음 충동(타나토스)을 뒤섞어 그린 것인가. 예술은 원래 순간의 덧없음(空)에서 영원한 미(色)를 찾는다. 대승불교에서도 '공즉시색(空卽是色)',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고 하지 않았나.

3년간 그린 위 작품에는 아예 캔버스에 구멍이 나 있다. 얼마나 문지르고 매만졌으면 지문이 다 없어졌겠나. 캔버스 앞에서 자신과 치열한 전쟁을 치르듯 손과 붓, 유리병 활용, 망치질도 마다하지 않았단다. 원초적 수단인 손을 활용해 캔버스의 물성과 작가의 육체성을 결합하는 와중에 부지불식간에 자신과 세상과도 화해하게 되는 체험도 겪었단다.
 
도윤희 I '무제(Untitled)' 캔버스에 유채 30×200cm 2021. 작품 설명하는 작가
 도윤희 I "무제(Untitled)" 캔버스에 유채 30×200cm 2021. 작품 설명하는 작가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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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1961년 서울 태생, 한국풍경화의 거장 도상봉 화백의 손녀. 성신여대 서양화과 학사·석사 마쳤다. 1992년부터 2년간 시카고 일리노이대에서 강의했다. 85년 이후, 갤러리바이엘러(바젤), 갤러리현대, 아르테미시아갤러리(시카고)에서 개인전을 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아트선재, 세계은행(워싱턴), 필립 모리스(뉴욕)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덧붙이는 글 | https://www.galleryhyundai.com/story/view/20000000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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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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