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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하교하고 있는 모습.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서울 시내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하교하고 있는 모습.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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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라지만, 지금만큼은 교사이기 이전에 학부모로서 대한민국 교사들을 향해 쓴소리 한마디 건네야겠다. 나 아니라도 교사에 대한 험담이 '국민 스포츠'가 된 건 이미 오래다. 제 얼굴에 침 뱉는 격이라는 걸 모르지 않을뿐더러 교사들의 사기를 더욱 떨어뜨리게 되지나 않을지 두렵기는 해도 아닌 건 아닌 거다. 

부디 이 글이 동료 교사의 등에 비수를 꽂는 비열한 행태라거나, 너나 잘하라는 식의 비아냥거림으로 결말지어지지 않길 바란다. 동료 교사에겐 섣부른 비난이 아닌 건설적인 비판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나아가 학부모들에겐 교직 사회에 대한 맹목적인 혐오를 거두어들이는 기회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전제해둘 게 있다. 모든 교사가 다 그렇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어떤 조직이든 그럴 리도 없으려니와 그럴 수도 없다. 교직 사회 안에서도 성인군자와 같은 존경받는 교사가 있는가 하면, 아이들에 대한 애정은커녕 관심조차 없는 '직장인들'도 허다하다. 교사로서 소명 의식 없이 교단에 서는 건 아이들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는 건 모두가 공감하리라 믿는다.

무기력한 교사들의 탄생

솔직히 학교마다 아이들을 당신의 자녀처럼 사랑하는 헌신적인 교사가 있지만, 그들은 소수이거나 많다 해도 발언권이 약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늘 이상적이라 치부되기 일쑤고, '튀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져 따돌림당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 또한 학교만이 지닌 문제는 아닐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교사들의 무기력이 임계점을 넘어선 것 같다. 교총은 교장들의 이익단체라는 조롱을 받고 있고, 참교육을 외쳐온 전교조도 그 취지가 무색해졌다며 손가락질받는 처지가 됐다. 두 단체 모두 20~30대는커녕 40대 교사조차 소수일 정도로 고령화되어 존립의 기반이 위태로운 지경이다. 언제부턴가 교총과 전교조 소속임을 당당하게 밝히는 교사가 드물다.

흔히 사교육의 이른바 '1타 강사'들과 비교하며 '실력 없는' 교사라고 낙인찍곤 하지만, 번지수가 틀린 지적이다. 그 실력이 교사의 자질과 역량을 제대로 반영하는지를 묻는다면 모를까, 임용 시험에서 수십 대 일이라는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교단에 선 이들을 실력이 없다고 말하긴 곤란하다. 더욱이 학교는 학원이 아니다. 

신분이 보장된 '철밥통'이어서 무기력해졌다는 것 역시나 그릇된 주장이다. 그것이 교직에 대한 매력일 수는 있으나 전부라고 할 순 없다. 교사가 된 이들 중엔 어릴 적부터 교사를 꿈꿔왔다고 말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주위의 동료 교사 중에도 학창 시절 교사 이외의 다른 직업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아이들이 좋고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아서 교직을 꿈꿔온 이들이기에 교단에 처음 섰을 때 너무나 설레고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했던 거다. 임용 시험 합격 통지서를 여론이 비아냥거리는 것처럼 '철밥통 인증서'로 여긴 초임 교사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교사라면 누구나 초임 시절은 아이들을 위해 인생을 걸겠다고 할 만큼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다. 

그렇듯 실력과 열정을 겸비했던 이 땅의 교사들이 어쩌다 이토록 주눅이 들었을까. 요즘엔 초임 시절부터 일찌감치 관행에 길들어져 기꺼이 낡은 조직의 톱니바퀴가 되길 마다하지 않는 '닳아진' 교사들이 적잖이 눈에 띈다. 불합리한 제도와 비민주적 문화를 문제 삼기보다 그것들을 전통으로 눙치며 안주하려는 경향이 해가 갈수록 두드러지는 모양새다. 

'장강의 윗물이 되어 아랫물을 밀어내듯' 그들이 학교의 낡은 관행을 혁파하는 마중물이 되어야 하는데, 되레 선배 교사들에게 지도편달을 부탁하며 납작 엎드린다. 그렇게 기존의 조직 문화를 체득하고 답습하며, 시대의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장강의 아랫물'이 된다. '장강의 아랫물을 윗물이 밀어내지 못하는' 곳이라면 이미 죽은 학교다.

그런가 하면, 초임 시절부터 '독립군'으로 살아가는 교사도 적지 않다. 동료 교사와의 교류가 거의 없고, 할당된 수업과 업무만 하는 이른바 '1/n 교사'다. 회의에 참석은 하지만 일절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어떤 사안이든 다수결에 따르겠다며 발을 뺀다. 침묵과 방관 속에 낡은 관행에 대한 문제의식이 싹틀 리 없다. 소금이 되어야 할 청년 교사들마저 '짠맛'을 잃었다.

학교는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곳이라 했건만, 실천은커녕 가르칠 깜냥조차 못 되는 상황이다. 아이들로부터 교사는 입으로만 떠들 뿐 행동은 정반대라는 조롱까지 듣는 지경이 됐다. 학부모들조차 교사들을 향해 '바닷게의 우화'를 빗대어 손가락질하고 있다. 자기는 옆으로 가면서 왜 아이들에게만 앞으로 가라고 하느냐는 거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신뢰를 상실한 교사는 아이들에게 그저 '꼰대'일 뿐이다. 교사가 아이들을 감화시키거나 설득하지 못하면 강압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낡은 학칙에 기댄 강제력이 동원되면 결국 아이들은 지시를 따르는 시늉만 하고, 교사는 아이들의 자발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묵인한다. 학교에서 교육의 이름으로 '반교육'이 버젓이 행해지는 것이다.

아이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그들이 기꺼이 수긍하지 못하는 학칙은 실상 휴짓조각에 불과한 데도 마치 헌법이라도 되는 양 주상 같은 권위를 내세운다. '악법도 법'이라는 식으로 아이들을 을러대는 교사도 드물지 않다. 학교엔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명령과 복종이라는 위계질서만 존재하고, 그것조차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교사들의 무기력은 학교를 시나브로 병영화했고, 아이들의 신뢰를 잃은 학교는 '반교육'이 횡행하는 곳으로 전락했다. 이제는 상당수의 교사가 자신의 생활지도가 부지불식간의 폭력이라는 점조차 깨닫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대학 입시는 '반교육'을 강화하는 또 하나의 기제일 뿐, 그것이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건 게으른 교사의 책임 회피다. 

교사들의 집단적 '생각 없음'

굳이 변명 삼아 원인을 짚어보려 한다. 교사들의 광범위하고 집단적인 무기력은 바로 상명하복의 관료주의적 문화와 그것을 지탱하는 획일적인 지침에 기인한다는 생각이다. 여전히 수평적인 교류보다 수직적인 권위에 익숙한 곳이 학교다. 아이들 앞에서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강하고,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수업이 아니라 공문 처리라는 푸념도 들린다. 

상급 기관의 공문에 따라 움직이는 교사에게 수업에서의 자율성도 흰소리다. 수업과 평가는 물론, 아이들과 만나는 일상에도 온갖 지침이 작동한다. 이런 것조차 규제하나 싶을 만큼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매뉴얼'에 담아 교사의 자발적 교육을 방해한다. 교직 사회에 팽배한 상명하복의 문화가 아이들에게 전이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매뉴얼'의 힘은 막강하다. 일례로, 교사가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마음대로 기록할 수도 없다. 생활기록부조차 기재 요령이 하달되기 때문이다. 항목별로 글자 수를 초과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공란으로 있어도 안 된다. 지역의 이름을 명시하거나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가도 안 된다. 심지어 문장이 항상 명사형 어미로 끝내야 한다는 규정까지 제시돼 있다. 

'매뉴얼'은 학교 밖에서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 소풍이나 수학여행처럼 아이들과 함께하는 단체활동에 있어서는 자칫 민형사상 처벌까지 감수해야 할 만큼 위협적이다. 물론, 단체활동 중 아무런 일이 없었다면 관련 '매뉴얼'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넘어가지만, 만약 사고가 났다면 그것은 인솔 교사의 책임을 묻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책임질 일도 없다.' 교사들 사이에 널리 회자되는 교육활동의 불문율이다. 무슨 일이 됐든 교사들이 아이들과 함께 교문 밖으로 나서길 꺼리는 이유다. 승진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몰라도, 자발적으로 다양한 교육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일은 거의 없다. 본연의 수업조차도 '정량'만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뜬금없이 교사들의 집단적 무기력을 문제 삼은 이유가 있다. 얼마 전 서울의 한 여자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조롱 섞인 위문 편지' 소식을 접하고서다. 장병들을 조롱한 해당 학생의 '생각 없음'을 두둔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그의 되바라진 행태가 해당 학교의 교장을 비롯한 교사들의 집단적 '생각 없음'이 교육으로 전이된 결과라고 한다면 억측일까. 

안 봐도 비디오다. 학교는 관행적으로 학생들의 위문 편지를 독려했고, 봉사활동 시간이 부여된다는 당근이 적시됐고, 담임교사는 걷어서 '매뉴얼'에 따라 보냈다가 사달이 난 것이다. 정작 서글픈 건, 이 과정에서 이 '관행' 자체를 문제 삼아 제지하는 교사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교사의 '생각 없음'은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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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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