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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러분의 삶에 가장 필요한 '정책'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 있나요? 앞으로 5년간 우리 삶을 좌우할 20대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국민이 어떤 공약을 원하는지, 지금 각 분야엔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대신 전달하려고 합니다.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도 환영합니다. '2022 대선 정책오픈마켓', 지금부터 영업을 시작하겠습니다.[편집자말]
솔직히 요즘 대통령 선거 관련 소식을 살피자면 나에겐 '공해'로 느껴진다. 군가산점제가 부활하고 여성가족부를 폐지한다는 정책을 보고 있자면 이제는 그에 맞서 싸우겠다는 생각보단 그저 나 자신의 평온만을 지킬 방법을 궁리하게 된다. 나는 너무 지쳐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무력한 상황에 맞닥뜨릴 때마다 내 고등학교 시절을 돌이켜 보게 된다. 현실이 힘들다면 희망찬 기억을 연료처럼 주입해야 한다.

한국 고등학교에서 '페미니즘' 배웠습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혁신학교로 2010년 3월 첫 입학생을 받았다. 교훈 없이 '참여와 소통을 통한 희망과 신뢰의 배움공동체'라는 기본 방향 아래 학생과 교사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학교였다.

교과수업에서 내신이나 수능은 중요치 않았다. 앎과 삶의 일치가 중요했다. 우리가 교실 안에서 배운 것과 교실 바깥 사회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끊임없이 의견을 나누고 '공론장'을 만드는 연습을 했다.

공론장은 민주주의를 향하는 과정과 연결되어 있고, 이 과정에서 인권감수성은 자연스럽게 길러졌다. 당연히 페미니즘 교육도 포함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학교에서 내가 경험한 '페미니즘 수업'이란 이렇다. 고전문학 시간에 여성 서사를 가진 작품을 읽는다. 허난설헌의 규원가, 홍계월전, 운영전, 시집살이요 같은 작품들이다. 이를 통해 당대 여성의 삶이 현대사회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고 모둠별로 토론하는 것이 수업 방식이었다.
 
수업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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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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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계월전'은 남장을 한 여성 영웅의 일대를 다룬 조선 후기 소설이다. 계월은 전쟁터에서 큰 공을 세웠고, 여자임이 들통난 후에도 높은 벼슬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계월을 질투하는 남성들의 갖은 모략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켜냈다는 결말이다.

반면 허난설헌의 '규원가(閨怨歌)'는 남편의 외도에도 얌전히 집을 지키고 있을 수밖에 없는 여성의 한이 담겨 있다.

'홍계월전'은 허구의 소설이고, '규원가'는 조선 시대의 예술가 허난설헌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쓴 것이다. 비슷한 시기 지어진 이 두 작품은 어떻게 다른가? 홍계월전은 왜 작자미상일까? 혹시 여성영웅이라는 급진적인 내용 때문에 작가가 신원을 숨긴 것 아닐까? 마치 계월이 이름과 성별을 속였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여성 문제를 배웠다.

문학 선생님은 페미니즘의 'ㅍ'자도 꺼내지 않았지만, 교실은 자연스럽게 여성 인권에 관해 이야기하는 공론장으로 변모했다. 성차별주의자들이 흔히 상상하는 페미니즘 수업은 '못생긴 노처녀 교사가 과격한 사상을 주입하는 모습'이던데, 그건 홍계월전보다 더한 허구의 소설이라 생각된다.

오히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교사가 아니라 한 친구의 입에서 처음 나왔다. "나는 페미니스트야. 엠마 왓슨 UN 연설 같이 보자"며 스크린에 영상을 띄웠을 때다. 영화배우 엠마 왓슨이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소개하며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내가 아니라면 누가?(If not now, When? If not me, Who?)" 이 일을 할 수 있겠는지, 여성과 남성 모두의 행동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엠마 왓슨이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유엔의 성평등 캠페인 '히포쉬(HeForShe)'의 친선대사로서 연설하는 장면
 엠마 왓슨이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유엔의 성평등 캠페인 "히포쉬(HeForShe)"의 친선대사로서 연설하는 장면
ⓒ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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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두가 '좋은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정책을 원한다

사회적 약자는 철저히 배제하고 20대 남성의 지지를 얻기 위해 혈안이 된 일부 대선 후보들의 교육정책을 보면, '입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공정한 입시를 만들겠다고 외치면서 "공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놓치고 있는 셈이다.

기존과 다른 방향의 공교육 정책이 필요하다. 모두가 돈 잘 버는 직업을 갖도록 교육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좋은 시민'으로 성장하게끔 만드는 건 가능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 민주적으로 소통하는 방법,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 필요한 능력이라면 학생 한 사람도 배제하지 않고 배울 수 있다.

물론 현실은 페미니즘 교육은커녕 조금이라도 여성 인권을 입에 올렸다간 신상이 털리고 위협받는다. 그저 오늘보다 더 퇴보하는 내일만 오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러나 그 시절을 함께한 친구들과 선생님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안부를 전해 들으면 나도 다시 힘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우리 학교에서 근무하던 선생님들은 근무지를 옮긴 후에도 교과수업을 통해 인권감수성을 기를 수 있도록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한 영어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존경하는 여성 인물 발표하기'를 수행평가 과제로 내준다. 이 선생님의 수업에는 성소수자, 장애인, 노동자 등 사회적 소수자 이슈를 탐구하고 토론하는 시간도 있다고 한다.

또 졸업생들도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한 선배는 경력단절여성을 돕는 사업을 시작했고, 2학년 때 우리 반 반장을 했던 친구는 국제구호단체에서 일한다. 나처럼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여러 사회문제에 대한 의견을 쓰는 사람들도 있다.

학교에 입학하던 당시 누군가 내게 "너는 고등학교 3년은 행복하겠지만 30년은 불행하게 살 것"이란 말을 했었다.

그 말처럼 행복한 3년을 보냈다. 이와 같은 환경에서 성장한 것은 더없이 큰 행운이었다. 그래서 앞으로의 30년은 불행할까? 글쎄, 이제 막 5년이 흘렀을 뿐이라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불행한 30년을 살더라도 견디고 나아갈 힘을 길렀다.

대통령이 누가 되든, 어떤 불행한 세상이 도래하든 우리가 배운 가치를 잃지 않고  살아내겠다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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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는 우리가 특별히 만나야 할 어떤 인물, 어떤 계층이 아니다. 그는 기준에 벗어나는 모든 순간을 만들어내는 우리 자신이다." _진은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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