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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참여사회 2022.1-2 특집 '메타버스의 물음들'
 월간참여사회 2022.1-2 특집 "메타버스의 물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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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 초월과 물질계 탈출, 가상공간

인간 역사에서 '가상공간(virtual space)에 대한 욕망은 꽤 오래됐다. 물리적 세계의 한계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것, 즉 물질을 초월(physical transcendence)하고자 하는 것은 이미 태고 때부터 시작된 인간의 열망이라 할 수 있다. 물질 초월은 바로 육체의 감옥에서 의식과 정신을 자유롭게 하려는 인간 욕망으로 줄곧 작용했다. 

무거운 살덩이의 무게를 벗어나 훨훨 자유롭게 공간을 이동하고자 하는 인간의 육체 초월에 대한 열망은 늘 깊게 자리해왔다. 육체 초월의 시도는 동력 기술을 통한 기동성에서 일차적으로 구현됐다. 먼저 인간은 동력 장치가 달린 기차, 배, 자동차, 비행기 등을 개발하여 지리적 경계를 넘고자 했다. 이러한 운송 장치를 이용한 기동성은 아직까지도 신체의 속박을 전제한다. 

신체 초월의 욕망과 더불어, 현실의 무질서와 위태로움, 그리고 채워지지 않는 물질의 부족함 또한 인간에게 새로운 가상의 이상향을 끊임없이 추구하게 했다. 현실은 인간을 짓누르는 짐이었고, 지금도 그렇게 적대화 된다. 그렇게 인간이 딛고 있는 현실의 실존을 부정하고픈 욕망은 인간 자신에게 '마찰없는(friction-free)' 미래 유토피아에 대한 갈증을 항시 유발했다. 육체와 물질 초월의 인간 욕망은 결국 주어진 삶의 현실과 등을 지게 만들었다. 플라톤이 구상한 이데아의 세계처럼 가장 이상적인 가상세계에 안주하려는 인간 욕망을 들끓게 했다. 

후대 인간이 창조한 온라인 가상공간은 현실 공간이 주는 한계와 부족함에 대한 기술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인간 신체가 주는 속박 그리고 현실세계가 주는 불평등의 조건 모두가 이 디지털 가상공간으로의 '엑소더스(exodus, 대탈출)'를 부추겼다. 정보 네트워크 공간의 탄생은 물질과 신체의 속박과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해방의 기술 신천지와 같았다.
 
인간이 창조한 온라인 가상공간은 현실 공간이 주는 한계와 부족함에 대한 기술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창조한 온라인 가상공간은 현실 공간이 주는 한계와 부족함에 대한 기술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 Martin Sanch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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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공간에서 메타버스로

디지털과 인터넷 기술이 발명되면서 가상세계의 인류 구상은 더 분명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은 현실의 존재론적 조건이 주는 한계와 부족함을 초월할 수 있는 마치 최적의 기술 실제와 같았다. 그렇게 90년대에 인터넷이 기술 현실이 되었다면, '사이버공간(cyberspace)'은 인간의 초월 욕망이 투사된 새로운 가상세계 개념으로 대중화했다. '사이버공간'이라는 용어는 1984년 출간된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의 SF 소설 <뉴로맨서 Neuromancer>를 통해 당시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인터넷과 가상공간의 대중화 이래 30여 년의 세월이 지나, 이번에는 '메타버스(metaverse)'가 등장했다. 이는 과거 사이버공간의 이상향을 대신하면서, 그때와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기술 질서를 상징하는 강력한 용어가 되고 있다. 메타버스는 '초월(meta)'과 '세계(univerce)'가 합쳐진 말로 3차원 가상세계를 뜻한다. 사이버공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은유의 개념처럼 보이지만, 전통의 물질 초월에다 더 강고해진 자본의 시장 욕망이 어우러져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깊어진 자본주의의 구상을 반영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충격이 비대면 소통 현실을 강요하면서, 메타버스 논의의 강렬도 또한 더욱 커지고 있다.

메타버스 개념은 사이버펑크➊ 작가 닐 스티븐슨(Neal Stevenson)의 1992년 소설 <스노 크래시 Snow Crash>에서 처음 소개됐다. 이는 고글과 이어폰 등 시청각 출력장치에 연결된, 마치 실재하는 시뮬레이션 세계로 묘사된다. 여기까진 명칭만 달리할 뿐 사이버공간의 유래나 특징과 흡사해 보인다. 하지만, 잘 따져보면 이전의 가상세계와 메타버스 사이에 내적 차이가 존재한다. 가령, 90년대 사이버공간은 물질계의 논리를 디지털계로 확장하려는 인간 욕망에 가까웠다. 당시 중심축은 현실 물질 논리였다. 오늘날 메타버스를 보면, 물질과 디지털 논리는 서로 혼합되고 뒤섞인다. 때론 뒤집힌다. 자주 디지털과 가상의 신생 권력 논리가 현실의 그것에 비해 우세하고 압도한다. 

이를테면, 메타버스에 입장하기 위해 누군가는 아바타(avatar), 가상캐릭터를 만든다. 이 아바타는 나를 대신해 가상의 사무실에 출근한다. 가상공간에 출근을 하고 업무를 수행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다른 아바타들과 회의한다. 이렇게 메타버스의 가상 활동은 곧바로 현실세계의 물질적 조건, 즉 경제 활동과 수익, 인간관계, 사회 영향력으로 직결된다. 가상의 활동이 실제 사회의 생산 활동이 되는 것이다.
 
양쪽 눈에 보이는 모습에 약간의 차이를 두면 그림은 입체적으로 보인다. 1초에 그림을 72번씩 바꿔 주면 그림은 실제로 움직이는 효과를 낸다. 움직이는 입체 그림을 가로 2,000픽셀 크기로 보여 주면 사람의 눈이 인식할 수 있는 최대치에 도달한다. 그리고 작은 이어폰을 통해 스테레오 디지털 사운드를 들려주면 움직이는 입체 화면은 완벽히 실제와 같은 배경음을 갖게 된다. 그러니까 히로는 전혀 다른 곳에 존재하는 셈이다. 그는 고글과 이어폰을 통해 컴퓨터가 만들어 낸 전혀 다른 세계에 있다. 이런 가상의 장소를 전문 용어로 '메타버스'라 부른다. 
- 닐 스티븐슨, <스노 크래시 v.1>, 문학세계사, 2021, 38-39.
 
메타버스, 기업 욕망의 신기루 
혹은 온라인 대안 공간?


오늘날 메타버스를 주도하는 주체가 주로 닷컴 빅테크와 문화산업임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메타버스는 가상의 증강 현실 속에서 오락, 쇼핑, 사회, 경제 활동을 생생하게 연결하는 생활문화 공간으로 묘사된다. 메타버스는 신흥 비즈니스가 되고, 가상의 그 어떤 디지털 사물을 모두 실물 자산처럼 사고팔 수 있는 노다지가 된다. 이미 자본주의의 강력한 지적 재산권이 작동함에도, 메타버스 추종자들은 디지털 사물에 화폐 가치를 매겨 분양하거나, 블록체인 암호화폐 기술을 가미해 가상의 아이템에 현물 자산의 지위를 부여하려고 한다.  

물론 메타버스가 지닌 이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혀 다른 인종과 성별의 아바타를 만들고 다중의 정체성을 구성하면서 인간은 타자에 대한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다. 물리적 대면으로 불편했던 관계를 아바타 대리 소통을 통해 새롭게 향상시킬 수도 있다. 무엇보다 메타버스 관련 일자리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메타버스의 사회적 전망이 예전 인터넷 초창기 낭만주의 시절 사이버공간에 비해 한없이 쪼그라드는 데 있다. 메타버스는 소비 없이 도저히 활동이 어려운 상업화된 가상공간으로 축소되고, 개미 투자자들의 관련 '수혜주' 종목들로만 크게 각광받고 있다. 메타버스의 다중 정체성 혼란, 아이템 시장 과잉, 가상자산 투기 과열, 아바타 인권 피해 등이 우려되며 이들 현상이 또 다르게 우리의 실제 삶을 갉아먹을 수 있다. 무엇보다 메타버스의 주된 흐름에 투자자, 빅테크, 아이돌 기획사, 기술 전도사가 주도하는 장밋빛 청사진만 요란하다는 데 우려가 크다. 

안타깝게도 메타버스의 지금까지 모습은 디지털 세속주의의 결정판으로 보인다. 빅테크의 기술 과잉의 전망에 비해, 이 가상공간에는 자유로운 시민들 사이 기술과 인간 호혜의 공동체적 전망을 찾기가 쉽지 않다. 메타버스의 세속화 논리를 그 중심에서부터 무너뜨릴 수 있는 민주적인 기술 감각의 마련이 필요하다. 이는 발 딛고 있는 '리얼한' 현실을 자각하고 상생의 공통감각을 메타버스로 확장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➊ 인공두뇌학을 뜻하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펑크Punk'의 합성어로, 1980년대 이후 등장한 과학 소설의 한 장르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광석 님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교수, 『문화/과학』 편집인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22년 1-2월호에 실렸습니다. 구독문의 02-6712-5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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