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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어-ㅁ벙"

잔잔한 바다에 물 튀는 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주위를 둘러봐도 수영하는 사람 하나 없고 다이빙할 만한 장소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고요한 바다. '잘못 들은 건가?' 그때 또다시, "첨벙". 

하늘을 활강하던 어른 몸집만 한 새가 칼각 90도로 온몸을 바닷속으로 내던진다. 과녁을 향해 돌진하는 화살처럼 새의 부리가 바다를 찌른다. 주인공은 브라운 펠리컨(Brown Pelican).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와 멕시코 본토 사이에 있는 바다, 캘리포니아 만에 서식하는 바닷새다. 펠리컨도 여러 종이 있는데 이렇게 수중 다이빙을 해 물고기를 잡는 종은 브라운 펠리컨이 유일하다.
 
브라운 펠리컨이 나는 모습.
 브라운 펠리컨이 나는 모습.
ⓒ envato el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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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가오리가 하늘 높이 날아서 바다 수면을 양쪽 지느러미로 땅 때렸어요. 어찌나 소리가 크던지. 여기 해변까지 물 튀는 소리가 들렸다니까요."

며칠 일찍 캠핑지에 와 있던 선발대 형님이 말을 보탠다. 

'홍어 같은 물고기가 새처럼 난다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에나 나올 법한 장면 아닌가? 왕년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애청자이자 동물 백과사전을 끼고 살았던 나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이야기다. '그렇게 내가 쉽게 속진 않지!'

나중에 구글링해보기 전까지 말이다. 해당 물고기는 대왕 쥐가오리(Mobula Ray)로 수면 위 1미터 80센티미터까지 뛰어오른다. 짝짓기와 의사소통 혹은 몸에 붙은 기생충을 떼어내기 위해 높이 날아올라 자신의 몸을 바다 위에 패대기친다. 물을 더 많이 튀게 하는 스플래시 다이빙 대회에 출전했다면 당연, 입상 감이다.

서울과 부산 왕복 거리보다 먼 곤자가 캠핑장으로

지난해 11월 말 찾아간 곳은 멕시코 영토인 바하 캘리포니아다. 삼면이 바다인 반도로 서쪽은 태평양, 동쪽은 총 길이 1300킬로미터의 캘리포니아 만이 있다. 우리는 캘리포니아 만 북쪽에 위치한 곤자가 캠핑장(Gonzaga)에서 텐트를 쳤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차로 약 9시간 거리로 새벽 3시에 출발해, 국경선 넘어 길거리 타코를 사 먹은 뒤 곧장 이곳까지 왔다. 거리는 편도 730킬로미터로 서울과 부산 왕복 거리보다 80킬로미터가량 길다.

캠핑장에서 가까운 도시는 샌펠리페(San Felipe)다. 미국 접경 도시인 메히칼리에서도 남쪽으로 20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미국 콜로라도강 하구로 과거 선인장조차 살 수 없던 소금기 있는 늪지대였지만 유입되는 민물이 점차 줄어 현재는 대표적인 항구도시로 자리 잡았다.

캠핑장은 이곳에서도 두 시간이나 더 차를 타고 내려 가야 한다. 주변에는 돌투성이 붉은 민둥산과 마른 식물을 엮어 만든 팔라파 우산만이 텅 빈 해변가에 꽂혀 있다. 이 때문에 멀리 가기 전 샌펠리페에서 차량 기름 탱크를 꽉 채우고 마실 물과 먹을 것을 충분히 사야 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멕시코 바하 캘리포니아 곤자가 캠핑장까지 거리는 약 730킬로미터다. 서울과 부산 왕복 거리보다 길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멕시코 바하 캘리포니아 곤자가 캠핑장까지 거리는 약 730킬로미터다. 서울과 부산 왕복 거리보다 길다.
ⓒ 황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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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 캘리포니아는 전체 면적이 7만 1450제곱킬로미터로 대한민국 영토(10만 제곱킬로미터)의 3분의 2다. 태평양 쪽 관광 도시인 엔세나다와 미국 국경지대이자 주도인 메히칼리, 맥주 브랜드로 잘 알려진 테카테 등 5개 자치구가 있다. 바하 캘리포니아 아래는 또 다른 주인 바하캘리포니아 서(Baja California Sur)가 있다.

미국은 '멕시코 미국 전쟁(1846~1848)'의 승리로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 뉴멕시코 등을 멕시코로부터 1500만 달러에 사들였다. 이를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이라고 부른다. 계약서 초안에 바하 캘리포니아 땅도 포함돼 있었지만 멕시코 본토와 가깝다는 이유로 최종안에서 제외됐다.

이후 1853년에는 미국인 윌리엄 워커(William Walker)가 민병대 50명을 이끌고 이곳을 침공해 로어 캘리포니아 공화국을 만든다. 자신을 대통령에 임명하고 주요 장관들도 뽑았다. 그는 이 땅을 미국에 편입하려고 했지만 미국이 호응하지 않아 결국 도망갔다(이처럼 정부 승인 없이 타국을 상대로 노략질하거나 내전에 개입하는 자를 필리버스터라고 불렀다. 그는 중앙아메리카를 백인 제국으로 만들려고 했던 대표적인 필리버스터였다. 1854년 멕시코 소노라주 침공, 1856년에는 니카라과를 침공했다).

바하 캘리포니아는 멕시코 혁명이 발생한 1910년대에는 혁명군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혁명군이 메히칼리와 티후아나를 점령해 세력을 본토까지 확장해 나갔다.
 
석양이 지고 있다. 지는 해가 구름에 반사돼 분홍색 카펫을 깔아놓은 듯하다.
 석양이 지고 있다. 지는 해가 구름에 반사돼 분홍색 카펫을 깔아놓은 듯하다.
ⓒ 황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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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각기 다른 언어를 쓰는 19개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이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 거의 자취를 감췄다. 200년 동안 치열하게 전투했지만 총, 균, 쇠에 의해 스러졌다. 여기에 가톨릭은 하얀 가면을 쓰고 침투했다.

16세기 초 멕시코 본토 공격을 마무리한 스페인은 금광을 찾기 위해 바하 캘리포니아까지 넘본다.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드 코르테즈가 1532년 함선을 보내 이 지역을 탐사했고 1535년에는 바하 캘리포니아 남쪽 항구인 라파즈(La Paz)를 발견했다. 이 때문에 이곳을 코르테즈 해협(Sea of Cortez)이라고도 부른다.

1596년에는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가 해군을 보내 이곳을 식민지화하라고 명령한다. 1695년에는 성직자 후안 마리아 샐배티에라(Juan Maria Salvatierra)가 처음 스페인 정착촌을 세웠고 2년 뒤에는 성직자들이 가톨릭 미션을 건설한다. 1697년부터 1707년 10년 사이 이 지역에 16개 미션이 만들어진다.

성직자들은 원주민에게 종교를 전파하면서 집단노동을 시켰고 그들을 임금 노동자로 전락시켰다. 공물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천연두와 홍역 등 전염병이 급속도로 퍼졌다. 한 지역 언론은 1742년에서 44년 사이 원주민 8000명이 발진티푸스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어촌 마을에 있는 성모 마리아 상이다. 멕시코를 여행하다 보면 성모마리아 상과 예수 그리스도 제단을 많이 볼 수 있다.
 어촌 마을에 있는 성모 마리아 상이다. 멕시코를 여행하다 보면 성모마리아 상과 예수 그리스도 제단을 많이 볼 수 있다.
ⓒ 황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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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아쿠아리움'이라 불리는 곳

곤자가 캠핑장은 외부 세계와 완전히 차단돼 있다. 뒤로는 키 큰 선인장이 자라는 벌거숭이산, 앞으로는 잔잔한 바다와 붉은 섬이 놓여 있다. 인터넷도 전화도 통하지 않는다. 와이파이를 이용하고 싶다면 캠핑장을 운영하는 상점에 가서 75센트를 주면 포춘쿠키 속 쪽지처럼 작은 종이 적힌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받을 수 있다. 30분 쓸 수 있는데 신호가 약해 카카오톡으로 사진 2장 보내기가 힘들다.

바다에는 큰 배 두 척이 떠 있었다. 하나는 낚싯배, 나머지 하나는 환경단체가 운영하는 고래 구조선이었다. 이곳을 대표하는 해양보호단체는 시 셰퍼드(Sea Shephard)다. 이들은 멸종위기종을 보호하기 위해 불법 어망을 제거한다. 이 과정에서 종종 현지 어부와 충돌한다. 어부들이 화염병과 돌을 던지고 총을 쏘기도 해 활동가들은 방탄조끼와 헬멧을 쓰고 갑판에 나간다.

캘리포니아 만에는 물고기 900종과 해달, 돌고래, 바다사자 등 척추동물 수천 종이 서식한다. 숨 쉬는 해상 동물원이다. 동물도 인간이 익숙하지 않아 던져 놓은 릴낚시대에 새가 잡히는 등 도시 바다와는 전혀 다른 장면을 볼 수 있다. 스쿠버 다이빙 장비를 처음 만들었던 프랑스 탐험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자크이브 쿠스토는 이곳을 '세계의 아쿠아리움'이라고 불렀다.

*다음 기사로 이어집니다. 
 
캘리포니아 만에 위치한 곤자가 캠핑장 전경이다. 인터넷도 전화도 되지 않는 오지 중 오지다.
 캘리포니아 만에 위치한 곤자가 캠핑장 전경이다. 인터넷도 전화도 되지 않는 오지 중 오지다.
ⓒ 황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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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트레블러17(soultraveler17.com) 대표 비영리단체 민족학교 전 미주 중앙일보 기자 전 CJB청주방송 기자 <삶의 어느 순간, 걷기로 결심했다>, <내뜻대로산다> 저자 르포 <벼랑에 선 사람들> 공저 uq2616@gmail.com

LA한인가정상담소에서 가정 폭력 생존자를 돕고 있다. 한국에서는 경기방송에서 기자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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