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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븐숭이4·3기념관 내부
 너븐숭이4·3기념관 내부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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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븐숭이4·3기념관
   
올레19코스는 제주 항일운동의 현장인 조천만세동산에서 시작된다. 장엄하게 서 있는 추모탑과 운동기념탑 뒤쪽 밭길을 걷다보면 해안도로가 나온다. 해안도로는 곧 조천포구 길목에 있는 관곶과 만나게 되고 관곶은 넓은 백사장이 있는 신흥해수욕장까지 연결된다.

신흥리 마을길을 지나면 드디어 함덕서우봉해변에 닿는다. 도심과 가까운 함덕해변은 사계절 내내 관광객들에게 사랑을 받는 곳이다. 곱고 흰 모래사장이 바다 멀리까지 뻗어 있고 에메랄드빛 바다는 서우봉(111.3m)을 감싸면서 먼 바다로 이어진다. 살찐 물소가 뭍으로 기어 올라오는 듯한 모양새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름에 해수욕을 즐겼다면 겨울에는 해변을 등 뒤로 하면서 하이킹하는 것도 좋다. 약간의 오르막길과 숲 사이로 난 길은 2003년부터 2년 동안 동네 이장과 청년들이 낫과 호미로 조성한 길이라고 한다. 그 길을 넘어 해동포구를 지나면 너븐숭이4·3기념관에 도착할 수 있다.
 
서우봉에서 바라본 함평해변
 서우봉에서 바라본 함평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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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도로를 걷다가
 해안도로를 걷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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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븐숭이'는 넓은 바위라는 뜻이다. 넓은 바위가 많은 이곳에서 1949년 1월, 북촌리 마을 인구 1000여 명 중 절반가량인 약 500명이 희생되었다. 남자는 다 죽었고, 어머니를 따라나선 어린아이들이나, 집에 있다 토벌대들이 지른 불에 타 죽은 노인들도 있었다. 현기영의 <순이삼촌>은 조천면 북촌리에 있는 너븐숭이가 공간적 배경인 소설이다.
 
해안도로를 걷다가
 해안도로를 걷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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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숙박업소 주인남자가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려는 의도였는지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다들 아시죠? 이곳에서는 여자든 남자든 나보다 나이든 사람을 삼촌이라고 칭한다는 것을요? 제주도는 '이모'라는 호칭이 없어요. 왜 인줄 아세요?" 주인남자는 웃으면서 사람들의 얼굴을 일별하고는 말을 이어갔다.

"옛날부터 이곳에는 남자가 적었어요. 왜구나 육지 세력들이 남자 공출을 했고 바다에서 목숨을 잃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에요. 하지만 자식을 낳아야 하니까, 한 남자가 몇 여자를 책임져야 하는 일도 있었대요. 그것 때문이라고 알고 있어요.

한 밤중에 누군가가 다녀갔는데 아이가 깨어서 물어요. '엄마 누구예요?' 그러면 남자라고 말하기가 곤란하잖아요. 그래서 남자든 여자든 한 가지 호칭으로 통일해서 거짓말하지 않아도 되는 구실을 만들었다는 거예요. '삼촌'이 다녀갔다고."


듣고 있던 사람들은 '아하'라고 하면서 웃었다. 실은 나도 공감했다. 그 비슷한 문화가 일본 전국시대에서도 있었다고 들었다. 끊임없는 전쟁으로 남자가 줄어들자 한 남자가 여러 여자를 대해야 했던 어느 마을의 문화를 소개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웃음 속에 아픈 역사가 가시처럼 들어앉아있다는 것 또한 잘 안다.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에서는 '삼촌'이라는 호칭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제주에서는 촌수 따지기 어려운 친척 어른을, 남녀 구별 없이 가까이 지내는 사람을 삼촌이라고 부른다고.

소설은 소설 속 화자가 8년 만에 할아버지의 제사에 참여하러 제주도로 오면서 시작된다. 그곳에서 순이 삼촌이 죽었다는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된다. 순이 삼촌은 불과 두 달 전까지 화자의 서울 집에서 식모처럼 밥을 짓고 집을 봐주다가 갑작스럽게 내려 가버린 장본인이기도 했다. 일찍 죽을 만큼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자살했다. 자살의 원인이기도 했던 환청에 오랫동안 시달려왔는데, 그 시작은 1949년의 제주 4·3 때부터였다고 한다.
 
김녕서포구 20코스 시작점
 김녕서포구 20코스 시작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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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농로
 김녕농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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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서 30여 년 전 그 해 음력 섣달 열 여드렛날, 별안간 밖에서 연설을 들으러 나오라는 고함 소리에 동네사람들은 밖으로 나갔다. 보통 때와 달리 군인들이 다니면서 재촉했다. 그들은 군인, 순경 등 공무원 가족과 나머지 사람들을 분리했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때 군중 속에서 별안간 불이 났다는 소리가 들렸다. 마을이 타고 있었던 것이다.

동요하는 마을 사람들을 군인들은 총으로 위협하며 돼지 몰 듯이 한 무리를 시야 밖으로 끌고 나갔다. 곧이어 총소리가 울렸다. 그렇게 차례차례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죽어나갔다. 날이 어두워지자 마을을 태우는 불빛은 사방으로 더욱 퍼졌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교실로 몰려 들어가 밤을 새웠다.

밤중에 크게 놀라는 사건이 두 번 더 이어진다. 첫 번째는 대밭이 타면서 터지는 소리를 총소리로 잘못 안 것이고 두 번째는 죽은 줄만 알았던 순이 삼촌이 살아 돌아와 밖에서 유리창을 두드린 거였다. 삼촌은 총살을 당하기 전에 기절을 해서 목숨을 건졌던 것이다.

하지만 학살 현장에서 두 아이를 잃고 혼자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순이 삼촌은 그 후 경찰만 보면 두려움에 떨게 되었고 나중에는 환청 증세까지 겹치게 되었다. 평생 그날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순이 삼촌은 자식이 둘이나 묻힌 그 옴팡밭에서 사람의 뼈와 탄피 등을 골라내며 30년을 과부로 살아오다가 마침내 그 살육의 현장에서 독약을 마시고 자살을 한 것이다.

화자는 마을 사람들이 30년이 지나도록 그 일을 고발하지 못한 것은 섣불리 말했다가는 빨갱이로 몰릴 것이 두렵기 때문이며, 한 달 전에 자살한 순이 삼촌의 삶은 이미 30여 년 전의 시간 속에서 정지해 버린 유예된 죽음이었다고 말한다.
 
해동포구
 해동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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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는 너븐숭이4·3기념관. 나는 밭 한가운데에 있는 <순이 삼촌> 문학비를 어루만지고는 기념관 앞에 있는 애기 무덤들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 무고한 희생자들. 시간이 지나 무뎌질 때도 되었건만 마음 한구석은 늘 새 생채기처럼 새롭다. 눈치없는 풍광은 눈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검디검은 기름진 밭, 높은 밭담, 그 너머로 매끈한 등을 가진 말이 너무나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수풀 너머로 풍력발전기 날개가 졸리도록 느리게 돌고 있다. 하지만 우거진 '벌러진 동산'으로 들어섰을 때는 몇 년 사이 늘어난 풍력발전기가 회전하면서 내는 소음과 끊임없이 수풀에 그려대는 회전 날개 그림자가 폭력적으로 내 뒤를 따라왔다. 나는 도망치다시피 걸음을 빨리해야했다.

덧붙이는 글 |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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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차노휘는 소설가이다. 2016년부터 도보 여행을 하면서 ‘길 위의 인생’을 실천하고 있다. 2009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얼굴을 보다〉가 당선되었고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소설 창작론 《소설창작 방법론과 실제》, 여행 에세이 《쉼표가 있는 두 도시 이야기》 와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장편소설 《죽음의 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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