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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알마티에서 대국민 TV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범죄자, 살인자와 협상에 나설 수 없다며 "시위를 진압하는 군 등이 경고 없이 발포하는 것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알마티에서 대국민 TV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범죄자, 살인자와 협상에 나설 수 없다며 "시위를 진압하는 군 등이 경고 없이 발포하는 것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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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 가격 인상에 항의해 촉발된 카자흐스탄 유혈 사태가 진정 국면에 들어섰다. 우리와도 특별한 인연이 있는 카자흐스탄 반정부 시위는 일단락 됐지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견고한 성처럼 보이는 권력도 언제든 모래성처럼 허물어진다는 교훈이 첫째다. 또 반정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외국에 군 병력을 요청하고 유혈 강경진압을 나선 정부를 정부라고 부를 수 있는지다.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11일 하원에 출석해 "모든 지역이 안정을 되찾았다. 쿠데타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고 선언했다. 이어 "평화유지군 임무는 성공적으로 완료됐고 이틀 내 철수를 개시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카자흐스탄은 옛 소련 6개국이 참여하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 병력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공수부대 2500명을 파병했고, 시위대는 알마티 시청과 대통령 관저로 몰려가 격렬하게 항의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시위대를 '도둑떼와 테러범'으로 규정하고,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또 사전 경고 없는 발포 명령을 내렸다. 강경 진압으로 164명이 숨지고 8000여 명이 체포됐다. 중국 정부도 카자흐스탄 사태를 외부 세력이 개입한 반정부 시위로 규정하고 개입 의지를 내비쳤다. 시진핑 주석은 "카자흐 정부를 적극 지지하며 정권 교체를 부추기는 외부세력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국민 시위를 진압하는 데 외국 군대를 요청한 토카예프 대통령은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그는 "권력 찬탈을 위해 전문가들(테러단체들)이 반정부 시위를 준비를 했다. 법적 근거를 갖고 평화유지군 파견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외부 테러세력이 어떻게 시위에 개입했는지 밝히지 못했다. 전두환 정권이 5.18 당시 북한군 개입을 주장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결국 시위 진압을 명분 삼은 권력투쟁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는 진압 과정에서 총리를 해임하고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82) 전임 대통령 측근을 체포했다. 소요 사태가 권력투쟁 양상으로 확대되면서 불씨를 남겨놓게 됐다.

카자흐스탄은 우리에겐 특별한 나라다. 10만 고려인 동포들이 살고 있고, 또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홍범도 장군이 잠들어 있던 곳이다. 지난해 8월, 홍범도 장군 유해가 돌아올 때 카자흐스탄에 대해 반짝 관심이 집중됐다. 1937년 스탈린은 연해주 일대 고려인들을 이곳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홍범도 장군도 이때 카자흐스탄으로 왔다. 실크로드 길목에 위치한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가장 잘 나간다. 전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1990~2019년까지 장기집권하면서 국가 발전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양극화와 부정부패가 심화됐다. 현 토카예프(69) 대통령 또한 나자르바예프 보좌관 출신이다.

나자르바예프는 재임 중 자기 동상을 전국에 세우고 개인숭배를 강요하며 독재자 면모를 보였다. 또 퇴임에 대비해 장기집권 길도 닦았다. 면책 특권을 누리면서 국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국가지도자법을 만들고, 헌법을 개정해 후임 대통령 권한을 대폭 축소했다. 최근까지 국가안보회의(NSC) 의장을 맡아 상왕 노릇했다. 부정선거와 야당 탄압도 일삼았다. 99년 재선(81%)을 제외한 모든 선거에서 90%대 득표율을 기록했고, 제1야당을 정부 전복 혐의를 씌워 강제 해산시켰다. 지난 30년 동안 카자흐스탄은 나자르바예프 그늘 아래 있다 해도 과언 아니다. "나자르바예프 늙은이는 물러가라"는 외침은 그 반증이다.

카자흐스탄 반정부 시위는 결국 '물(국민)은 배(권력자 또는 국가)를 띄우기도하지만 뒤엎기도 한다'는 상식을 재확인시켰다. 표면적 이유는 LPG가격 인상이었지만 근본적 원인은 장기 집권에 따른 누적된 불만과 부정부패에서 찾는 게 타당하다. 8일이란 짧은 기간 중 수많은 인명피해와 치안공백, 국가 비상사태까지 선포해야할 만큼 국민들 분노가 거셌다는 건 정치 부재를 의미한다. 민심을 떠난 정권은 언제든 붕괴할 수 있다. 다행히 전국적인 소요사태에도 불구하고 고려인과 한인 사회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또 억류 위기까지 갔던 아시아나 승무원들도 곧 귀국한다는 소식이다.

강병구 알마티 한인회장은 "한인 피해는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았다. 삽시간에 치안공백 상태가 빚어지면서 위기감이 고조됐고, 이 때문에 아시아나 항공기도 발이 묶였다"며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JTBC 보도에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강 회장은 "승무원 안전 확보를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총영사관에서 소홀히 한 것처럼 보도돼 교민 사회가 크게 술렁였다"고 했다. 당일 승무원들을 알마티 시내 특급 호텔로 이송하고 세심하게 살폈다는 것이다. 강 회장은 "이번 반정부 시위는 한인사회 결속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 나아가 민심은 성난 파도와 같다는 교훈을 새삼 실감했다"고 했다.

나자르바예프 29년 집권 동안 카자흐스탄 국민들은 침묵했다. 하지만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았을 뿐 독재정권의 실정을 말없이 카운트다운 했다. 결국 임계점을 넘어서자 일어섰다. 모든 독재정권은 자신들이 국민 지지를 얻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착각이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듯 독단과 독선의 결말은 아름답지 않다. 거리에 나뒹구는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동상은 민심의 무서움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이자 전 국회 부대변인입니다. 이 글을 한스경제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키지흐스탄 반정부 시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쿠데타, #홍범도 봉오동 전투, #실크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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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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