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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군 순창읍 장날, 장터 군내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양필순(순창군 팔덕면)씨
 전북 순창군 순창읍 장날, 장터 군내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양필순(순창군 팔덕면)씨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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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남편)가 안 그라요. '나이 먹었으니께, 몇 년을 써 묵을라고 솥을 사느냐'고."

지난 6일 전북 순창군 순창읍 장날, 장터 군내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양필순(순창군 팔덕면)씨는 "30만 원짜리 무쇠 가마솥을 살까 말까 한참이나 망설였다"며 내게 하소연을 하듯 말했다.

"젊으면 아저씨한테 물어볼 것도 없이 내가 솥을 사갖고 가불면 되는데, 전화로 물어본게 '우리가 몇 년을 더 농사지으려고 그걸 살라고 하느냐'고 해서 안 사고 그냥 온 거여."

연세를 여쭈어보자, 양씨는 "내가 45년생인 게 참, 시방 (칠십)일곱인가 여섯인가 모르겠네"라며 웃었다. 옆에 있던 한 주민이 "저도 4년 있으면 환갑인데, 하하하" 웃자, 양씨는 "그라믄 각시잖아, 각시"라고 미소 지으며 타박했다. 내가 "각시로 인정하는 나이는 몇 살까지예요?"라고 묻자, 양씨는 정말이지 해맑게 답을 했다.

"한 육십, 오살? 65살까지는 각시제. 칠십부터는 쬐께~ 진짜여. 내가 오십오살 먹었을 때는 한참 얘들 갈치느라고 뛴 것 생각하면은 그때는 몸(건강)도 좀 있고 했응게. 근디 이제 3, 4년 만 있으면 팔십잉게 옛날 같으면 상할매여~."

65세 이상 인구가 35%인 전북 순창군

전북 순창군 인구는 2021년 10월말 기준으로 2만 6980명이다. 이중 65세 이상 인구는 9485명으로 전체 인구의 35%에 달한다.

이날 만난 양씨와의 대화를 기사로 전하는 이유가 있다. 전체 인구의 35%가 65세 이상인 순창군에서는 개인적으로 '65세 이상 어르신'이라는 표현을 쓰기가 참으로 난감하다. 순창군청은 각종 홍보자료에 '65세 이상 어르신', '65세 이상 노인인구'라는 표현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어르신'의 국어사전 정의는 "남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순창군처럼 고령인구가 많은 현실에서 '어르신'은 '나이 지긋하신 노인 분'을 가리키는 의미로 통용된다.

시골 농촌인 순창군에서 이제 막 1년을 살고 있는 나는 60대 연령층을 부를 호칭이 마땅치 않음에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대개 직함이 있으면 ○○회장님, ◇◇사장님, □□이장님 등으로 부르고, 누가 보기에도 나이 지긋하신 분들에게만 '어르신'이라는 표현을 쓴다.

가장 큰 문제는 60대이면서 마땅한 직책이 없는 경우다. '아저씨'라고 하기도, '어르신'이라고 하기도 모호하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형님', '회장님', '사장님'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60대 여성분들에게는 그나마 '이모님', '고모님'이라는 호칭이라도 사용할 수 있지만, 60대 남성분들은 어떻게 부를 수가 없다.

순창에 정착하면서부터 '65세 이상 어르신'이라는 표현에 대한 군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궁금했다. 순창읍내에 살고 있는 내 주변을 둘러봐도 65세 이상 주민들은 무척이나 많다. 셋 중 한 명이 65세 이상이기 때문에 굳이 면 단위로 65세 이상 주민을 찾아갈 필요도 없다.

1년 간 고민하면서 주변의 여러 주민에게 의견을 구했었다. 내년이면 70세가 되시는 한 주민은 "내가 어르신처럼 보여? 난 아직 청년인데"라고 웃었다. 정확하게 65세이신 한 주민은 "난 아직 어르신을 하기에는 너무 젊은데… 65세 이상부터 경로당 회원이 되지만 이 나이에 경로당을 가면 진짜 어르신들한테 혼나지 않을까?"라고 되물었다.

84세이신 한 주민은 명쾌하게 정리를 해 주셨다.

"우리 순창군에서는 65세까지는 청년으로 하고, 65세부터 80세까지는 청년어르신, 80세부터는 어르신이라고 부르면 되지 않을까 싶네."
 

"평생을 자식들만을 위해 살았잖아"

이야기가 잠시 샛길로 샜다. 다시 양씨와의 대화다. 양씨는 "나는 (순창군) 금과(면)가 태자리로 스무 살에 결혼해 (순창군) 팔덕(면)에서 살제"라며 "(일곱 살 많은 남편과) 딸딸, 아들, 딸딸, 아들 6남매를 뒀다"고 말했다. 6남매는 모두 서울에서 살고 있단다.

"한 10년 서울에서 얘들 봐준 거 빼고는 순창에만 있었제. (6남매 대학교 다닐 때) 밥 해주고 먹여주고 해야 되니까. 아이고, 우리 평생을 자식들만을 위해 살았잖아. 아저씨는 순창분인데 평생 농사만 지었제."

양씨는 자녀들과 함께 살기를 바라는 듯 속삭였다.

"우리 아들이 며느리 보고 '시골 가 살자'고 하니까, 며느리가 '나는 못 간다' 그랬대. 근데 우리 아들도 (농사)일을 안 해봐서 (순창) 와서 못 살 것 같아. 8살부터 학교 다니기 시작해 갖고 군대 갔다 와서 졸업하고 공무원 됐는데, 매일 컴퓨터만 했응게 (농사)일을 못 하지."

양씨는 쉴 새 없이 말을 이었다.

"벌어먹을 게 있으면 자식들도 내려와라 이러면 되는데 그게 없으니까. 지금은 애들한테 신경을 많이 쓰잖아요. 애들 교육 때문에 며느리가 직장이 인천인디 서울로 이사 갔잖아. 벌어서 아이들 뒷바라지만 하는 거야, 학원 보내고, 뭐하고. 우리가 자식들 키우느라 평생 그런 것처럼, 지들도 아들딸들 키우느라 고생하고 우리랑 똑같아."
 
"순창이 살기는 좋아, 공기 좋고"


내가 "코로나 때문에 자녀들 자주 못 보죠?"라고 묻자, 양씨는 단호하게 답을 했다.

"저기 식당 하나 잡아서 가족들 다 모여서 밥 먹고 한꺼번에 다 모이면 좋은데, 재작년부터 못 모이잖아. 조심스러워서 (식당에) 안 가는 거야. 우리가 방역수칙을 지켜야제 가면 안 돼."

평생 살고 계신 순창의 좋은 점을 물었다. 안씨는 담담하게 말했다.

"살기는 좋아. 워낙에 젊은 사람들이 벌어먹을 것이 좀 없어서 그러제. 괜찮잖아요? 공기 좋고."

오전 11시 25분, 팔덕행 버스는 몇 시 차인지, 혹시 놓치신 건 아닌지 여쭸다.

"12시 50분 전에 한 차밖에 없어. 반차. 12시 반차. 인자 한 시간 남았네."

시간을 확인한 양씨는 다시 시장으로 발길을 돌리며 말했다.

"무쇠 가마솥이 30만 원인데, 그 절반을 주고 대신 하얀 걸 사야 하나. 꺼먼 거는 시방 잘 안 나와. 내가 티비 보니까 천안 어디서 만드는 것 같아. 인터넷으로 애들이 사면 조금 싸게 살 거야. 한 번 애들한테 물어볼까 어쩔까…."

멀어져 가는 양씨 뒤로 '무쇠 솥을 살까, 말까' 하는 고민이 그림자마냥 어슬렁어슬렁 따라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전북 순창군 주간신문 <열린순창> 1월 12일자에 보도된 내용을 수정, 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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