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7년째 원룸에서 은둔형 외톨이로 살고 있는 저는 때때로 제 자신에게 "잘 할 수 있지?"라고 묻습니다. '다시 사람들 곁으로 가면 잘 할 수 있지' 하는 의미입니다.

제가 제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빈약한 공감 능력' 때문입니다.

저는 공감 능력이 빈약합니다. 그런 탓에 상대방과 대화하면서 수시로 제 생각에 빠져듭니다. 그래서 상대방 말이 끝나면 전혀 엉뚱한 말을 내뱉어 상대방을 당황스럽게 하고 실망스럽게 합니다.

제가 쓰고 있는 반려동물 소설에는 '까칠한 거미'가 나옵니다. 상대방에 대한 공감 능력이 아주 빈약한 거미입니다. 하루는 그의 하나뿐인 사람 친구가 그에게 마음 속 아픔을 다 털어놓습니다. 어린 아이처럼 작은 목소리 때문에 고등학교 이후로 쭉 심한 왕따를 당하며 살아온 아픔을 다 털어놓습니다.

친구가 어렵사리 꺼내놓은 얘기를 다 듣고 난 '까칠한 거미'는 고개를 갸웃하며 이렇게 묻습니다.

"있잖아. 사람들 말이야.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저 닭의 가성비가 좋으냐 달걀의 가성비가 좋으냐만 따지는 이유가 대체 뭐야?"
 

어릴 때부터 줄곧 혼자 살아온 '까칠한 거미'는 상대방이 하는 말에는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하는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그저 자기 생각만 합니다. 어릴 적부터 혼자 살아온 탓에 상대방에 대한 공감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타인에 대한 제 공감 능력이 딱 '까칠한 거미' 수준입니다. 왜냐하면 소설 속 '까칠한 거미'는 실제로 제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언젠가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끝내고 사람들 곁으로 돌아가길 소망합니다. 사람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걸, 사람은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걸,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하면서 절실하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은둔형 외톨이로 살면서 저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란 걸 절실하게 깨닫습니다.

문제는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입니다. 이처럼 공감 능력이 빈약한 제가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7년째 원룸에서 혼자 살면서 저는 휴대전화를 벗 삼아 지내고 있습니다. 때로는 휴대전화를 보면서 웃고, 때로는 휴대전화를 보면서 울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때로는 휴대전화에게 버럭 화를 내며 심한 욕을 퍼붓기도 합니다. 녀석이 제가 원하는 정보를 찾아주지 않는다든가, 혹은 찾는 속도가 느려터질 때 그럽니다.

그런 날이면 저는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말 못 하는 기계에게 이렇게 욕을 퍼붓다니, 아무리 억울하고 속상한 일이 있어도 한 마디 대꾸도 못하는 말 못하는 기계에게 이렇게 욕을 퍼붓다니,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인가 싶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심지어 어느 날은 마트 셀프계산대와 말다툼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냥 입에서 불쑥 심한 말이 튀어나와버렸습니다.

혼자 사시는 분이라면 다들 이런 경험 있으시겠지만, 마트 셀프계산대는 장본 걸 담으려고 들고 있던 장바구니를 계산대 위에 올려놓으면 기다렸다는 듯 "계산 전 무게와 계산 후 무게가 다릅니다. 계산 전 무게와 계산 후 무게가 다릅니다"라면서 난리를 피웁니다. 마치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빨리 잘못을 인정하라고 다그치는 것처럼 사람을 몰아세웁니다.

그날 저는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사람을 심하게 몰아세우는 녀석이 괘씸해 저도 모르게 그만 쏘아붙이고 말았습니다.

그날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헉헉 거리며 방으로 돌아온 저는 걱정스럽고 불안한 마음에 "잘 할 수 있지?"라고 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세 번이나 연거푸 물었습니다.

아무 잘못한 게 없는, 그저 정해진 대로 자기 할 일을 했을 뿐인 셀프계산대를 이해하지 못한 것도 그렇고, 또 사람이 돼서 마트 셀프계산계대와 말다툼이나 하는 것도 그렇고, 이래저래 마음이 걱정스럽고 불안해서 제 자신에게 세 번이나 연거푸 물었습니다.

그날 이 물음에 대한 제 대답은 "글쎄..."였습니다. 세 번 다 "글쎄..."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쎄'입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잘 할 수 있을지,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그러니까 사람들을 잘 이해할 수 있을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름대로 준비는 하고 있지만, 부족한 점을 채우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아직은 타인에 대한 제 공감 능력에 자신이 없습니다.

'공감'이라는 게, 그러니까 타인을 이해한다는 게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고, 또 이렇게나 중요한 일이라는 걸 혼자 살면서 더 분명하게 깨닫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혼자서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