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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와 조카가 놀러왔을 때 마침 성경을 읽는 중이어서 오빠가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저녁 시간이면 우리는 한 절씩 번갈아가며 성경을 읽는다.
▲ 성경읽는 시간 오빠와 조카가 놀러왔을 때 마침 성경을 읽는 중이어서 오빠가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저녁 시간이면 우리는 한 절씩 번갈아가며 성경을 읽는다.
ⓒ 이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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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짓지 안 해시믄 여기가 그대로 천국일 건디."

어머니가 성경 창세기를 읽고 난 어느 날 한 이야기다. 지난해 10월 12일부터 어머니와 나는 저녁 먹고 좀 쉬다가 성경을 하루 한 장씩 읽기 시작했다. 늦여름에 어머니가 백내장 수술을 할 즈음 앞으로 하루에 성경 한 장씩 같이 읽자고 내가 제안했고, 어머니도 동의하면서 우리의 성경읽기가 시작되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병원 다니기를 싫어하셨다. 웬만한 아픔이나 이상은 견뎌내는 것을 당연히 여겼다. 아버지는 평생 동안 치과에서 돈 7000원을 썼는데, 이가 이렇게 튼튼하다는 이야기를 자랑삼아 종종 하시곤 하셨다.

전체적으로 볼 때 병원과 비교적 멀리 지내셨던 것이 두 분의 건강 비결 중 하나인 것 같다. 나 역시도 꼭 필요할 때는 감사한 마음으로 병원 신세를 져야 하겠지만, 가능한 한 병원과는 친해지지 않으려 한다. 공포와 불안이 넘실대는 세상에서 병원과의 거리를 유지하며 살기도 쉽지만은 않겠지만,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2년 전쯤, 거의 실명에 가까운 상태의 백내장임을 알게 되어 뒤늦게 수술을 했다.

백내장 때문에 눈이 답답하고 부옇게 보이는 것인데, 아버지는 눈물이 자꾸 난다며 눈을 종종 닦았다. 언제부턴가 현관에 들어서는 우리를 보고도 바로 알아보는 게 아니라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정확히 아는 듯했다. 아무래도 진단이 필요하다 싶었다.

'수술'이라는 단어를 쓰면 거부 반응이 클 것 같아서, 검사해보고 간단한 '눈물 치료'를 하자고 설득해서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 이후 아버지는 길지 않은 시간이나마 편안하게 성경도 보고 바다도 보면서 지내실 수 있었다. 간단한 수술로 훨씬 편하게 지낼 수 있었을 것을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어 속상하기도 했지만, 뒤늦게라도 밝은 세상을 보시다 가셔서 다행이다 싶다.

어머니도 눈을 자꾸만 닦고 가끔씩 부옇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버지의 백내장과 증상이 비슷해 보였다. 눈과 이의 상태를 한 번쯤 확인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2~3년 전쯤 치과와 안과를 다녀왔다. 90의 나이를 고려하면 어머니의 상태는 매우 좋은 편이었다. 안과에서 백내장 진단을 받았지만, 수술과 그 이후의 관리 등이 쉽지 않을 것 같아 바로 수술을 하진 않았다.

그러다가 어머니와 같이 살게 되면서 지난여름에 수술을 했다. 어머니는 병원에 갈 때마다 잘만 보이는데 왜 병원을 가냐고 말하곤 했다. 거부감을 줄이려고 이번에는 '수술'이라는 말 대신 '눈청소'라는 말을 썼다. 90년 이상 눈을 썼으니 유리창 닦듯 청소해주는 거다, 청소하고 나면 엄청 깨끗하게 보일 거다, 친구 부모님들 보니 어머니보다 훨씬 젊은 분들도 거의 다 청소했더라 등등의 말을 하며 병원을 오갔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병원을 좀 더 기꺼이 다닐 수 있을 만한 제안으로 생각해낸 것이 매일 성경 함께 읽기였다. 어머니 눈청소하고 잘 보이게 되면, 매일 나랑 성경 한 장씩 읽는 게 어떻겠냐는 말에 어머니는 당연히 동의했다. 그렇다고 단지 어머니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언제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 오래 전, 부모님이랑 이야기 중에 내가 지나가는 말로 '성경을 영어로 한 번 읽어볼까'라고 말을 했다. 딸이 성경을 읽는다는 말에 아버지는 엄청 좋아하시며, 오늘 제주시에 나가서 한영성경을 사주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한영성경을 갖게 되었지만, 구약의 앞쪽 어디쯤에서 영어성경읽기는 오래도록 멈춰져 있었다.

영어 공부도 할 겸 세계의 베스트셀러이자 어릴 적부터 나름 익숙한 책인 성경을 차근히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으나, 일상을 살아가다 보니 자연스레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베스트셀러이긴 하지만, 가장 많이 읽히지 않는 책이 또 성경이라고 한다. 왜 많이들 사는지, 또 왜 별로 읽지는 않는지 이해가 된다.

여하튼 어머니의 백내장 수술과 함께 우리의 성경 읽기가 시작되었고, 나의 영어성경 읽기도 새롭게 시작되었다. 어머니와 읽기 전에 미리 영어로 읽어야지 생각하고 초반에는 그렇게 진행되었으나, 지금은 뒤쳐진 채로 좇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이번은 미완으로 끝내지 않으리라 느슨하게 다짐하고 있다.

그런데, 누가 누구를 낳고 등 외국의 인명과 지명으로 가득한 창세기를 어떤 안내도 없이 읽어가는 것은 너무 지루한 일일 것 같았다. 때마침 김민웅 목사님의 <창세기 이야기>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어 안내서로 함께 읽었다. 덕분에 창세기 읽기가 소설이나 드라마처럼 스토리가 보이기도 하고, 궁금함도 생기곤 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 속에 담긴 의미들을 이해하고 끄덕거려가며 읽는 맛도 쏠쏠했다.

아담으로부터 이어진 족보를 노트에 죽 그려보며 '아담이 1대, 노아는 10대, 아브라함은 20대구나', '아벨은 가인에게 죽임을 당했고, 노아는 가인의 자손이 아니라 셋째 아들인 셋의 자손이구나' 하며 단순 사실 확인을 해보는 소소한 재미도 있었다.

창세기의 내용을 보면, 온갖 속임수와 사기, 편애, 시기와 질투, 비겁함, 강간 그리고 형제 간의 살인 등을 다룬 이야기가 나온다. 소소한 지질함에서부터 중범죄까지 우리에게도 익숙한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그러나 신은 인간에게 거룩이나 순결의 잣대로 처벌의 칼날을 휘두르는 존재는 아닌 것으로 느껴졌다.

때론 지질하고 유치하고 폭력적이기도 한 것이 나를 포함한 대다수 인간의 모습일 것 같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누군가를 위하고 사랑하고 안타까워하고 돕고 싶어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사랑과 연민의 마음이 진실한 만큼 지질함, 유치함, 폭력성 역시도 내 일부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에덴동산에서의 추방, 노아의 방주,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등 거대한 멸망과 처벌의 과정을 보면, 인간이 인간적으로 살아갈 자유는 넉넉히 주어졌으나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설 때 거대한 자연의 응징 등 처벌이 이루어진 듯하다.

개인들 간의 관계든 집단의 삶이든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구나, 이 선을 넘어설 때 우리의 관계와 삶은 부서지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지금 인류가 우리에게 주어진 선을 자꾸만 넘어서며 멸망으로 다가서는 것은 아닌지 하는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요즘, 창세기의 재앙이 먼 옛날 이야기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성경 읽기를 시작하며 산수를 잘 하는 어머니에게 성경이 총 몇 장인지, 하루에 한 장씩 읽으면 며칠이면 다 읽을 수 있을지를 계산해보자고 했다. 어머니의 계산에 따르면, 3년 좀 넘게 읽으면 완독할 수 있다. 어머니가 96세 되는 봄 즈음에 다 읽을 수 있겠다고 했더니 어머니는 "장수해야 다 읽으켜이"라고 했다.

성경의 마지막 요한계시록 22장까지 매일 저녁 어머니와 함께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머니 덕분에 새로 시작한 나의 영어성경읽기도 성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렇게 서로 의지하며 함께 나눌 수 있는 지금의 시간들이 나에게는 천국의 시간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실을 에정입니다.


태그:#어머니, #성경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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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겨울밭, 붉은 동백의 아우성, 눈쌓인 백록담,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포말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제주의 겨울을 살고있다. 그리고 조금씩 사랑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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